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임금과 세 나라
21. 엣날에 요 임금이 순 임금을 보고 말했다. ‘내가 종(宗), 회(膾), 서오(胥敖) 세 나라를 치려 하오. 내가 왕위에 오른 후 [이 나라들이] 마음에 걸려 꺼림칙하니 웬일이오.’
순 임금이 대답했다. ‘이 세 나라의 왕들은 아직도 잡풀이 우거진 미개지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꺼림칙해 하십니까? 전에 해 열 개가 한꺼번에 나와서 온 세상을 비춘 적이 있습니다만 임금님의 덕을 비춘다면 어찌 해 같은 데 비길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요순이 나와 이상하다 했는데, 워낙 이 문장이 여기 있는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고 한다. 요 임금이 순 임금의 말을 듣고 미개지에 살던 세 나라를 너그러이 용납해주고 해같은 은덕을 비춰주었다면 잘 된 일이겠지만.
앎과 모름
22. 설결(이빨 없는 이)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다. ‘스승께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동의할 수 있는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스승께서는, 스승께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그러면 사물이란 알 수는 없는 것입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말이나 좀 해보세.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 할 수 있겠는가?
장선생은 계속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분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우리의 앎과 모름 사이의 구분을 흐트러뜨려 버리는데, 옳은 얘기다. 다만 절대적으로 아는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모르는 것도 없다는, 그런 식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아직 많고, 지식이 짧더라도 통찰력으로 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알면서 모른다고 해야 하고, 어떤 것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을 할 때가 있다. 아는 체 하다보면 정말 아는 듯 굴게 되기도 한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이라고 하지만 ‘몰라도 아는 척’ 해야할 때란, 그런 상황이란 사실은 없다.
장자일기 템포를 조금 올리려고 한다. 매사 성의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을 하든 열심히, 무엇을 하든 성실하게. 근면 성실 자조--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그냥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이 세 가지는 사람의 근본인 것 같다. 게으르고 불성실하고 남에게 손 벌리면 사람이 아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딸기네 다락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의 여왕 (0) | 2006.12.20 |
---|---|
장자일기/ 사람과 미꾸라지 (0) | 2006.12.19 |
장자일기/ 道에는 경계도 이름도 없다 (0) | 2006.12.11 |
장자일기/ 털끝과 태산 (0) | 2006.12.08 |
장자일기/ ‘있음’과 ‘없음’ (0) | 2006.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