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총리 정권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들의 연금기록을 대거 분실한 사실이 들통난데 이어, 연금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에서 무려 40년간이나 이 문제를 쉬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드러나 총체적 행정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초대 방위상’으로 주목받았던 각료는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가 결국 물러났다. 각료의 자살과 설화, 행정미숙 등이 겹쳐 아베 내각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음달 참의원 선거를 앞둔 자민당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사라진 연금기록’ 40년간 쉬쉬
아사히 신문은 4일 연금 관리를 맡고 있는 사회보험청이 이미 40년 전부터 기록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사회보험청은 공적 연금 기록 5000만 건을 분실한 사실이 두달전 들통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 사태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돼온 문제라는 것이다. 아사히는 사회보험청 내부 문서들을 검토한 결과 이미 1967년에 연금보험업무과에서 내부자료를 만들어 “기록 정리를 기계화하면서 잘못이 많았다”는 점을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20년 전인 1987년의 내부 간행물에는 연금 기록이 ‘공중에 뜬’ 사실이 지적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폭 발언’ 장관 사임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원폭 투하를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방위상은 결국 3일 사임했다. 규마 방위상은 지난달 30일 지바현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면서 “(원폭이) 나가사키에 떨어져 비참한 상황을 맞았지만 그걸로 전쟁이 끝났으니 어쩔수 없었었다”“원폭이 아니었으면 소련이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삼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 반전반핵단체들과 전쟁 유가족 단체들은 이 발언이 알려지자 거세게 반발하며 사임을 요구했다. 참의원선거에 ‘원폭 불똥’이 튈까 우려한 자민당 내에서도 방위상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아베 정부가 출범한 이래 9개월새 각료 경질은 벌써 세 번째다. 사다 겐이치로(佐田玄一郞) 전 행정개혁상이 정치자금 문제로 지난해말 물러났고, 지지난달에는 마쓰오카 도시카쓰(松岡利勝) 전 농수산상이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려 자살했다. 규마 방위상은 지난 1월 방위청이 성(省)으로 승격된뒤 초대 방위상을 맡아 주목받았으나 설화(舌禍) 때문에 중도 하차하는 처지가 됐다.
아베 일본 총리는 ‘원폭 발언’으로 거센 비난을 받다 결국 사퇴한 규마 방위상의 후임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54·사진)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내정했다고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일본에서 여성이 국방 책임을 맡는 것은, 과거 방위청 시절을 포함해 사상 처음이다. 고이케 장관은 4일 오후 왕실 임명장을 받고 공식 취임한다.
고이케 장관은 이집트 카이로대학을 나와 아랍어 통역과 TV 앵커로 활동했다. 오자와 현 민주당수가 이끌던 일본신당을 거점으로 1992년 정계에 진출했으나 자민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환경상을 지냈으며 재작년 이른바 ‘우정 해산’ 뒤 치러진 선거 때에는 ‘자객 공천’을 통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현재 중의원, 참의원 합쳐 6선 째의 중견 정치인이다.
고이즈미 정부 시절에는 ‘개혁의 마돈나’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충성파, 개혁파 관료로 이름을 날렸다. ‘첫 여성총리 후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높다. 행정에서는 개혁을 추진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파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정부 들어서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본뜬 ‘일본판 NSC’ 창설 준비팀을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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