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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여희의 후회

딸기21 2007. 2. 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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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의 후회

26.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미혹 아닐가?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 아닐까? 미녀 여희(麗姬)는 애(艾)라는 곳 변경지기 딸이었네. 진(晋)나라로 데려갈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 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난 어릴 때 '계집 姬'라고 배운 것 같은데 요사이 컴퓨터에는 '아가씨 희'라고 나오네.
그렇구나 '놈 者'도 '사람 자'가 되었고.

구작자와 장오자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규중칠우쟁론기 같은 책에 교두각시 세요각시 하는 이름들이 나오는 것처럼 사물을 의인화시켜 우화를 만든 것은 중국에서 장자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여희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넘어서라, 삶에의 집착을 버려라 하는 이야기같은데 그렇다고 장선생이 '죽어라!' 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꿈에 술을 마시며

27. 꿈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아침에는 섭섭해서 운다. 꿈에 울며 슬퍼한 사람은 아침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하러 나간다. 우리가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지. 심지어 꿈속에서 해몽도 하니까.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지. 드디어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의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항상 깨어있는 줄 알고, 주제넘게도 그러함을 분명히 아는 체하지. 임금은 뭐고 마소 치는 사람은 뭔가? 정말 꼭 막혀도 한참일세. 공자도 자네도 다 꿈을 꾸고 있으며 내가 공자나 자네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일세. 이런 말이 괴상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들릴 테지만 만세(萬世) 후에라도 이 뜻을 아는 큰 성인을 만난다면, 그 긴 시간도 아침저녁 하루 해에 불과한 것처럼 짧게 여겨질 것일세.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라하더니, 이제는 현실과 꿈의 경계도 허물라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겠다.


논쟁이 되지 않음은

28.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자네도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딴 사람들은 더욱 깜깜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탁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

29. 자네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판단해 보라고 하면, 이미 자네 생각과 같으니, 그가 어찌 이를 옳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바로 판단하게 한다면, 내 생각과 같으니, 그가 어찌 이를 판단할 수가 잇겠는가? 자네와 다르고 나와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판단하게 한들 자네나 내 생각과 다르니, 그가 어찌 이를 바로잡을 수 잇겠는가? 자네와 같고 나와도 같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판단하게 해도 이미 자네나 내 생각과 같으니, 그가 어찌 이를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나나 자네, 다른 사람이 모두 다 알지 못할 노릇인데 누구를 더 기다려야 하겠는가?

30. 이처럼 변하기 쉬운 소리에 기대하는 것은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네. 이런 것을 '하늘의 고름'(천예.天倪)로 조화시키고 '무한의 변화(曼衍)'에 내맡기는 것이 천수(天壽)를 다하는 길이지. '하늘의 고름'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보통 '옳다, 옳지 않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하네. 그러나 옳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옳다면, 옳은 것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은 변론할 여지가 없는 일이지. 그렇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그렇다면, 그런 것이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 또한 논쟁할 여지가 없는 일 아닌가. 햇수가 더해 세월 가는 것을 잊고, [옳다 그르다] 의미를 다지는 일을 잊어버리게. 구경(究竟)의 경지로 나아가 거기에 머물도록 하게."


오늘도 여전히 궤변같다...
한자를 잘 몰라서, 저것이 맞는 해석인지 어떤지를 모르겠다. 倪는 '어린이 예'로 나와있는데 어찌 '하늘의 고름'이 되는 것일까. 해설에는 주석가들에 따라 '하늘의 맷돌(天硏)'이나 '하늘의 균형대(天鈞)'로 보기도 한다고 되어있는데, 그렇다면 또 왜 天均이 아니고 天鈞이 되는 거지?
구경의 경지는 또 뭐란 말인가... 나야말로 구경꾼의 경지에서 장자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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