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조르조 아감벤. 정문영 옮김. 새물결. 12/31
2023년 여름, 오애리 선배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보고 왔다.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스치듯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를 다녀오고 나서 며칠 뒤 아우슈비츠에서 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나니 숨이 막혀왔다. 둘이서 “앞으로 10년 동안 제노사이드는 생각지 말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의 정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해의 마지막 책으로 기록됐다. 오래도록 잡고 있었으니까.
적을 것들도 많고 되새겨 사유해야 할 것들도 많은데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 투성이이고, 어떤 것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인류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에도 이해를 해야만 하는(이해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고.
이 책에서 아감벤은 아우슈비츠에 대한 ’증언들‘을 분석하고 해체한다. 과연 누가 증언할 수 있을까? 희생자들은 죽었는데! 그 근본적인 ’증언 불가능성‘ 말고도 또 다른 게 있다. 수감자들이 ’무젤만(이슬람 교도)‘라고 불렀다는, 좀비 같은 사람들.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상태로 전락한 사람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증언이지만, 그들의 존재를 직시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나치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시대에, 유대인 희생자들이 자기들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에 놓인 이들을 하필이면(!) 이슬람교도라 불렀다는 기록을 접하니 기분이 묘하다.
역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예컨대 유대인 집단학살의 최종 국면이 어떻게 실행되었고, 수인들이 어떻게 동료 수인들로 이루어진 분대(이른바 특수작업반)에 이끌려 가스실로 들어갔는지, 그리고는 이 특수작업반이 어떻게 시체들을 끌어내 씻기고는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금니를 뽑아낸 다음 마지막으로 몸을 화장로에 집어넣었는지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사소한 사항들까지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열거하고 서술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각각의 사건들 자체는 여전히 불투명한 채로 남아 있다. 이러한 괴리와 불안감을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 이가 레벤탈인데, 특수작업반의 일원이었던 그는 자신의 증언을 몇 장의 문서로 남겼다. 이 문서는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후 17년이나 지나 서야빛을 보게 되었다. 레벤탈은 이디시어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을 정확히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도 상상할 수 없다. ... 우리는 몇몇 되지도 않을뿐더러 눈에 띠지도 않는 사람들이라서 역사가들에게 줄 일거리도 많지 않다."
-14
프리모 레비는 증인의 완벽한 예이다. 집에 돌아온 레비는 아무래도 붙잡고 자신의 경험을 지치지도 않고 자세히 얘기한다.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내 이야기를 해야지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모든 상황이 내 이야기를 할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됐든 상관없이, 공장장이 됐든 노동자가 됐든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밤에는 타자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나는 글을 써댔고, 이건 더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레비는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증언하기 위해서만 작가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결코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는 글을 쓰고 또 썼고 ... 글을 쓰는 악습이 몸에 배었습니다.”
-21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법률적 결과들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점이 상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제스처는 고귀한 행위로 여겨졌다. 상응하는 법적 결과들을 감수하지 않은 채 정치적 또는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항상 힘 있는 자의 오만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32
'홀로코스트'는 라틴어 holocaustum'의 학술적 차용이며, 이 말은 다시 그리스어 'holocaustos'(‘완전히 다 타버린')의 번역어이다. 가톨릭 교부들은 히브리인들의 희생 제물을 가리키기 위해 이 말을 썼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궁극적으로 홀로코스트(번제물)로 정의된다.
-40-42
증언할 수 없는 것, 증언되지 않은 것에는 이름이 있다. 수용소의 은어로 그것의 이름은 무젤만, 말 그대로 ’이슬람 교도‘라는 뜻이다.
-61
이슬람 교도를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은 다른 증언자들에게서도 확인된다. 1945년 베르겐-벨젠 수용소 해방 직후 영국군이 촬영한 장면들이 공개되었다. 한 구덩이에 쌓여있는 수천 구의 벌거벗겨진 시체들이나 수용소 간수였던 사람들의 어깨에 들쳐 메어져 실려가는 시체들의 모습을 보고 있기란, 나치 친위대조차도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그 뒤틀어진 몸뚱이들을 보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들이 '시체'나 '사체'라고 불려서는 안 되며 그냥 '피구렌 figuren', 형상, '형체'로 불려야 했음을 증인들을 통해 알고 있다).
-76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요한 것은 이 질문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지점까지 '인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홍미롭게도 레비의 증언과 앙텔므의 증언(둘 다 1947년 출판되었다)은 제목들(<이것이 인간인가>와 <인간이라는 종>)에서부터 이 주제에 관한 어떤 역설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 이러한 과제는 나치 친위대가 설정한 과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더 거대하고 막연하다. 나치 친위대는 수용소의 법을 글자 그대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 갇힌 자들은) 돼지들임. 인간이 아님.'
-88
곧이어 아렌트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일어나버린 일을 확인한다. '시체의 제조 등등’. 그러한 일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아렌트는 그것을 입에 담고 나서 주저함이나 부끄러움에 가까운 몸짓(그런 것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겠죠)을 취한다. 힐베르크에 따르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모종의 제조라는 집단학살의 정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나치 친위대의 내과의였던 엔트레스였다고 한다.
'시체의 제조'라는 표현은 어느 경우에나 죽음에 대해 진실하게 말한다는 게 더 이상 불가함을,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 지독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해 시체들이 생산되었던 것이다. 죽음을 갖지 못한 시체들, 죽음이 연쇄 생산의 재료로 전락해버린 비인간들 말이다.
-108
아렌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치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놀라울 정도로 흔쾌히 감수하려는 전후 독일인들의 태도는 은연중 개인적 책임의 산정과 특정 범죄 행위의 처벌에 대한 그만큼 놀라울 정도의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비슷하게 언젠가 독일의 개신교회는 ‘우리 국민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자신들에게도 ‘자비의 하느님 앞에서 공동 책임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자비의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의 하느님이다. 하지만 독일의 개신교회는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낼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는데,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한 죄를 지은 목사들의 처벌을 요청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톨릭교회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레비는 집단적 죄(또는 무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자기 민족이나 부모가 저지른 일에 대해 오직 은유적으로만 죄책감을 느낀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임을 철저히 확신했다. 한 독일인이 그에게 쓴 편지에 대해 레비는 “사람은 죄악과 과오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명의 흔적은 대지의 표면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레비가 집단적 죄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딱 한 차례 있는데, 그가 이 말로 나타내고자 한 의미는 ‘당시의 거의 모든 독일인'이 저지른 잘못, 즉 보지 않으려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말할 용기, 그것을 증언할 용기를 갖지 못했던 잘못이라는 것으로서, 이것이 그에게는 ‘집단적 죄'의 유일하게 가능한 의미이다.
-143-144
잔인한 밤마다 우리는 온몸과 온 마음으로 우글우글 들끓는 꿈들을 꾼다. 꿈에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먹고 이야기한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떨어지는 짧고 나긋나긋한 명령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프스타바치(기상)!' 그리고 우리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음껏 먹고 마음껏 얘기도 했다. 벌써 시간이 됐다. 이제 곧 우리는 그 외국어 구령을 다시 듣게 되리라. '프스타바치! (Levi, 1988:530)
-154
이제 아우슈비츠의 교훈을 요약하는 하나의 테제를 정식화해 보자. 인간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자이다. 여기서의 역설은, 인간성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자신의 인간성이 완전히 파괴된 자라면 그러한 의미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동일성이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항상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이다. 증인이 바로 이 ‘남는 것’이다.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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