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
프란체스카 만노키. 김현주 옮김. 롤러코스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이번 세기에 들어와 다른 나라와의 전면전 혹은 대규모 내전을 겪은 나라들이다. 침략자와 침략을 당한 사람들의 ‘국적’은 달라지지만 모든 전쟁에서 변함 없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삶을 앗아가고 미래마저 망가뜨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 분쟁을 다루는 보도들은 국가라는 모호한 실체를 주어로 두거나, 국가 지도자들을 비롯한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질 때가 많다. 정작 다치고 죽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피해자들, 공습 속에 살아남아야 하고 폐허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의 여자, 한 사람의 남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내가 알리나나 올가였다면, 내가 후센이었다면, 내가 샤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 물어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전달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현재를 넘어 그들의 아버지가 살아온 과거를 통해 분쟁 이전의 역사를 살피고, 그들의 딸이 살아갈 미래에 드리워진 그늘을 들여다 본다.
말하자면 이 책은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증언이자, 동시에 여러 전쟁의 배경을 쉽게 설명해주는 국제 분쟁 개론서다. 맨 첫 장을 차지하는 레바논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나라다. 하지만 역사가 기나긴 만큼이나 주민들의 민족적, 종교적 구성이 복잡하며 그것이 늘 분란의 소지가 되어 안정과 발전으로 가는 길을 막곤 한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이라크나 아프간처럼 전면전을 겪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의 삶은 분쟁과 다툼과 외국이 개입된 폭력사태, 정부의 무능과 국가 기능의 마비 속에 전시 상태나 다름없었다.
레바논 특유의 종파별 권력 분점 체계 등에 대해 소개하면서 저자는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슬픔을 가감없이 전해준다. 아프간을 점령한 소련과 그에 맞서 이슬람 전사들을 키운 미국의 실책, 수십년 내전으로 피폐해진 상황 등을 종합함으로써 2001년 미국의 공격 이전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인 맥락을 설명한다. 리비아와 이라크, 시리아 등 ‘분쟁 지역’ 정도로만 뭉뚱그려 인식돼온 나라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21세기의 지정학 이슈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 지난 세기에 다 끝난 줄 알았던 냉전의 유령이 되살아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넘게 국제사회가 만들어온 국제체제의 틀에 균열이 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수도 키이우 등을 두루 취재한 저자는 그곳 사람들의 냉엄한 현실을 전해주는데, 일부의 증언과 저자의 시각이 러시아의 논리를 상당부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관계가 다소 혼란스럽게 묘사된 것들은 유능한 번역자와 편집자가 명확하게 다듬었다. 이런 몇 가지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세계의 분쟁은 너무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나라들의 분쟁에 우리도 어느 정도는 발을 걸치고 있다. 일례로 레바논에는 한국이 동명부대라는 이름으로 병력을 보내 평화유지를 돕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도 한국은 파병을 했다. 한국이 파는 무기, 한국이 사들이는 석유, 모든 것이 국제 정치와 연결돼 있다.
국적이 다르고 종교와 민족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세계의 80억 시민의 한 명, 한 명일 뿐이다. 저자는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에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세계에는 200개 가까운 나라가 있고, 한 나라 안에도 여러 민족과 여러 집단이 살아가는 곳들이 많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통을 받거나 전쟁, 분쟁에 신음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우리가 세상 모든 곳의 사정을 알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지식을 넓혀가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글로벌화된 경제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나의 이익에 직결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는 다른 상황이나 다른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됨으로써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연대와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인식과 연대와 공감의 폭을 넓힘으로써 우리 안의 단절이나 그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보듬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전쟁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본인이 희생자가 아니라 그 분쟁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의 여자, 한 사람의 남자로 비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더욱 집중해주었으면 하는 것으로 이 책을 읽는 지금부터 등장인물과 일체화해보라는 것이다. 각 장의 초반부에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보기 바란다. 내가 알리나나 올가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후센이었다면, 내가 샤디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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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넓히려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이 감정의 표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의 일부라는 더 광범위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듣는 법을 배우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여러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바로 그 다른 점에서, 그 사람과의 격차를 완화하려는 시도에서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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