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 2월23일 독일 마인츠의 인쇄기술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성경을 출간했다. 이른바 ‘구텐베르크 성경’의 탄생이었다. 한 페이지에 42줄씩 인쇄돼 ‘42줄 성경’(B42)으로 불린 이 책은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성경’이었다.
이 책의 탄생은 역사를 바꿨다. 교황청, 성직자들이 꼭꼭 닫아놓았던 종교 해석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이뤄낸 작은 기술적 발전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끌어냈다.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책이 대중화됐고 중세의 암흑시대는 끝났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쏟아진 인쇄물 덕에 대중은 지식이라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1898년 2월23일, 프랑스에서는 유명 작가인 에밀 졸라가 투옥됐다. 군부 내 반유대주의 때문에 스파이로 몰린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둘러싼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정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협잡과 부조리와 음모가 판치는 군부와 사법부, 정치권력을 비판한다.
“나는 메르시에 장군을 고발합니다. 그는 사상 최대의 죄악에 공모했습니다. 나는 비오 장군을 고발합니다. 그는 정치적 동기와 체면 때문에 드레퓌스의 결백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은폐하는 파렴치죄와 정의 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극악무도하고 불공정한 심문을 한 펠리외 장군과 라보리 소령을 고발합니다. 나는 거짓 보고서를 만든 필적 감정가들을 고발합니다. 나는 국방부를 고발합니다. 저열한 캠페인을 주도한 신문들을 고발합니다. 인권을 침해한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나의 행동은 진실과 정의가 폭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외침으로 내가 법정에 끌려간다 하더라도 감수하겠습니다. 다만 청천 백일하에서 나를 심문하십시오.”
졸라는 군부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옥에 갇혔으며, 석방된 뒤 망명길에 오른다. 졸라는 역사가 바로잡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숨졌지만, 그의 글은 정의가 무너진 시대에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기념되고 있다.
1455년, 1898년, 그리고 2009년의 한국. 때와 장소가 바뀌어도 역사라는 거울을 바로 보지 못하는 권력들은 서로 닮아있다. 대중의 입을 막으려는 권력, 불공정과 음모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권력의 모습은 졸라의 글을 다시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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