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급 총리' 지탄받고 떠나는 아베, 급부상한 후쿠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말 참의원 선거 때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 자민당을 제2당으로 전락시키고, 주변 각료들의 잇단 스캔들로 갈곳없이 궁지에 몰렸던 그는 마지막까지 총리직을 지키기 위해 버티다가 결국 12일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2005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화려한 후광 속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로 야당이던 민주당은 물론이고 자민당내 반고이즈미 세력까지 모두 초토화됐습니다. 자민당은 유례없는 스타 정치인을 맞아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고, 아베 당시 관방장관은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화려하게 부상했습니다. 이후 `포스트 고이즈미'를 결정짓는 자민당 총재선거는 아베를 위한 잔치나 다름없었고, 차기 총리를 묻는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도 아베는 항상 1위였습니다.

2006년 9월, 아베는 당당하게 총리관저에 입성했습니다. `정계의 이단아'였던 전임자 고이즈미와 달리 정치 명문가 출신,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와 `정계의 프린스'라고까지 불렸답니다. 전후 세대인데다 왕자님같은 성장 배경을 갖고 있던 탓에,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콤플렉스 같은 것은 없어보이는 인물이 아베였습니다.
그러나 그후 1년 동안 그의 당당함은 위기관리 능력 부재, 왜곡된 역사인식, 잘못된 인사와 무책임한 처신 등으로 얼룩졌습니다. 미국 의원들이 일본에 2차 대전 전쟁범죄 행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낼 때까지 일본 각료들과 의원들의 입에서는 역사를 부정하는 망발이 계속됐습니다. 취임 전 대북 강경론으로 인기를 얻었던 아베 정권은 북핵문제가 대화로 풀려나가기 시작하자 딴지를 걸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일본을 오히려 외톨이로 만들었습니다. 초대 방위상이라는 인물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원폭 투하를 정당화해 자국민들까지 경악하게 만들고 결국 물러났습니다.
지난 5월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농수산상이 현직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후임자마저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심지어는 3번째로 내세운 농수산상마저 부정 행위가 드러나 일주일만에 낙마했습니다. 국민연금 기록을 부실관리한 수십년간의 행정 실책이 드러나자 아베 정부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개선책을 내와 공적 부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다시 세우는 대신 어이없는 대응을 했습니다. 총리와 후생노동상 등이 여름 보너스 일부를 반납하기로 했다고 발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결국 정치자금 문제와 연금기록 부실 문제는 지난 7월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당 참패를 가져온 양대 요인이 됐습니다.

2007년 9월, 한 해를 못 채우고 떠나게 된 아베의 모습은 `정치인의 자세란 어때야 하는가'를 반면교사로 보여줍니다.
당 안팎의 퇴진 여론 속에서도 총리직을 지키겠다던 그는 지난 10일 의회에서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 연설한지 딱 2시간 만에 자민당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 등에게 사퇴 의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공식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스스로 "자리를 걸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던 자위대 해외 파병 관련 법안 의회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총리가 항복선언을 한 겁니다. 언론들은 "황당한 타이밍""무책임한 퇴진" 등 맹비난했습니다. 급기야 `D급 총리'라는 말을 들으며 물러나게 된 아베, 정치인은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차기 총리, 후쿠다 급부상 (9.18)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짓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초 유력시되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을 누르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급부상해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자민당 소속 의원들 대다수가 후쿠다 지지를 선언, 압승이 점쳐지는 등 벌써 대세는 결정난 분위기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총리로 후쿠다가 크게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국민 여론조사에서 `다음번 총리로 후쿠다와 아소 중 누가 어울리나'를 물은 결과 후쿠다를 꼽은 대답(53%)이 아소를 선택한 쪽(21%)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17일 보도했다. 아사히가 15~16일 실시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전격적인 사퇴 발표 이후 정치권 동향과 차기 정권 구도에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총재에 후쿠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58%)이 아소를 택한 사람(22%)보다 훨씬 많았다.
요미우리가 자민당 총재선거에 참여하는 국회의원과 지역대표들을 상대로 벌인 `동향조사'는 이번 선거에서 후쿠다가 압승할 것임을 보여줬다. 의원들 중 213명은 명시적으로 후쿠다 지지를 밝혔으며, 확답하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는 후쿠다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반면 아소를 지지한다고 밝힌 의원은 45명에 불과했다. 후쿠다는 지역 대표들에게 할당된 141표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어, 전체 투표수의 과반인 265표를 훨씬 넘겨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다가 소속돼 있는 최대 파벌 마치무라(町村)파를 비롯해 8개 파벌들은 이미 후쿠다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이번이 당권 도전 3수 째인 후카다가 71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된 것은 특유의 설득력있고 신중한 태도 덕도 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나 아베 같은 `나홀로형 총리'에 대한 반감도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차기총리가 `결단형'(31%)보다는 `협조형'(62%) 인물이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71%는 후쿠다를 `협조형'으로 꼽았다.
고이즈미와 아베가 추진했던 경제성장과 경쟁 중시 개혁노선에 대해서는 `계속하길 바란다'는 응답이 54%, `그렇지 않다'는 쪽이 36%로 여전히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평화헌법 개정 방침을 차기 총리가 이어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각각 45%로 엇갈렸다. 후쿠다는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쿠다는 고이즈미-아베-아소로 이어지는 자민당 내 우파와는 선을 그으며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온건파로 입지를 굳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