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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쿠바 관타나모의 미군 기지에 수감된 재소자에게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으로 주목받아온 ‘테러 용의자’는 몇 달 뒤면 풀려난다. 미국 정부와 언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전범 재판”이라 떠들어온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재판 없는 불법 구금’이 낳은 웃지 못할 현실이다.
미 군사법정은 7일 빈 라덴의 운전수이던 예멘 국적의 살림 함단에게 징역 5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앞서 군 검찰은 함단이 1997~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의 운전수로 일할 당시 빈 라덴이 희대의 테러범임을 알고 있었다면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반면 함단은 “예멘에 좋은 일자리가 없어 월 200달러(약 20만원)를 받고 빈 라덴 밑에서 일했을 뿐”이라며 테러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키스 알레드 재판관은 함단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구형량보다 훨씬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함단은 이미 5년1개월간 관타나모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5개월만 있으면 형량을 채운다. 미 국방부는 함단을 ‘적 전투원’으로 규정해 계속 수감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으나, 이렇게 할 경우 거센 비난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을 계기로 관타나모 수용소와 재판의 실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재판도 없이 수백명을 장기간 가둬놓고 있다는 것이다. 관타나모 ‘테러 용의자 수용소’가 문을 연지 6년이 됐지만 정식으로 기소된 사람은 20여명, 재판을 받은 사람은 함단 1명 뿐이다.
미군은 ‘알카에다식 테러 용의자’를 관타나모로 보낸다고 말하지만, 수감자들의 혐의 자체도 불분명하다. 함단은 빈 라덴에게 미사일을 전달해 대미 테러 공격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나 재판관은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관타나모에 수감된 사람은 현재 265명이며, 한때 600명에 이르기도 했다. 지금까지 재소자 500명 이상이 테러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 풀려났다. 심문 과정에서 불거진 물고문 논란 등 가혹행위는 관타나모의 또다른 그늘이다. 수감기간 중 자살한 사람이 4명이며, 자살 기도를 한 케이스도 알려진 것만 10여건이다.
미 군사법원이 재판을 하지만 관타나모 재판은 미국 법을 따르지 않는다. 미 행정부는 “미국 땅에서 이뤄지는 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논리를 내세워 미국 법에 정해진 재소자 인권 기준을 무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군사법원이 유죄판결을 하려면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평결이 필요하지만, 관타나모에서는 3분의2만 찬성하면 된다. 증인이 직접 들은 것이 아닌 ‘전해 들은 말’이나, 물고문·잠 안 재우기 같은 강압적 수단으로 얻은 증언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영국 BBC방송은 “심지어 ‘기밀 증거’라는 것도 있어, 검찰 측이 내세운 증거를 피고인이 모르게 비밀로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함단에 이어 관타나모 재판에 회부될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류탄으로 미군 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구금된 캐나다인 오마르 카드르(21)다. 현재 관타나모에 갇혀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서방 국적인 그는 관타나모 이송 당시 15세에 불과했다.
관타나모 재소자 중 9·11 테러와의 연관성이 비교적 뚜렷한 이는 알카에다 최고위 간부로 지목된 할리드 셰이크 무하마드와 측근 4명인데 이들에 대해선 재판 날짜도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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