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190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이번엔 “남학생도 납치하겠다”  

여학생들을 집단 납치, 강제결혼을 시키고 인신매매를 하겠다고 한 나이지리아 극단주의 무장조직 ‘보코하람’이 이번에는 “남학생들도 납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도 아부자 남쪽 마쿠르디에 있는 마쿠르디 컬리지에 “학교를 공격해 학생들을 납치하겠다”는 위협이 담긴 서한이 전달됐다고 나이지리아 NAN 통신이 19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 학교 교장 고드프리 우구두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보코하람의 한 분파로부터 이런 위협을 받았으며, 지난 14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협박 편지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보코하람은 서한에서 남학생들을 끌어다가 지난달 납치한 여학생들과 강제결혼을 시킬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우구두는 “그들은 우리 학교 부근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 가브리엘 중학교를 습격할 뜻도 내비쳤다”고 말했다. "..

[Q&A]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여학생 납치

나이지리아에서 극단주의 조직이 여학생들을 집단 납치,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어떤 사건인지 알아봅니다. 보코하람의 여학생 납치, 어떻게 진행됐나 나이지리아 이슬람 무장세력 보코하람이 지난달 14일 나이지리아 동북부 보르노주 치보크의 한 중학교를 습격해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16~18세 여학생 329명을 납치했습니다. 이 중 53명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나머지 276명은 아직도 보코하람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억류된 여학생 중 2명은 뱀에 물려 숨졌으며, 기독교인 여학생들은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코하람은 억류 중인 여학생들은 노예시장에 팔겠다고 했다는데 보코하람은 지난 5일 납치한 여학생들을 ”인신매매 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다. 여학생들..

납치됐다 탈출한 나이지리아 여학생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  

사라 라완은 나이지리아 치복의 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하던 19세 여학생이다. 라완은 지난달 학교에 가다가 무장한 남성들에게 납치됐다.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이슬람 극단조직 ‘보코하람’에 납치된 300여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다행히 라완은 인신매매되거나 노예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나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불에 타버린 학교를 보면서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라완은 10일 AP통신 전화인터뷰에서 “납치됐을 때에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두려웠다”면서 “다시 학교에 간다는 생각만 해도 그들이 떠올라 괴롭다”고 말했다. "두려워도 학교로 돌아갈 것" 그러면서도 라완은 “정말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말시험도 치러야 하고, 공부를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다..

'만델라 세대' 첫 참여한 남아공 총선, 부패 집권당 ANC 20년 공과 심판대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텡주의 베케르스달 마을은 흑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광산촌이다. 이곳 투표소 앞에는 7일 새벽 총선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줄을 섰지만 표정에는 분노와 당혹감이 역력했다.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의 잇단 사치·부패 스캔들에 분노한 주민들은 투표를 앞두고 연일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당국은 총선 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성난 주민들은 급기야 선거 전날 투표소에 불을 질렀다고 SAPA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번 총선은 1994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가 끝난 뒤 태어난 자유로운 세대(born-free)인 ‘만델라 세대’가 투표에 참여하는 첫 선거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는 20년간의 민주화 과정을 총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르완다 학살 20년만에... 남수단과 중앙아프리카에서 '제노사이드' 재연 우려

아프리카 중부 남수단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노사이드(종족말살)를 방불케하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르완다 학살 20년만에 다시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남수단 온라인 매체인 수단트리뷴은 최근 북부 벤티우에서 민간인 최소 200명이 반군에 살해되는 등 곳곳에서 대규모 살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벤티우는 수단과 남수단이 공동관리하는 아브예이 유전 부근에 있는 소도시다. 지난 15일 벤티우를 장악한 반군은 이틀에 걸쳐 병원과 모스크, 교회 등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남수단,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제노사이드' 수단트리뷴은 칼리발리 모스크 한 곳에서만 200명 가까이 희생됐으며 세계식량계획(WPF) 구호시설과 가톨릭 교회에서도 민간인들이 반군에 목숨을 잃었다..

나이로비 테러 ‘알샤바브’, 소말리아에서 또 테러

지난해 9월 케냐 나이로비의 쇼핑몰에서 대형 테러공격을 일으킨 소말리아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샤바브’가 신년 벽두부터 또 테러를 저질렀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호텔에서 1일 알샤바브가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연쇄 테러가 일어나 10명 이상이 숨졌다고 소말리아 라디오방송 RBC가 보도했다. RBC에 따르면 이날 모가디슈의 고급호텔이 자지라 호텔 앞으로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돌진, 자폭하면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호텔 앞에는 보안요원들과 무장경찰이 있었지만 돌진해오는 차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공격이 있고 나서 30분쯤 지나 다시 폭탄차량이 돌진해 건물에 충돌했다. 첫번째 공격 뒤 사고현장을 조사하고 있던 경찰관 2명을 포함해 6명이 두번째 공격에 희생됐다. 경찰은 공격을 감행한 테러범이 3명..

분쟁과 석유, 남수단이라는 나라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남수단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모두 민간인들을 구분 없이 공격해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600명 이상 숨졌다고 한 것이 며칠 전 상황이고, 지금은 인명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21일에는 미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파병된 미국 군용기가 반정부군의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돼 있던 인도군 병사 3명이 반정부군의 공격에 사망했습니다. 미군은 현지 체류중인 자국민 300여명을 구출하는 데 실패해 다시 군사행동을 시도하려 하는 모양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의 ‘작전’이 임박했다면서, 해병대원 150여명이 인근 지부티에 도착해 미국민 구출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습니다. 반기..

만델라 이후의 남아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과 화해의 상징으로 넬슨 만델라만큼 유명한 사람이 데스먼드 투투다. 하지만 은퇴한 성공회 대주교 투투는 만델라 추모기간에 두 번이나 모욕을 당했다. 지난 10일 요하네스버그의 축구장에서 만델라 추도식이 열리는 사이 자택에 강도가 든 것이 첫번째 사건이었다. 두번째 사건은, 생전의 동지였던 만델라의 장례식에 초청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투투는 15일 아침 만델라의 고향 쿠누를 비춘 방송 화면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투투가 이끄는 자선재단 측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투투를 의도적으로 초청하지 않은 것이라 보고 있다. 주마 측은 “그럴 리 없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다”라고 해명했고, 투투도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만델라의 장례식..

큰딸이 말하는 만델라의 ‘마지막 순간’  

“죽음의 과정조차 ‘대단한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버지의 죽음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자녀들, 손주들, 아내, 모두가 24시간 그의 곁에 있었고, 임종을 함께 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큰딸 마카지웨가 만델라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만델라와 첫 부인 에블린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마카지웨는 9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가족들 모두가 함께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에 대해 털어놨다. 만델라의 가족들만델라의 ‘정치적 후광’은 누구에게? 만델라의 큰딸 마카지웨가 9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임종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BBC 웹사이트 그의 말에 따르면 만델라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목요일인 지난 5일 아침(현지시간)..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가 남긴 말과 유산들

넬슨 만델라의 발언과 유산들, 그가 내세운 투쟁과 용서와 화합의 정책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역사적인 ‘리보니아 재판’에서 했던 ‘자유를 향한 이상’은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고, 그가 집권한 뒤 펼친 ‘진실과 화해’ 정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과거사 규명과 통합의 모델이 됐다.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1964년의 ‘리보니아 재판’이었다. 반역죄로 기소된 만델라는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재판의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투쟁노선과 인종평등의 사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밝혔다. “우리의 싸움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 동포들의 투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