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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포정의 소 각뜨기

딸기21 2008. 2. 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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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정이라는 훌륭한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습니다.
손을 갖다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을 디디고, 무릎을 굽히고, 그 소리는 설컹설컹. 칼 쓰는 대로 설뚝설뚝. 완벽한 음률, 무곡(舞曲) <뽕나무숲(桑林)>에 맞춰 춤추는 것 같고, 악장 <다스리는 우두머리(經首)>에 맞춰 율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4. 문혜군이 말했습니다. "참, 훌륭하도다. 기술(術)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요리사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귀히 여기는 것은 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통째인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神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은 쉬고, 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귀에 칼을 밀어 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정말 본래의 모습에 따를 뿐, 아직 인대나 건(腱)을 베어본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까?

5.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로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넓어, 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서 갈려 나온 것 같은 것입니다.

6. 그렇지만 근육과 뼈가 닿은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 조심합니다. 시선은 하는 일에만 멈추고, 움직임은 느려집니다. 칼을 극히 미묘하게 놀리면 뼈와 살이 툭하고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같습니다.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갈무리를 합니다."
문혜군이 말했습니다. "훌륭하도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생명을 북돋움(養生)'이 무엇인가 터득했노라."


포정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포'는 엄호 안에 包가 들어가 있는 글자인데 '부엌'을 의미하고, 丁은 그 사람의 성이나 보통 명사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 포정은 부엌데기, 요리사, 혹은 '요리사 정씨'라는 뜻이라고 해설을 붙여놨다. 이 이야기의 포정은 백정으로서, 천한 백정이 임금 앞에서 양생의 도를 가르쳤다는 얘기라고.

포정이 소 잡는 이야기는, 어릴적 장자를 다룬 만화책에서 중국 작가가 그린 매력적이고 재치 넘치는 그림으로 구경한 적 있다. 백정이 칼을 들고 소의 살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는데 소는 제가 죽는줄도 모르고 편안히 있는다는 내용의 그림이었다.
'미천한 짐승'을 잡는것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죽이는 것을 놓고 양생의 도를 운운하는 것은 좀 웃기다. 소를 잡으면서 '신으로 대한다' '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인다' 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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