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을 임상실험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빈민층 어린이들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세계 최대 제약회사 화이자가 85억달러(약 8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했다.
로이터통신은 나이지리아가 화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85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30일 보도했다.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인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 빈곤층을 주타깃으로 벌이고 있는 임상실험의 문제점이 이 소송을 통해 다시한번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건의 발단은 1996년 화이자가 나이지리아 소도시 카노에서 벌인 뇌수막염 치료제 임상실험. 당시 카노 일대에는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뇌수막염이 퍼져 반년새 1만2000명이 숨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막염은 감염자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 몇시간 내에라도 사망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전염병이다.
화이자는 이곳에서 어린이 200여명에게 뇌수막염 치료제로 개발된 `트로반(Trovan)'이라는 약의 임상실험을 했다. 대상자 절반에게는 트로반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효과가 검증된 기존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실험이 끝나고 몇달 지나지 않아 어린이들 중 11명이 숨졌고 수십명의 후유증 비슷한 장애를 앓았거나 지금도 앓고 있다.
카노시가 위치하고 있는 카노 주(州) 정부와 나이지리아 연방정부는 화이자가 임상실험 대상자의 동의와 사전 정보제공 등 국제적인 실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화이자 본사가 있는 미국 법원에 민ㆍ형사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2005년 이 사건을 피해자들이 있는 곳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나이지리아 법원으로 넘겼다. 소송은 오는 3일 재개될 예정이다.
화이자측은 실험 당시 모든 절차를 적법하게 진행했다면서 "아이들이 숨진 것은 약 때문이 아니라 뇌수막염 감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어린이 가족들은 아이들이 약 부작용 때문에 숨졌다는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트로반 실험에서 두 딸을 잃은 무스타파 마이세킬리라는 남성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수막염 초기 증상을 보였던 딸들은 병원에 보내질 때만 해도 걷고 말하고 할수 있는 상태였다"며 "아이들은 화이자가 준 약을 계속 먹다가 몇주 만에 숨졌다"고 주장했다.
트로반은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성인용 수막염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았으나, 일부 환자들에게 심각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별도의 경고문이 붙은 상태다. 이슬람 도시인 카노 당국은 트로반 사건이 일어난 뒤 서양 회사들이 만든 에이즈 백신 등 전염병 치료제들을 대거 판매금지시켜 엄청난 역작용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전문가들은 트로반 뿐 아니라 거대 제약회사들이 인도나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벌이는 임상실험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약회사들은 비용이 적게 들고 감시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빈국들에서 대규모 임상실험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실험 대행사'들을 동원해 실험을 하곤 한다. 신약에 생명을 건 환자들의 절박함을 악용해서 플라시보(위약) 투약 실험을 하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대행 실험'을 하는 행위, 빈민층 부모들에게 푼돈을 주고 어린이들을 신약 실험에 동원하는 일 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제약회사들은 "의학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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