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달러에 세계가 울고 웃는군요.
(기름값에 둔감한채 더 내리라고 주장하는 한국만 빼고 -_-)
고유가 시대를 맞아 세계의 지정학 지도에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석유창고 중동이 정치적 격변을 겪고 석유고갈론이 힘을 얻으면서,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는데요. 눈길을 끄는 것은, 30여년전 오일쇼크 때와 달리 국제정세가 `산유국은 강자, 수입국은 패자'라는 단순한 구도로는 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수단, 베네수엘라 등이 석유정치학을 활용해 신흥 에너지강국으로 부상한 반면 중동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치적 영향력이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석유와 바이오에탄올을 양손에 쥔 브라질도 고유가 시대의 승자로 꼽힙니다.
연일 최고치 국제유가
7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서부텍사스유(WTI) 12월 인도분 전자거래 가격이 배럴당 98.62달러까지 올라갔다가 96.37달러로 거래가 마감됐습니다. 멕시코 산유시설 폭풍피해와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정정불안 등으로 인해 유가는 연일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는데요.
Traders work in the pits at the The New York Mercantile Exchange, November 7, 2007.
2003년 이라크전쟁 이래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국제경제의 지정학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앞두고 세계의 정치, 경제 지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지요.
최대 승자는 러시아입니다. 옛소련이 무너진 뒤 파산상태로 몰려 1998년 채불의무이행중지(모라토리엄)를 선언했던 러시아는 고유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초 러시아는 서방과 국제기구에 진 빚을 일정보다도 조기상환했습니다. 돈 뿐 아니라 정치적 위상도 달라졌지요. 서양 눈치를 봤던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과 달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에 맞서 큰소리를 칠수 있는 것은 에너지 때문입니다. 2년전 겨울과 지난 겨울 크렘린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파이프라인을 잠그자 유럽은 추위에 떨었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도 오일달러의 힘으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신흥 산유국의 부상
서방이 인권탄압국으로 손꼽는 수단은 아프리카 중남부 앙골라와 함께 올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국이 됐습니다. 수단이 다르푸르 사태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아랑곳 않는 것은 석유 덕분이지요.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야외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사는' 수단 신흥 부자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앙골라는 부패 때문에 에너지자원의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6.1%를 기록했습니다. 올해엔 24%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엑손모빌, BP 등 다국적기업에 넘어갔던 유전개발권을 환수해 서방의 반발을 샀지만, 석유수입을 공공지출로 전환해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압력 속에서도 쿠바,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주변 `좌파 국가'들에 에너지를 대주면서 남미의 새로운 카리스마로 떠올랐고요(베네수엘라에서 요새 반 차베스 시위 엄청 늘고있는 것을 보니 과연 내실 있는 카리스마인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만). 브라질은 산유국이면서도 바이오에탄올 투자에 나서 차세대 바이오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고민 많은 수입국들
중동산유국들은 석유경제의 영원한 강자라고 하지만 국가별로 부침이 없지 않습니다.
사우디는 압도적인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물리적 한계 때문에 증산을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의 유가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과거보다 위상이 오히려 낮아진 것 같습니다. 급변하는 중동 정세 속에서 아랍권 맏형으로서의 발언권을 잃은 것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가 개혁에 실패해 오일달러를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웃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와 아부다비, 도시국가인 카타르 등은 석유수입을 인프라 투자에 쏟아부어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요.
석유 수입국들은 갈수록 고통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소비의 절반을 수입하는 중국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 애써 기름값 상승을 누르고 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유통 차질이 빚어져 석유난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유를 수입하면서 오히려 혜택을 보는 나라도 있다는군요. 뉴욕타임스는 "독일의 경우 석유를 전량 수입하지만 러시아, 중동과의 교역이 늘어 득을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유가로 인한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인데... 우리는 얼마나 똑똑하게 해나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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