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처한 친구, 아프고 슬픈 일을 겪는 이웃, 혹은 낯선 이들일지라도 위험에 빠진 것을 보면 사람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모금을 하면 기부를 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시설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죠.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과연 이런 작은 행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게 정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최선의 방법일까’ 하는 의문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곤 합니다. 마음은 있는데 실제로 돈을 내거나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때도 많고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돕는 것, 개인 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모두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류는 제도, 시스템을 만들어왔습니다. 오래 전 왕조 시대에는 ‘시혜’라든가 ‘구휼’의 형태를 띄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도움들이 제도화되어 ‘복지’가 되고, 때로는 ‘자선’이 되고, 국경을 넘어서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갈 때에는 ‘원조’ ‘개발원조’가 됩니다.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나서 당장 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긴급구호’를 위해 구호팀과 물건과 돈을 보내기도 하지요.
세계는 국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경선들이 확정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100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국경 속에서 지금의 영토를 가지고 독립된 국가를 이루고 있던 나라들이 오히려 극히 드물어요.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다가 내준 나라도 있고, 한국처럼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한 나라도 있고, 한 나라로 묶여 있다가 갈라진 나라들도 있고, 21세기에 들어와서야 힘겨운 싸움 끝에 독립한 나라도 있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들어간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 원이었다고 해요. 세계의 200개 가까운 나라들 중에는 한국처럼 사교육에만 수십 조원을 쏟아붓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나라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평등하지 않은 세계’를 들여다 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만들어온 시스템을 알아봅니다.
아직도 가난한 곳들은 왜 가난할까요. 과거 식민통치가 드리운 그늘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독립한 뒤에 부패한 독재자가 국가의 부(富)를 독차지한 경우도 있습니다. 권력 다툼과 분쟁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도 있고요. 이 책의 1장에서는 세계의 그런 불평등한 현실과 함께,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를 분석해봅니다. 역사는 늘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만, 오래 전의 역사에서만 원인을 찾다 보면 과거에만 치중하게 되고 지금 그들이 국가를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놓치게 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빈곤과 세계적인 불평등의 원인을 좀 더 다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특히 앞으로 더욱 심해질 기후 재난과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고요.
2장에서는 세계가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국제사회의 규칙으로 확립됐는지를 살펴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권’이 있다는 개념, 전쟁에서도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친 사람을 버려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구호의 출발점이 됐지요. 하지만 실제로 구호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저마다 다른 생각들이 부딪칩니다. 구호의 역사와 함께, 구호의 ‘원칙’을 둘러싼 논란들을 소개하면서 특히 분쟁 상황에서의 ‘중립’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봤습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한 국가나 지역의 발전을 도와주는 개발원조에 대해 알아봅니다. 개발원조의 여러 형태, 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와 많이 받는 나라 같은 기본적인 상황들을 짚어봤습니다.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에 어마어마한 원조가 흘러갔다는데 왜 빈곤은 없어지지 않는 거야?’ ‘원조는 결국 효과가 없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요.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기대만큼 신통치 않았다면 분명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긴 거겠죠. 개발원조의 한계와 문제점, 경제규모가 커진 중국이 최근 원조에서도 ‘큰 손’으로 등장하면서 세계에 던져주고 있는 고민거리 등등을 살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빈곤과 전쟁과 전염병과 재난 같은 ‘나쁜 뉴스’들을 주로 전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그동안 서로 돕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더 나은 방향으로 정말 많이 발전해왔습니다. 오래 전의 한국, 그 뒤를 이은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개발된 나라로 변신한 나라들도 분명 있고요. 그런 성과들도 보여드리려고 애썼습니다.
저희 저자들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이른바 ‘저개발 국가’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난민촌에도 가봤고, 분쟁 지역에도 다녀와봤습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지요. 서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의 난민촌에서 손을 꼬옥 붙잡는 어린 아이를 본 뒤 ‘이 아이는 왜 낯선 나의 손을 잡을까’를 두고두고 생각해본 적도 있고, 외국인에게 내전 때 다친 몸을 움직여보이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주어야 할지 말지를 놓고 격한 토론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와 ‘아니다’로 단순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책이나 자료를 읽어보고, 구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듬은 내용들이 이 책이 됐습니다.
한 지역이나 나라의 발전이 더디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그 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면, 거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가난은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인 동시에, ‘지금’ 불평등을 키우는 금융 시스템이나 교역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우리 나라나 우리 기업이 혹시 다른 나라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늘 생각해봐야 할 위치가 됐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책이 모두에게 그런 생각거리들을 던져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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