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블레어가 어느새 10년

딸기21 2007. 5. 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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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을 내세우며 유럽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2일 집권 10주년을 맞는다.

보수당 장기집권을 끝내고 화려하게 출범한 블레어 총리는 집권 초기만 해도 `유럽의 대안'으로 각광받았으나 이라크전 참여와 미국 추종 일변도의 외교정책 등으로 최근 몇년간은 여당 안에서조차 지탄의 대상이 됐다. 로이터, AFP통신 등은 1일 유럽의 `새 얼굴'에서 외톨이로 전락하기까지, 영욕이 교차한 블레어 총리의 10년을 돌아보는 기사들을 실었다.


영국인들 냉담한 평가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의 절반은 블레어 총리 집권기간 동안 생활이 더 나빠졌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201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8%는 "블레어 총리 집권 기간 동안 생활이 나빠졌다"고 말했고 19%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26% 뿐이었다. 블레어 총리가 물러나면 "서운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20%에 그쳤으며 39%는 "행복할 것", 34%는 "신경 안 쓴다"고 대답했다. 집권 10년 동안 총리의 업무 수행에 대한 총평에서는 45%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24%만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영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블레어 총리가 언제 물러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질긴 화학섬유의 이름을 딴 `테플론 토니'라는 별명까지 얻은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안팎의 사임 요구에도 끈질기게 자리에 매달려왔다. 3일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는데 현재로선 노동당의 참패가 예상된다. 영국 언론들은 블레어 총리가 이 선거 뒤 혹은 늦어도 다음주 중에는 거취를 밝힐 것으로 보고 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9월 전당대회에서 "1년 내 퇴임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블레어 총리가 지방선거 뒤 퇴임 의사를 밝히고 다음달 말 쯤 퇴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좌파 상징에서 `푸들'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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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18년 집권을 끝장내고 1997년 총선 압승 뒤 화려하게 등장했던 블레어 총리는 유럽 신좌파의 상징으로 각광받았다. 외교무대에서 영향력을 거의 잃은 듯했던 영국은 젊은 총리 밑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제3의 길, 뉴레이버(New Labour·신노동당) 같은 말들이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고 잠시나마 프랑스, 독일 등 주변국들에서도 좌파 바람이 불었다.
43세 젊은 나이에 취임한 블레어 총리는 좌파 노선을 뒤집어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스코틀랜드, 웨일즈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줬으며 1998년에는 북아일랜드 분쟁에 마침표를 찍는 ‘굿프라이데이 협정’을 맺는 성과를 거뒀다. 매력적인 젊은 총리, 미모의 유명 변호사 부인은 항상 언론의 화제였다. 경제성장률은 3%대로 올라갔다.

블레어 총리의 업적을 퇴색시킨 것은 이라크전.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대다수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가세했다. 영국군은 미군과 함께 이라크 진창에 빠졌고 사상자가 계속 늘었다. 전쟁 전 영국 정부가 내놨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보고서는 왜곡된 것임이 폭로돼 스캔들로 비화했다.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푸들'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으며 당내에서는 사퇴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지난해 말에는 2005년 총선 전 기업가들에게 정치자금을 빌리는 대가로 귀족 작위를 내준 사실이 드러나 현직 총리로는 최초로 관저에서 경찰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포스트 블레어' 여전히 안개 속


블레어 총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늙은 영국'을 국제무대의 주요 플레이어로 되살려낸 블레어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고, 이라크전의 그림자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다. 블레어 총리는"역사가 나의 정책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블레어 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총리직을 물려받을 사람으로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1순위로 꼽힌다. 브라운 장관은 이미 13년전 블레어 총리와 당권 경쟁을 벌이면서 이른바 `그래니타 밀약'을 맺어 차기 총리직을 점찍어놨다. 존 리드 내무장관 등의 도전이 있었지만 당론이 정리되면서 내분은 가라앉는 추세다.

그러나 노동당 지지율이 한때 10%대로까지 떨어지는 등 바닥을 기고 있어, 브라운 체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채 요동을 겪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온정적 보수주의'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보수당의 데이빗 캐머런 당수는 브라운 장관을 타깃으로 삼아 벌써부터 공격을 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브라운 장관은 대학시절부터 유명했던 좌파 이론가 출신이며 `진지한 정치인'으로 정평 나 있다. 하지만 대중을 휘어잡는 매력이 없어 노동당을 살릴 차기 주자로는 부적격이라는 평가도 많다. 다음번 총선은 2010년7월 실시된다. 보수당은 조기총선을 강력 주장하고 있으며, 어떤 변수들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집권 10년

 

1994.5.12 존 스미스 노동당수 심장마비로 사망

       5.31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차기 총리직 놓고 ‘그래니타 밀약’ 체결

       7.21 블레어, 노동당 당수 취임

1995.4.29 블레어 당수, ‘신노동당(New Labour)’ 선언

1997.5.1 총선에서 노동당 압승

       5.2 블레어 총리 취임

       5.6 브라운 재무장관, 영국은행에 금리결정권 부여

1998.4.10 북아일랜드 평화 위한 ‘굿프라이데이 협정’ 체결

       12.16 미국·영국 연합군, 이라크 공습(제2걸프전)

1999.6.1~3 미국·영국군 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코소보 공습 시작

2000.5.4 노동당 내에서 반 블레어 기치 내건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 당선

       7.5 블레어 장남 유안, 음주 소란으로 입건

2001.2.20 대규모 구제역 발생, 총선 연기

       6.7 노동당 총선 승리, 블레어 총리 2기 시작

       6.8 2기 내각 발표, 잭 스트로 외무장관 임명

       10.7 영국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참여

2002.9.24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보고서 발표, 노동당 의원들 반발

       12.10 블레어 총리 부인 셰리, 부동산 헐값매입 스캔들 관련 대국민 사과

2003.2.15 이라크 공격 반대 대규모 시위

       3.17 로빈 쿡 노동당 하원 원내 대표,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며 사임

       3.18 노동당 의원 139명, 이라크 공격 반대 선언

       3.20 이라크 전쟁 시작

       5.29 영국 언론들, 정부의 이라크 WMD 보고서 왜곡·조작 의혹 제기

       7.18 정부 이라크 WMD 보고서 작성자 피살, 스캔들 비화

       9.29 브라운 장관, ‘총리직 이양 약속’ 언급하며 블레어 총리 압박

       10.19 블레어 총리 심장 수술

2004.2.22 블레어 총리, 당내 퇴임 요구 거부

       6.10 지방선거 노동당 참패,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재선

2005.5.5 노동당 총선 승리, 블레어 총리 3기 시작

2006.9.25 블레어 총리,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퇴임 압력 받고 “1년 내 사임” 약속

       12.14 경찰청, 정치자금 스캔들 관련 블레어 총리 조사

2007.5.2 블레어 총리 집권 1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