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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은 미국의 '총기문화'

딸기21 2007. 4. 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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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그런데도 총기를 손에 넣었다고?"

미국 abc방송은 20일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범 조승희씨가 이미 2005년 스토킹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 있고 정신적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렇게 반문했다. 정신적인 문제들에는 여러가지 유전적, 환경적 요인들이 있고 조씨의 상태가 어땠는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던 조씨가 총기를 쉽게 총을 두 자루나 샀고, 살상용 탄환을 대량구입했고, 학교 주변에서 버젓이 사격연습을 했고, 끔찍한 다중살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주범은 `총기 문화'

조씨가 정신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 인터넷사이트에는 "범인이 총기 없는 한국에 살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이번 사건의 주범은 미국의 총기문화 자체"라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빗발쳤다. 워싱턴포스트 전문가토론회에 참석한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샐리 세이털은 "총기 휴대에 너무 관대한 버지니아주 법이 참사를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분교(UCLA) 아시아연구소의 톰 플레이트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희생자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총기 때문에 변을 당한 것"이라며 총기 보유 문제점에 초점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유럽과 일본 언론들은 사건발생 직후부터 미국의 총기문화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미국 총기 규제 연표


도마에 오른 `총기 정치학'

미국에서 총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총기 살인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때마다 시민단체들은 총기 규제를 외치지만 총기회사들의 막강 로비 앞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사건이 터진 날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총기 소유를 금지시켜선 안된다"고 말했고 한 총기소지자 단체는 "총기 소지를 자유롭게 해야 학교가 안전해질 것"이라 주장하기까지 했다. 전미총기협회(NRA)는 워싱턴의 유력 로비단체 중 하나다. 정치인들과 총기 옹호단체들의 커넥션 때문에 `총기 정치학(Gun politics)'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이번 사건은 총기정치학을 다시한번 여론의 도마위로 끌어올렸다.

내년 대선 이슈될까

버지니아 참사가 벌어진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의회에서 묵념을 했지만 정계는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뉴욕타임스가 19일 사설에서 비꼬았듯,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자금 모금에 열을 올리던 각 당의 대권주자들은 총기 옹호단체에 밉보이는 대신 침묵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예방책이 최대 현안이 된 만큼 내년 대선전에서는 후보들이 총기 규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총기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 Gun rights 대 Gun control, 기나긴 논쟁의 역사

총기를 가질 권리(Gun rights)냐, 총기 규제(Gun control)냐. 미국 정치에서 총기 논란은 낙태, 환경보호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 최대 이슈 중 하나다. 이미 지난 세기 초부터 총기규제법안을 놓고 총기옹호론자들과 규제론자들이 싸움을 벌여왔다.

옹호론자들은 식민시대 이래의 `자위권'에서 역사적 연원을 찾는다. 독립 이전의 개척자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른바 `서부개척시대'에는 땅을 넓히기 위한 프런티어(Frontier) 문화가 확산되면서 총기소유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에게 총은 미국 역사를 구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고, 미국 문화의 자랑스런 아이콘이다.
1856년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규정하면서 총기 소지 자유를 포함시킨 대법원의 `스콧 대 스탠포드 사건' 판결은 옹호론자들의 법적 기반이 되고 있다. 1871년 창설된 전미총기협회(NRA)를 비롯해 핑크피스톨, 총기소유자협회(GOA) 등의 이익단체들은 총기 규제 법안들을 번번이 무산시키는 로비력을 발휘해왔다. 이들은 "같은 칼도 요리사가 쓰면 유용하고 살인범이 쓰면 흉기가 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들며 "총기 자체는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의회에 등록된 총기 관련 로비단체만 145개에 이른다.

반면 규제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1911년 뉴욕시장이던 윌리엄 게이너가 극단주의자의 총격을 받은 뒤 규제 운동이 벌어졌고 이듬해 최초의 총기 규제 법안인 `설리번 법'이 만들어졌다. 1968년과 1969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잇달아 저격범들에 암살당하자 거센 총기 반대 캠페인이 일어났다. 1974년 창설된 총기규제연합(NCBH)과 소총규제(HCI)를 필두로 시민단체들도 속속 생겨났다. 1980년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이 뉴욕에서 피살됐을 때에도 총기 반대 목소리가 잠시 커졌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옹호론자들과 규제론자들의 기나긴 힘겨루기에서는 전자가 더 위력을 발휘했으며 미국은 잠재적 다중살해범도 마음대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나라로 남아 있다.

버지니아 사건 계기로 총기 규제 움직임  [연합뉴스]

미국 의회가 내주중 총기 구입 자격을 보다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0일 보도했다.
WP는 미국 하원이 총기규제를 옹호하는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지원하에 현재 미시간주 존 딩겔 의원 주도로 전국총기협회(NRA)와 관련 법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을 인용, 이같이 전했다. 만일 이 법안이 상정되면 그동안 NRA의 강력한 로비로 인해 사실상 봉쇄되어온 미국내 총기규제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법안 통과 가능성도 낮지 않다고 WP는 분석했다.
현재 협의중인 법안은 총기구입 자격을 보다 엄격히 규정하는 한편 총기 구입시 구입자의 전과나 정신병력을 파악, 해당자에 대해서는 총기판매를 불허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각주는 연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각종 정신병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이나 관련 위법사실을 연방정부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고, 현재 운용되고있는 `전국전과조회시스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주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는 1968년부터 이미 법적으로 정신병력자 등에게 총기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관련 정보가 제대로 통합되지 않아 실효성이 의문시돼왔었다. 지난 16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도 범인 조승희씨가 2005년 정신병과 관련된 법원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던 점이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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