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지휘권을 국제사회에 이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의 거센 반발로 미군 대규모 인명피해가 계속되고 혼란이 진정되지 않자 그동안 틀어쥐고 놓지 않던 연합군 지휘권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에 이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이라크 통치권을 이라크인들에게 조기 이양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연합군 지휘권까지 넘겨준다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워싱턴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담당 고위대표는 "미국이 이라크 주둔 연합군 지휘권을 국제사회로 넘길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과 유럽 간에 광범한 컨센서스(동의)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18일 보도했다. 솔라나 대표는 "미국도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현재 유럽을 방문 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EU 주요회원국들을 상대로 나토군 파병 가능성을 타진하고 말했다. 파월 장관은 지난 17일부터 벨기에의 브뤼셀을 방문, 유럽 주요국 외무장관들과 잇따라 회동을 가졌으며 18일 영국을 국빈방문한 조지 W 부시대통령과 합류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미국은 이라크 현지 치안을 현지인들에게 되도록 많이 맡기고 연합국 관할지역을 넓히는 것은 환영하지만 연합군 지휘권만큼은 미군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고 미군 피해가 계속되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분위기가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까지?
`나토 대안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프간을 중요한 사례로 들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전이 끝난 뒤 국제치안유지군(ISAF)을 구성, 독일 등이 순차적으로 지휘권을 갖도록 했으며 지난 8월에는 아예 나토가 ISAF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나토는 아프간 다국적군 참여를 계기로창설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역외에서 독자적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며, 미군에 이은 `제2의 세계경찰'로 위상이 제고됐다. 미국에 맞선 `반전연대'의 주축이었던 프랑스도 최근 "미국이 이라크인들에게 주권을 조기이양한다면 파병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짐을 떠맡는 건 나토도 버거워
그러나 현재로서는 나토가 이라크 연합군 지휘권을 물려받을지는 불확실하다. 나토의 핵심 멤버인 독일과 벨기에 등은 여전히 파병반대론을 고수하고 있다. 나토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치안유지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미국 역시 나토로 지휘권을 이양하는 문제를 `양날의 칼'로 인식하고 있다. 나토는 지난달 당초 일정보다 1년 앞당겨 신속대응군을 창설해, 나토를 자국 우산 속에 남겨두려는 미국과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라크의 통제권을 나토가 갖게 되면 유럽국들의 `독립'도 빨라지게 되고, 이는 미국이 아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또 미국이 울며겨자먹기로 나토에 지휘권을 넘긴다 해도 이라크 상황이 당장 개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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