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사나운 하마에겐 사정이 있다

딸기21 2023. 5.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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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하마가 배를 뒤집어 강을 건너던 사람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난 곳은 말라위 호수에서 발원해 동남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하천인 잠베지강으로 합류하는 슈레이 강. 사방이 땅으로 에워싸인 내륙국가 말라위에서는 가장 큰 물길이지만 수상교통 인프라는 형편없다고 한다. 말라위 남쪽 하천도시 은산예 부근에서 배가 전복됐고 14명은 어찌어찌 헤엄쳐 목숨을 구했지만 나머지는 숨졌다. 

한국보다 약간 큰 면적(12만㎢)에 인구는 2000만명 남짓인 말라위는 ‘니아살랜드’라는 이름의 왕국이었는데 영국의 ‘보호령’으로 사실상 지배를 받았다. 오늘날 짐바브웨가 된 지역과 합쳐져 잠시 독립도 아니고 점령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가 1964년 말라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1970년부터 1994년까지 헤이스팅스 반다라는 인물이 일당독재를 하면서 독립 이후 발전의 길을 잃었다. 이후 다당제와 민주선거가 도입되며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엔이 ‘최저개발국 명단’에 올려둔 나라로,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에 불과하고 인구 절반이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간다. 2009년 대통령이 전용기를 구입하자 달러가 모자라 곧바로 연료난이 번졌을 정도다. 하마든 악어든, 혹은 엉성한 배로 강을 건너는 사람이든 제도와 시설의 보호를 기대하기는 힘든 형편일 것이다.
 

Malawi's Minister of Water and Sanitation Abida Mia, left, waits with local Member of Parliament Gladys Ganda, right,for news updates from the rescue party on the banks of Shire River, Tuesday, May 16,2023. (AP Photo/Austin Kachipeya)


하마가 배를 공격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하마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이 아주 드물다고는 할 수 없다. 2014년 니제르에서도 하마가 배를 뒤집어 13명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수컷 하마들 중에 큰 놈들은 3톤, 암컷들은 2톤을 넘기는 것들도 있고 해마다 아프리카에서 하마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500명은 된다고 하니까. 말라위의 열악한 배가 하마를 만나 이 사고에선 희생자가 늘었을 뿐이다. 작년 4월 우간다의 카트웨에서는 하마가 두 살 아이의 몸통 절반을 삼켰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남성이 돌을 던져 아이를 구한 일도 있었다. 경찰은 아이를 구해낸 행인의 신원까지 공개하며 용감한 행위를 칭찬했으나 이 호수에서는 처음 벌어진 무시무시한 하마의 공격에 주민들은 떨었을 것이다. 
 
코끼리와 코뿔소에 이어 육상 포유류 가운데 세번째로 큰 하마는 대체로 풀을 뜯지만 굶주리면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기도 한다. 어른 팔뚝 길이의 송곳니에 엄청난 덩치를 가진 하마는 특히 식량이 모자라거나 서식지를 위협받을 때에는 공격적이 된다. 올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하마들이 사자를 몰아내는 장면이 영상에 잡혔다. 숫사자 한 마리가 강 가운데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잔다. 순간 다가온 하마 떼들, 급기야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사자를 덮친다. 혼비백산한 사자는 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추적을 피해 달아난다.
 
하마(河馬, Hippopotamus amphibius) ‘강에 사는 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말이 아닌 우제목(소목)에 속한다. 코뿔소가 기제목(말목)인 것과 반대다. ‘나일 하마’라고도 불리는 보통의 하마와 피그미하마의 두 종류로 나뉜다. 20∼30마리씩 떼지어 사는데 큰 수컷이 반경 300m 정도의 영역권을 확보하고 무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영역권을 침해당했다고 느끼면 공격에 나선다. 이달 중순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존 볼 동물원에서는 ‘늪영양’이라고도 하는 시타퉁가 한 마리가 피그미하마에게 공격받고 죽었다. 하지만 ‘자하리’라는 이름의 이 하마의 생애도 따지고 보면 기구하다. 피그미하마는 세계에 3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희귀동물이다. 자하리는 2014년 피그미하마 살리기 계획에 힘입어 켄터키주 루이즈빌의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피츠버그 동물원으로 옮겨져 자랐고, 올 3월 존볼로 옮겨졌다. 현지 언론들은 진귀한 하마가 동물원에서 동물원으로 이동하는 ‘로드트립’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도했었다.

존볼 동물원 측은 6월 초 피그미하마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겠다며 락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따온 ‘히포팔루자’라는 이벤트까지 계획했다. 하지만 자하리의 새 서식지에는 안타깝지만 공생해야만 하는 상대가 있었다. 늪지대에 사는 시타퉁가였다. 둘 사이에는 울타리가 있었지만 자하리가 영양을 공격하는 걸 막지 못했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의 사파리공원을 거쳐 미시간에 정착했던 불쌍한 영양은 결국 죽었다. 두 동물 모두 인간의 서식지 파괴 속에 무리들이 줄어가는 종이었고 인간들에 의해 이 동물원 저 동물원을 떠도는 처지였는데 하나는 가해자가, 하나는 피해자가 됐다.
 


“하마는 왜 화가 나 있을까.” ‘사이언스ABC’에 올라온 기사 제목이다. “하마는 영역권을 지배하려는 본능이 강한 동물이고, 수컷은 빠르면 7살부터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이고 과시적인 행동을 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코끼리도, 사자도, 하이에나도, 하마의 세력권 안에 들어갈 때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하마와 늘 맞닥뜨려야 하는 동물이 있다면 바로 악어다. 하필이면 서식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는 하마가 물 속에서 악어를 쫒다가, 강둑으로 나온 악어를 굳이 쫓아와 깨무는 시늉을 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한쪽 옆에선 코끼리 무리가 심드렁하게 지켜본다. 악어가 깨무는 힘이 동물들 가운데 1등이라고들 하지만 하마는 몸집이 클뿐 아니라 피부가 두껍고 단단해 악어 이빨도 통하지 않는다. 
 
Why Are Hippos So Angry All The Time?
 
하마가 유일하게 무서워해야 할 상대는 코끼리, 그 중에서도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으로 무장한 공격적인 암컷 코끼리 정도라고 동물학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10월 희귀 동물 영상 업체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코끼리와 하마가 개울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아프리카에는 사바나 코끼리와 숲 코끼리가 있는데, 영상 속 코끼리는 그 중 사바나 서식종으로 분석됐다. 아마도 하마와 싸움이 붙자 성난 코끼리가 물 속으로 따라 들어간 것 같고, 흙탕물 속으로 하마를 밀어넣어 멀리 쫓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을 분석한 동물사이트에 따르면 하마는 “규칙적인 공격 패턴을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공격할 수 있고, 하마와 마주쳤을 때 사망할 확률은 85% 이상”이라고 한다.
 

 
 
이달 들어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에스코바르의 하마들’ 이야기는 꼭 판타지 우화 같다. 1980년대에 콜롬비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갱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 악명 높던 ‘마약왕’은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데인 동쪽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겠다며 농장을 만들고 동물들을 영입했다. 미국 댈러스에서 하마 4마리도 밀수해왔는데, 1993년 에스코바르가 보안군에 사살당한 뒤로는 방치되더니 야생으로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을 흐르는 막달레나 강 일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생태환경과 비슷했다. 하마 암컷은 5~6년 자라면 성숙하고 길게는 50년까지 산다. 임신 기간은 8개월이고 한배에 보통 한 마리를 낳는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이나 서식지 파괴로 마릿수가 줄고 있지만 뜻밖에 콜롬비아에서 이상적인 환경을 만난 덕에 숫자가 불었다. 세자릿수로 늘어난 하마들이 자동차와 부딪치거나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송아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Today, Hacienda Napoles is a theme park with water features, hotels, safaris and hundreds of exotic animals — including hippos Image: Ivan Valencia/AP/picture alliance


2009년 ‘페페’라는 하마가 주민들을 위협하자 당국은 사살령을 내렸다. 그러나 페페의 죽음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 전국에서 항의가 들끓었고 2012년 하마 도살 금지법이 통과됐다. 그 사이 개체수는 계속 늘었다. 작년에 콜롬비아 정부는 하마를 더이상 보호해줄 수 없다며 ‘외래 침입종’으로 규정했고, 올들어서는 외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콜롬비아는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하마가 가장 많은 나라다. 하지만 하마가 많아 고민하는 나라는 콜롬비아 뿐이다. 

하마와 인간의 조우는 오래됐다. 도살된 하마 뼈가 16만년 전의 지층에서 발견됐고 4000~5000년 전의 사하라 사막 유적지에서는 하마 사냥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굴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마를 나일 강의 무시무시한 서식자로 여겼고, 귀족들 무덤에서는 하마 사냥을 묘사한 그림이 나왔다. 중앙 아프리카의 요루바족은 이 동물을 ‘물에 사는 코끼리’라 불렀다. 하지만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마는 강이 아니라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다. 
 

Completely submerged hippo ( San Diego Zoo ) / WIKIPEDIA

 
최초로 하마를 잡아다 전시한 것이 기원전 3500년 이집트의 히에라콘폴리스로 거슬러올라간다니 말 다 했다. 현대적인 동물원에 등장한 최초의 하마는 1850년 런던 동물원에 갇힌 ‘오베이시’였는데 하루에 최대 1만명이 구경왔다고 한다. 미국 하원은 루이지애나 늪지대에 하마를 들여오기 위해 1910년 ‘하마법(American Hippo bill)’이란 것까지 도입했다.

수십만년 전에는 유럽에도 있었다는데 기후가 바뀌며 사라졌고 나일강의 하마들도 7세기 아랍인들의 도래와 함께 인구가 늘자 살 곳을 잃었다.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 하마’는 인간들 때문에 1000년 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이후로는 아프리카 남쪽 끝의 서식지도 없어졌다. 이제는 남아공 일부 지역에서부터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으로 이어지는 하천계에서만 위용을 뽐낼 뿐이다. 
 

Incised hippopotamus ivory tusk, upper canine. Four holes around top. From Naqada Tomb 1419, Egypt. Naqada period. The Petrie Museum of Egyptian Archaeology, London


구글 검색을 해보면 하마와 연관된 질문에 ‘공격성’이라는 단어가 뜬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가해자는 결국 인간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비룽가 국립공원의 하마 수는 1970년대 약 2만9000마리에서 2000년대 중반에는 한때 1000마리 아래로 떨어졌다. 내전 때문이었다. 2017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하마를 멸종위기종 목록인 ‘레드리스트’의 ‘취약’ 카테고리에 넣었다. 이 때만 해도 세계의 야생 하마 수는 11만5000~13만 마리로 파악됐지만 지금은 서식지 3분의2에서 마릿수가 30~50%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레드리스트는 ‘10년 새 개체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생물종을 멸종 위기로 구분하는데, 하마에게도 언제 ‘위기’ 딱지가 붙을지 모른다.
 
AN OVERVIEW OF SEIZURES OF CITES-LISTED WILDLIFE IN THE EUROPEAN UNION
 
살 곳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남획과 밀거래가 하마를 위협한다. 코끼리들이 상아 때문에 죽어나가듯, 길게는 50cm까지 자란다는 하마의 어금니는 하마를 죽이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하마 혹은 하마의 신체 부위를 거래하려면 누구든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각국 세관에 보고해야 하지만 온전히 지켜질 리 없다. 밀렵꾼이 ‘수확’한 하마의 이빨과 가죽은 미국과 유럽으로 가서 장식품이 된다.
 

 
BBC는 최근 영국 정부가 하마와 바다코끼리, 범고래 등 5종의 이빨 거래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베냉, 가봉, 니제르, 세네갈, 토고 등 아프리카 10개 나라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하마 부속품 거래를 불법화하라고 촉구했을 때 유럽 측은 거부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Hippos are one step closer to Endangered Species Act protections
 
지난 2월 15일 ‘세계 하마의 날’에 미국 환경단체들은 하마를 멸종위기종 보호법의 보호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며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10년 간 하마 이빨 9000여개, 가죽 5000여점, 트로피와 세공품 3700여개 등이 미국으로 수입됐다. 부자나라 사람들의 장식품과 병따개, 기념품으로 수천~수만 마리 하마가 희생되는 동안 말라위에서는 하마에 배가 부딪쳐 사람들이 죽는다. 기후의 역습뿐 아니라 동물의 반격에서도 재난의 불평등이 재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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