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정치가 가업이냐’ 미국 세습정치 공방

딸기21 2008. 12. 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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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세습정치’ 혹은 정실주의(nepotism)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자의 빈자리를 승계하려는 캐롤라인 케네디의 사례를 계기로 명문가 세습정치인들을 둘러싼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돈 선거, 미디어 정치의 속성 때문에 미국 정치는 명성 있고 돈 있는 유력 가문들의 ‘패밀리 비즈니스(가업)’가 되고 있다.


세습정치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은 캐롤라인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3일 뉴욕시 교육위원회 기금모금 겸 친선대사직을 맡았던 캐롤라인이 임무를 불성실하게 했다는 논란이 있다고 보도했다. 


공무 경험이 거의 없는 캐롤라인은 상원직 승계 의사를 밝힌 뒤로 계속 자질론, 검증론에 시달리고 있다.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에는 명문가의 세습정치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캐롤라인이 당 안팎의 비판을 뚫고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지사를 통해 상원의원에 지명되면 케네디 가문에서는 4번째 상원의원이 탄생하게 된다.


세습 문제를 더 들여다보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캐롤라인의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앤드루 쿠오모 주 검찰총장은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의 아들이다. 앤드루는 캐롤라인의 사촌인 케리 케네디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악연도 있다. 상원 승계자 지명권을 가진 패터슨 주지사는 뉴욕시 부시장을 지낸 유명 흑인정치인 바실 패터슨의 아들이다. 힐러리가 빌 클린턴 전대통령 부인이라는 것까지 치면 이 한 자리에 얽혀있는 이들 모두가 족벌정치인인 셈이다.




캐롤라인 사례 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가 내놓은 상원직 자리도 모두 세습·정실주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바이든이 남긴 상원의원 자리는 보좌관인 테드 카우프먼이 물려받기로 돼 있다. 이를 놓고 “바이든이 이라크에 파병됐다 돌아올 아들을 위해 보좌관에게 잠시 맡겨둔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2010년 상원 선거 때 아들 보 바이든이 당선될 수 있도록 카우프먼이 ‘자리덥히기’를 하기로 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오바마의 의석은 라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의 매관매직 스캔들 때문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블라고예비치와의 접촉 의혹을 받은 제시 잭슨 주니어 하원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었던 유명 흑인 정치인 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아들이다. 잭슨 주니어는 스캔들에 거론됨으로써 일단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새로이 후보로 떠오른 리자 매디건 일리노이주 법무장관 역시 현직 주 하원의원의 딸이라는 점에서 세습 정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내무장관 지명자 케네스 샐러자르 상원의원의 자리는 친형인 존 샐러자르 하원의원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형제 의원은 이들 외에도 많다. 자동차산업 구제안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칼 레빈 상원의원은 샌더 레빈 하원의원과 형제간이다. 


콜로라도주의 마크 유달 하원의원은 아버지, 사촌이 상원·하원의원을 지내 ‘서부의 케네디가’로 불린다. 민주당 유력정치인 바버라 복서 상원의원은 딸을 힐러리 남동생과 결혼시켜 사돈이 됐다.


오바마의 러닝메이트 후보군에 들어있었던 에반 바이 상원의원은 버치 바이 전 상원의원 아들이다. 차기 정부 입각설이 돌았던 올림피아 스노위 하원의원은 존 매커먼 메인 주지사의 부인이다. 프랭크 머코프스키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딸 리사를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에 앉혔다. 아버지가 물러난 뒤에도 딸은 여전히 워싱턴에서 활약하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의 큰딸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재임 중에 국무부 부차관보로 임명돼 구설수에 올랐었다.


상원의원 할아버지와 전직 대통령 아버지를 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근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칭찬하면서 “훌륭한 상원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해, 젭 부시의 2010년 상원 선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활약했던 첼시 클린턴도 정계입문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11명은 전·현직 상원의원이나 주지사의 자녀 혹은 배우자다. ‘권력 대물림’은 미국에서는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됐다. 가장 큰 원인은 재력·명망의 뒷받침 없이는 정계에 발을 딛기 힘든 정치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명인사들을 좇는 유권자들의 풍토도 한몫 한다. 뉴욕타임스는 “유명한 과학자나 음악가의 자녀가 부모처럼 천재일 가능성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치에서는 ‘권력세습’을 비판하면서도 명문가의 자녀를 선호하는 풍토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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