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10달러에 뒤바뀐 역사

딸기21 2009. 3. 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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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3월3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전화의 발명자’로 알려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태어났다. 영국, 캐나다를 거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벨은 농아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전기기술을 익히고, 당시 원거리 통신수단으로 정착돼 있던 전보를 개량한 ‘귀로 듣는 전보’를 만들기 위한 발명에 몰두했다. 

실험을 거듭하던 벨은 1876년 3월10일 건물 내 전화선을 통해 조수였던 왓슨에게 “미스터 왓슨, 이리로 와보게”라는 말을 전한다. ‘인류 최초의 전화통화’였다.

당시 잘나가던 전보회사에 이 기술의 특허를 사라고 제안했지만 “그런 장난감으로 뭘 하겠느냐”는 말만 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벨은 전화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벨 전화회사’를 직접 차렸다. 

이 회사는 1880년 3월3일 미국전화전신회사(American Telephone & Telegraph)로 재탄생했다. 훗날 세계 최대 통신회사가 된 AT&T다. 1922년 벨이 숨진 뒤 만들어진 AT&T 산하 벨 연구소는 수많은 발명의 산실이 됐다. 이 연구소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11명에 이른다.

벨이 통신수단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농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농아 여성을 아내로 맞았던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 벨 기념재단에서는 농아인들을 위한 활동을 비롯한 그의 박애주의를 강조한다. 벨은 또 전화뿐 아니라 금속탐지기와 수중익선(양옆에 날개가 달린 배)을 발명했고, 항공기술 발전에도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면의 추악한 이야기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남의 기술을 가로챈 파렴치한’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안토니오 메우치라는 이민자는 1860년 전화 시스템을 개발해 공개했다. 그는 1871년에 1년짜리 임시특허를 냈으나 단돈 10달러가 없어 영구특허로 변경하지 못했다. 벨이 전화기 실험도 하기 전인 1876년 3월7일 영구특허를 받음으로써 그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002년 미 의회는 “메우치에게 10달러가 있었다면 전화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며 그의 공로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벨은 전화의 기본설계뿐 아니라 송화기 도안에서도 경쟁자였던 엘리셔 그레이의 것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농아인 가정에서 태어난 벨이 “장애 부부에게서는 장애 아동이 나온다”며 우생학적 단절을 주장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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