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인권단체인 ‘국제면책반대연합(ICI)’이 ICC에 이스라엘의 전범 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이 단체의 마이 칸사 변호사는 “이스라엘은 살상무기들을 동원,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반인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은 25쪽 분량의 청원서를 ICC에 제출했다.
칸사는 “이스라엘과 미국 지도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건물 앞에서는 네덜란드 인권단체들과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단체 회원 170여명이 모여 국제전범재판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 최대 이슬람단체 중 하나로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유엔 시설 공격을 ICC에 제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이스라엘이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본부를 공격하면서 제네바협약상 주거지역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을 또다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가자에서 활동하는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내에서도 이스라엘 규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UNHCHR)은 구체적으로 ICC 회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레이 판무관은 이스라엘군이 지난 4일 가자시티 동부 제이툰에서 주민 110여명을 한 건물에 몰아넣은 뒤 포격해 어린이들을 포함해 30명 이상을 학살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 사건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보고서에도 기록돼 있다.
미겔 데스코토 유엔 총회 의장은 “이스라엘이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했음을 입증할 자료들을 충분히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1948년 유엔 결의로 건국한 이스라엘이 유엔의 휴전 촉구 결의안을 무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난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성명을 발표, 이스라엘의 전범 행위를 조사할 독립적인 수사기구를 유엔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포크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조사관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에게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총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인인 포크 조사관은 가자 공격 직전인 지난해 말 이스라엘에 의해 추방됐었다. 포크는 이미 가자공격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행위를 ICC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부는 15일 유엔 산하에 이스라엘의 범죄를 조사할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9곳도 “이스라엘군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전쟁범죄를 중단하라고 자국 정부에 촉구했다.
ICC에 회부하거나 유엔 특별조사위원회·특별법정을 설치해 이스라엘의 전범 행위를 추궁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범 혐의가 국제법정에 부쳐질 공산은 크지 않다. 아직 ICC는 인권단체들의 요청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이스라엘의 과거 팔레스타인 탄압행위와 달리, 이번 가자공격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스라엘이 수차례 유엔 시설을 공격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유엔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도덕률이 깨진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제네바협약 및 관련 의정서들은 전쟁시 민간인 살상을 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국제법정에 회부되지 않더라도 유럽국들 법정에 상징적으로 기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라크전쟁을 수행한 토미 프랭크스 전 미군 중부사령관이 2003년 벨기에 법원에 기소된 전례가 있다. 칠레의 옛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스페인 법정에 기소된 것도 비슷한 예다.
이스라엘은 전범재판 회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미리부터 ‘역 증거수집’을 하고 있다. 폭격 15분 전 형식적인 경고전단을 뿌리거나 경보를 울리는 등, 군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전범 혐의를 부인할 증거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 앞서 예루살렘포스트는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이 “전범 재판에 대비한 반대증거들을 수집하라”고 군에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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