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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쥐야, 큰 쥐야- 네 놈의 종적을 뭉개 버리리라

딸기21 2009. 3. 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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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쥐야, 큰 쥐야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시경(詩經)』 위풍(魏風)에 「석서(碩鼠)」란 시가 있다. ‘큰 쥐’란 뜻이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마라/ 삼년이나 너를 알고 지냈건만/ 내 처지를 돌아보려 않으려 하니/ 이제 나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땅으로 떠나련다/ 즐거운 땅(樂土)이여, 즐거운 땅이여/ 거기서 내 살 곳을 얻으리라.

큰 쥐야, 큰 쥐야/ 내 보리를 먹지 마라/ 삼년이나 너를 알고 지냈건만/ 내 사정을 봐주지 않으려 하니/ 이제 나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나라로 떠나련다/ 즐거운 나라, 즐거운 나라/ 거기 가면 내 편한 곳 얻으리라

큰 쥐야, 큰 쥐야/ 내 곡식 싹 먹지 마라/ 삼년이나 너를 알고 지냈건만/ 나를 위로하지 않으려 하니/ 이제 나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들로 떠나련다/ 즐거운 들판, 즐거운 들판/ 거기서는 한숨 질 일 없으리라


위나라 지배자가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하자, 백성들이 고통이 가득한 위나라를 떠나 수탈이 없는 즐거운 땅으로 떠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 ‘큰 쥐’가 가렴주구를 일하는 위나라 왕과 귀족을 비유한 것은 군말을 요하지 않는다.


피할 것인가, 잡을 것인가? 그도저도 아니면?


정조는, 이 시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고 싶지만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는 학설을 소개하고, “정말 시의 작자가 정말 나라를 떠나려 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정조도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것인가. 다산(茶山)은 이에 ‘즐거운 땅(樂土), 즐거운 땅’을 반복해 되풀이 한 것을 보아, 정말 떠날 마음이 있었던 것이라고 답한다.(『詩經講義』 권2, 「碩鼠」)


한데, 모진 정치는 피하면 그만인가. 달리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전기의 천재 시인 김시습은 이 시를 패러디했다. 『매월당집』에 「석서(石鼠)」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를 보자.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마당 곡식 먹지 마라/ 삼년이나 너를 알고 지냈으니/ 나의 곡식 먹지 마라/ 이제 나는 네 놈 사는 땅을 버리고서/ 즐거운 저 나라로 떠나련다

큰 쥐야, 큰 쥐야/ 이빨은 날카로운 칼날 같아/ 하마 내 농사 망쳐 놓고/ 수레까지 쏠아 먹어/ 내 타고 다닐 것 없게 하였으니/ 이제 다시 어디로 떠날 수도 없다오


여기까지는 『시경』의 원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큰 쥐가 수레바퀴를 갉아먹은 나머지 작자는 낙토로 떠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큰 쥐야 큰 쥐야/ 언제나 찍찍 소리를 내지/ 간사한 말로 교묘하게 사람을 해쳐/ 사람 마음 늘 두렵게 하네/ 어떻게 하면 사나운 고양이를 얻어/ 한 번에 씨도 없이 잡을 수 있을까?

큰 쥐가 새끼 낳는 날이 되면/ 젖 먹는 쥐새끼들 내 집에 가득 차네/ 나는 영모씨(永某氏)가 아니니/ 네 놈을 장탕(張湯)의 옥에 처넣고/ 네 놈 깊은 소굴일랑 메워버리고/ 네 놈의 종적을 뭉개 버리리라


영모씨는 쥐를 사랑하여 잡지 않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김시습은 옛날 쥐구멍을 파서 고기를 물고 달아난 쥐를 잡은 뒤, 쥐의 죄상을 고발하는 글을 지은 장탕을 본받아, 쥐의 소굴을 메우고 쥐의 종적을 없애버리려 한다.


고전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고전을 통해 오늘의 문제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는가. 『시경』의 「석서」인가, 아니면 김시습의 「석서」인가? 그도저도 아니면, 영모씨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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