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평상심

딸기21 2002. 10. 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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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자마자 축구 얘기.
바그다드로 떠나면서 맘에 걸렸던 것이 애기, 그리고 축구였다. 이 둘을 못 본다는 것이 영 아쉬웠다-물론 이 둘에 등가의 가치를 매겨놓고 산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용케도 돌아오기전 암만의 호텔에서 아랍어 방송을 틀어놓고 바르셀로나-바야돌리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뭐랄까, <존재의 모호성>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다소간의 회의가 들었더랬다. 암만의 호텔에 앉아 <여느 때처럼> 축구를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과연 나의 실재인가- 그 경기는, 내게 서울을 떠올리게 만든 하나의 코드였던 셈이다.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지네딘 지단의 커다란 초상화(거의 사담의 초상화만했던)를 보면서,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정상세계의 낯익은 사물을 본듯한 반가움을 느꼈던 기억도 덧붙일 수 있겠다.

어제 공항에서 집으로와 짐을 팽개쳐놓고 회사에 들렀다가 저녁 7시30분 맞춰서 집에 돌아왔다. 스포츠채널을 틀어보니 챔피언스 리그 인터밀란-리용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호나우두를 떠나보낸 인터는 에르난 크레스포를 라치오에서 데려왔는데, 어제 경기는 관전자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재미난 것이었고, 인터 팬들 눈으로 보자면 못마땅한 군데가 많았을 그런 경기였다. 크레스포가 두 골을 <어찌어찌> 넣기는 했지만 전반전에 리용이 보여준 환상적인 패스와 빠르고 경쾌한 플레이에 대면 인터의 모습은 영 별로였다. 좋아하는 비에리도 큰 활약을 못했고.

그림자의 모습을 한 내 영혼은 잠시 몸을 떠나 방안을 돌면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테레비 앞에 앉아 축구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안심하고 위안했을 것이다. 마루 전역에 널부러져 있는 여행의 흔적들-빨래, 짐꾸러미들과 그 속에 오도커니 앉아 눈 빠져라 브라운관을 파고 있는 나. 그것이 나의 <평상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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