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고쳐라.”
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하면 점점 뜨거워져 가는 지구를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인류의 과학기술은 인간을 지구 밖으로 내보내고 우주기지를 만들 만큼 발전했지만, 이 과정에서 지구의 병은 깊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급변하면서 기후 재앙이 잦아졌고, 생물 종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세계는 1990년대 이후 유엔 산하에 기후변화 협력체제를 만들고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 정도가 다르고 국가발전 전략도 천차만별인 200여개국을 효율적으로 통제해 온실가스를 감축할 만한, 힘 있는 국제체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탄소 경찰’이 되어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탄소 배출 부담금을 점차 늘려 모든 경제활동에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교토 의정서 체제가 숱한 좌절을 겪은 데서 보듯 ‘정치적 의지’로 탄소에 고삐를 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주목받는 ‘지구 공학’은 국제정치적 노력만으로는 급변하는 지구 환경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고민에서 나왔다.
바다의 흐름을 늦춰라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의 데이비드 빅터 교수는 시사전문지 ‘포린어페어스’ 3·4월호 기고에서 “이제는 정치인들이 지오엔지니어링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노력과 함께 급격한 기후변화의 속도를 줄일 기술적 작업을 함께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기-땅-바다로 이어지는 지구의 온도 순환 시스템에 조작을 가해 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대규모 환경공학을 지오엔지니어링(geoengineering), 플래닛 엔지니어링(Planet engineering) 등으로 부른다. 화성 같은 불모의 행성을 지구처럼 생물체가 사는 땅으로 바꾼다는 개념의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미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지오엔지니어링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는 곳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 장관으로 발탁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추 박사는 입각 전 4년 동안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에 있는 이 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LLNL은 지난해 “지오엔지니어링이 지구의 물순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햇빛을 받는 바다 윗부분과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아랫부분, 햇빛을 많이 받는 저위도 지역과 그렇지 못한 고위도 지역의 수온 차이 때문에 해류가 생긴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의 움직임은 지구 전체의 열을 순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LLNL은 이 흐름을 늦춰 열이 고위도 지방에 빠르게 전달되는 것을 막을 경우 극지방의 온난화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냉전에서 시작된 ‘날씨 만들기’
1940년대부터 미국과 옛 소련은 전쟁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날씨를 인공적으로 바꾸기 위한 연구를 경쟁적으로 진행했다. 미국은 국방 연구시설에 ‘날씨 메이커’라 불리는 기후학자들을 고용해, 가상 적국의 곡물 수확량을 떨어뜨리기 위한 기온강하 공법이나 허리케인의 강도를 높이는 ‘분노의 폭풍우(Stormfury) 프로젝트’ 등을 연구했다.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지오엔지니어링 개념이 등장한 것은 60년대에 이르러서다. 65년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날씨를 인공적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76년 유엔이 환경기술을 군사적·적대적 용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장을 채택하면서 대규모 기후공학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대폭발해 어마어마한 양의 황 분자와 먼지를 대기 중에 쏟아냈다. 그해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은 0.5도 내려갔다. 화산먼지 때문에 지표면에 닿는 일조량이 줄어든 탓이다. 화산 폭발은 자연의 힘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지구 기온을 한 번에 떨어뜨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오엔지니어링의 시나리오들
지구의 순환 시스템에 조작을 가하는 방법으로 흔히 얘기되는 것은 태양복사 관리, 온실가스 개선 같은 것이다. 그 중
태양복사 관리는 말 그대로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의 복사열을 줄이는 것이다. 화산 폭발로 지구 기온이 떨어졌듯이
인위적으로 대기 중에 황 화합물이 들어간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들)을 뿌려 햇빛을 가리자는 것이다.
바닷물을 분무해 흰 구름을 만들어 반사율을 높여 복사열을 줄이자는 주장도 있다. 공중에 거대한 반사경을 설치, 햇빛을 대기권 밖으로 되돌려보내자는 공상과학 만화 같은 아이디어도 나온다. 복사열을 반사하는 비율을 알베도(albedo)라 부르는데, 대기권 윗부분에 반사작용이 뛰어난 입자를 뿌려 알베도를 높이자는 의견도 있다.
온실가스 개선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등이 대기 중에 흩어지는 것을 막는 걸 말한다. 이미 배출됐거나 앞으로 배출될 탄소가스를 어딘가에 가둬둠으로써 대기권에서 온실효과를 내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반감기(원소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길어, 한 번 방출되면 수십~수백년 동안 대기 중에 남는다.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는 있지만, 이미 흩어진 이상화탄소 양을 짧은 시간에 줄이기는 힘들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퍼지지 않도록 어딘가에 가둬두는 방안을 찾고 있다.
어디에 가둬둘까? 땅속과 바닷속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지난달 요크셔의 발전소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북해의 사암 밑에 저장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전기회사 내셔널그리드는 요크셔의 화력발전소 5곳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압축한 뒤 해안의 폐(廢)가스전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바다 밑 사암 구멍에 펌프로 밀어넣을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산화탄소를 고체로 만든다면 단단한 바위층 속에 오래도록 저장해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도 폐광의 지하 암반에 이산화탄소를 매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바다에 쇳가루를 뿌린다?
이산화탄소를 바닷속에 저장하는 또다른 방법이 있다. 바닷속의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한다. 그런데 식물성 플랑크톤이 자라려면 철 성분이 필요하다. 바다에 철가루를 뿌리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더욱 많이 자랄 것이다.
이들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플랑크톤의 배설물이나 해양 생물의 잔해에 녹아들어가 바다 밑에 수백년 동안 가라앉아 있게 된다. 이 시나리오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중미 갈라파고스 해협처럼 질소·인이 풍부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잘 자라는 지역에 철분을 뿌려 식물성 플랑크톤을 증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브라질 아마존 지역 부족들은 농사짓기 나쁜 땅에 죽은 동물 뼈와 숯을 넣어 기름지게 만들었다. 탄소가 많이 함유된 이런 검은 토양을 ‘테라 프레타’라 부른다. 탄소를 흙덩어리에 뭉쳐 넣어 테라 프레타를 많이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곳은 극지방이다. 극지방의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거대한 흰 얼음땅은 태양빛을 반사하는데, 이 얼음이 녹아 검은 땅이 드러나면 지구로 들어오는 열이 더 많아진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상호작용을 한다.
더 가공할 상황은, 얼음이 녹아 북극 바닷속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일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과학자들은 바다에 갇혀 있던 가스(포접화합물)가 올라오는 순간이 기후 시스템의 ‘티핑 포인트(균형이 무너지는 지점)’가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극지방이 더워지는 걸 막는 데 실패하면 지구 온난화에 제동을 걸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몇몇 과학자들은 북극 지방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기후 조작, 즉 ‘북극 지오엔지니어링’ 방안을 집중적으로 찾고 있다. 빙산 위에 인공적으로 물을 뿌려 얼음을 더욱 두껍게 하는 방법, 바다에 해빙(海氷)을 만들어 흰 면적을 넓히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인류는 기후를 창조할 수 있는가
미국 플로리다 주정부는 72년 해안에 폐타이어 200만개를 뿌렸다. 인공 어초(魚礁)를 만들어 물고기 집으로 삼자는 아이디어였지만, 30여년이 지나자 환경 재앙만 만들어낸 것으로 판명됐다. 폐타이어 더미를 묶은 나일론과 철사가 풀려 나와 낫처럼 바다 밑을 휩쓸며 산호초들을 죽이고, 생태계를 초토화시켰다.
1859년 호주 빅토리아주 남부에 살던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농장주는 유럽산 토끼를 들여와 농장에 풀었다. 이전까지 호주에는 토끼가 없었기 때문에, 토끼의 천적도 없었다. ‘오스틴의 토끼’들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생태계를 파괴했다. 인간의 행위가 예상치 못한 환경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지오엔지니어링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늦는다”고 말한다. 지오엔지니어링은 대상 지역이 광범위하고 설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시장에 관심을 쏟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자칫 예상 못했던 대규모 연쇄작용이 일어나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구를 상대로 실험할 수 있다는 발상은 과학 만능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당신이 지금 창 밖을 보고 있다면 당신이 본 날씨의 일부는 당신이 만든 것이다. 앞으로 50년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미국 기후전문가 토머스 리처드 칼의 말이다. 인류는 지구의 날씨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기후변화라고 불리는 골치아픈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창 밖의 날씨’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다. 하지만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적 해법과 과학기술에 의존한 해법,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둘지를 놓고 고민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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