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아시아를 휩쓰는 억압의 망령

딸기21 2007. 11. 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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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동부 라호르에서 6일 경찰이 비상사태 선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변호사를 붙잡아가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로 헌정이 중단된 파키스탄에서 정국 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무샤라프 정부는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군부정권에 쫓겨난 대법원장은 국민들의 봉기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파키스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군사독재와 억압이 사라지지 않은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21세기 들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교묘히 결합되면서 독재의 망령은 더욱 위세를 떨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슬라마바드 `폭풍전야'

국가비상사태 나흘째인 6일에도 파키스탄 전역에서 산발적인 항의시위가 일어났으며, 특히 동부 라호르에서 시작된 법관과 변호사들의 시위가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전파됐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슬라마바드에서는 당국도 시위대 무력진압을 자제했고, 시민들도 공포에 질려 거리로 나서지 않아 도심은 예상보다 조용했다고 합니다.
베나지르 부토 전총리와 나와즈 샤리프 전총리 등 야당 인사들은 반(反) 무샤라프 전선에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서로간의 갈등을 묻어둔채 일단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토 전총리는 귀국 이래 머물렀던 남부 카라치를 떠나 이슬라마바드로 이동했으나 무샤라프 대통령과는 만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습니다. 부토 전총리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을 나눠갖기로 합의하고 지난달 귀국했지요. 그런데 무샤라프 대통령이 갑자기 비상사태를 선포함으로써 협상이 사실상 무(無)로 돌아간 꼴이 된건데... 글쎄요, 정치인들의 '진심'은 언제나 믿거나말거나이니...

비상사태선포와 함께 해임돼 가택연금 중인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전 대법원장은 "희생의 시간이 왔으니 헌법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자"며 국민들에게 봉기를 촉구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날 대법관 4명을 새로 임명하고, 민영방송 송출을 차단했습니다.

독재 그늘 드리워진 아시아

최근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를 무력진압한 미얀마 군정은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 요구를 거절한채 지난 2일 미얀마 주재 유엔 사무소장에게도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군정지도자 탄슈웨 장군은 미얀마를 방문 중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와의 면담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AFP통신이 6일 전했습니다. 군정은 지난 8월부터 한달여에 걸쳐 계속된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를 진압, 2000명 이상을 체포해 내륙 오지의 수감시설에 가두는 등 가혹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지요.

방글라데시에서는 독재정권이 지난 1월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어 과도정부가 수립됐지만 총선을 연기하고 민주화 조치들도 계속 미루고 있는 모양입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9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군부가 내세운 `유사 민간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군 출신인 수라윳 출라농 현 총리는 지금 군복을 벗고 민간 정부를 가장하고 있지만, 국왕의 은밀한 지원을 등에 업은 군부를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군요.

필리핀
에서는 2년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대선 부정선거 의혹과 측근 부패, 경제개혁을 내세운 헌법 개정 시도 등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지요. 캄보디아의 군사정권 수장인 훈센 총리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하나로 꼽히고요.




`테러와의 전쟁'에 상처입은 민주주의

냉전이 끝날 무렵부터 아시아에서는 민주화 열기가 확산됐고, 1996년 중후반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주의와 자유화는 이 지역의 대세가 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는 과거 회귀를 떠올리게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아시아 독재정권들이 교묘하게 편승, 면죄부를 얻고 억압체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파키스탄이죠. 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대통령은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덕에 정권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액수는 까먹었지만, 2002년 초에 미국이 아프간 전쟁기지 내준 파키스탄에 고맙다며 원조를 늘리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오래돼서 액수는 까먹었지만, 암튼 천문학적인 금액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 등등에 이어 파키스탄이 갑자기 미국의 최대 원조국가 중 하나로 떠올랐었죠.
암튼 9.11 이래로 파키스탄이 미국에서 원조받은 돈이 총 110억달러(약 10조원)라고 하니, 알만하지요. 그거 쏟아부었는데, 미국이 무샤라프를 그냥 내팽개칠수 있겠어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이 신문은, 영어로 읽으실수 있거나 아니면 공부하시려는 분들은 한번 보실만 해요, 내용이 진짜 괜찮아요)는 6일 `미국이 무샤라프를 고집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테러전쟁 파트너로 묶여 있는 워싱턴과 이슬라마바드의 관계를 꼬집었습니다. 파키스탄 보안당국이 반정부 시위를 벌인 변호사들을 `테러 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는 CNN방송 보도는, 대테러전쟁과 억압체제의 결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민중의 힘을 등에업고 집권한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은 인기가 떨어지자 수빅만(灣) 기지에서 철수했던 미군을 다시 불러들였죠. 아로요 정부는 이슬람세력과 분리운동 집단을 테러조직으로 몰아붙여 학살에 가까운 살상을 자행했지만 미국 지지 덕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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