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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가의 백만장자?

딸기21 2009. 2. 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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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영화상 8개부문을 석권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어린 주인공들이 26일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에 ‘금의환향’했다. 뭄바이의 다라비 슬럼가 주민들은 영화에 출연했던 어린이들을 영웅 대접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했다 해서 이 아이들과 슬럼 주민들의 삶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 슬럼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슬럼가 출신이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quot;Slumdog Millionaire&quot; child actor Mohammed Azharuddin Ismail in Mumbai. (AFP/Indranil Mukherjee)


CNN방송은 이날 영화에 출연해 세계의 시선을 받았던 아자루딘 이스마일(10)과 루비나 알리(9) 두 어린이가 귀환하자 뭄바이 공항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시내에서 열린 축제가 끝나자, 두 아이는 할리웃의 추억을 뒤로한 채 철길 옆 판잣집 안의 플라스틱 박스들 밑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이날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다라비 슬럼을 현대적으로 재개발하려는 시 당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에서는 인구 1400만명 중 1000만명 이상이 슬럼의 무허가 판잣집에 살고 있다. 중앙정부와 뭄바이 시 정부는 인도 고속성장의 그늘로 불리는 다라비 슬럼을 없애려 하고 있으나, 빈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개발 압력과 그에 저항하는 빈민들의 충돌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동아프리카 최대도시인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 슬럼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케냐 시골과 주변국들에서 건너온 빈민 1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이 슬럼은 동물의 낙원을 자랑하는 ‘친환경 케냐’의 치부다. 케냐 정부는 국제기구의 자금을 지원받아 슬럼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재개발을 시작할 방침이지만 26일 주민들과 이주대책을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현지 언론인 ‘비즈니스 데일리’는 “당국은 주민들을 임시 주거지로 옮기고 싶어하지만 주민들은 기존 판잣집 임대료 이상을 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보도했다.

Dharavi Industry
Mumbai‘s Shadow City- 다라비 슬럼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제3세계의 대도시들은 거의 예외없이 주변에 슬럼을 두고 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를 둘러싼 광역수도권(ZMVM)에는 인구 수백만~1000만명의 슬럼들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이집트 사막에는 맘루크 왕조 시절의 묘지에 사는 빈민들이 늘면서 ‘사자(死者)의 도시’라 불리는 기묘한 마을이 탄생했다. 


(몇해전 이집트에 갔을 때 이 도시를 지나가다가 보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그로테스크해서, 대체 이 곳은 어떤 곳인가, 유령의 도시인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그곳이 '무덤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빈민촌’), 파키스탄 카라치 근교의 오랑기 타운, 멕시코 국경지대의 콜로니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일대의 캄풍바루(‘새 마을’), 터키 이스탄불의 게체콘두(‘하룻밤에 지은 집’), 카이로의 자발린(‘산동네’),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도시 소웨토 등 슬럼들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지만 사는 모양은 비슷하다. 오염된 공기, 물 부족과 에너지 부족, 질병과 범죄, 마약, 실업, 높은 자살률, 지하경제 같은 것들이 세계 슬럼들의 공통분모다.



슬럼이 늘어나는 것은 지구 전체에 걸친 도시화·세계화와 맞물려 있다. 제3세계 대도시의 ‘전형적 풍경’이 되어버린 슬럼들은 대개 1970년대 후반의 채무위기와 뒤이은 8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주도의 제3세계 경제 구조조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저술한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3세계의 슬럼화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농촌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어 노동자가 되고 도시 슬럼을 형성했던 ‘선진국형 슬럼화’와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제3세계 슬럼의 주민들은 농촌에서 얻지 못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도시로 온 것이라기보다는, 농촌에서 삶의 기반을 잃은 탓에 등 떼밀려 도시로 나오게 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시대에 슬럼이 늘어나는 것은 도시들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세계 곳곳에서 인구 1000만명 이상의 대도시, 이른바 ‘메가시티(Megacity)’들이 늘고 있는 것은 슬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의 슬럼 거주자는 10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은 지난해 전세계 인구 중 도시 거주자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엔은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이며 그 중 절반이상은 슬럼 주민일 것으로 예측한다.


On the outskirts of Cairo, an area of cemeteries known as the City of the Dead provides shelter for hundreds of thousands of poor residents. Families make their homes in and among tombs and gravesites, some of them belonging to Mamluk sultans. (J. Polleross/The Stock Market)


부의 독과점에 맞서는 슬럼 빈민들의 저항은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재지주의 집을 무단점유하는 ‘스쿼팅(squatting)’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스쿼팅 지지자들은 “재산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2005년 남아공 동부 항구도시 더반에서는 빈민들이 ‘아발랄리 운동(AbM)’이라는 무단점유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는 곧 서부 최대도시 케이프타운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BBC방송은 “빈민운동이 남아공의 정치지형까지 바꾸고 있다”고 평했다. 인도 서벵골지방에서는 토지퇴거반대위원회(BUPC)가 2007년 결성됐다. 브라질에서는 대농장 지주들에 맞선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에 이어 ‘집 없는 노동자운동(MTST)’이 활발하게 일어나 800만채 이상을 점유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주로 ‘슬럼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엔 인간거주계획(UN-HABITAT)과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은행 등은 2001년부터 ‘슬럼없는 도시 행동계획’을 추진하면서 슬럼 주거여건 개선과 빈민층 교육지원 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빈곤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는 슬럼 개선운동은 ‘빈민 강제퇴출’이라는 부작용만 낸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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