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제재 받는 푸틴 측근들

딸기21 2022. 2. 2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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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Putin with FSB head Alexander Bortnikov (right) and other officials on Security Services Day in Moscow in 2015.  Photograph: Aleksey Druginyn/Sputnikvosti pool//EPA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금 서방의 ‘공적’이다. 어떤 이들은 20년 넘게 러시아를 쥐락펴락해온 그를 차르(황제)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를 ‘살인자’라고 불렀다. 가뜩이나 사이가 나쁜 두 나라가 서로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사태까지 가게 만든 발언이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주변에 러시아군이 결집하고 크렘린이 전쟁을 위협하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이를 히틀러의 전쟁에 비유하며 푸틴을 ‘자국민을 착취해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사람’으로 비난했다.

 

[미 재무부] U.S. Treasury Imposes Immediate Economic Costs in Response to Actions in the Donetsk and Luhansk Regions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커지자 다시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계속 덧대고 덧대어 러시아 제재리스트를 늘려왔는데 이번에 수백쪽 분량의 목록을 덧붙인 것이다. 미국의 핵심 제재 대상은 러시아 최대 기업이자 푸틴의 돈줄로 알려진 국영에너지회사 가스프롬이지만 동시에 푸틴의 ‘이너서클’ 멤버들도 겨냥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 언론들은 ‘개인 제재’ 리스트들을 분석하며 이런 조치들이 푸틴을 움츠려들게 만들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 

 

미 재무부가 제재 대상에 올린 푸틴 측근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2008년부터 국가보안국(FSB) 수장을 맡고 있는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와 그 아들이다. 보르트니코프는 1970년대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FSB의 전신인 옛소련 정부기구 KGB에 복무해온 인물로, 푸틴의 KGB 인맥 중 한 명이자 ‘실로비키’라 불리는 푸틴 측근그룹의 일원이다. 

2006년 영국에서 러시아의 전직 정보요원이 독살된 사건이 벌어져 러시아와 영국 간 외교갈등이 불거지고 영국은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보르트니코프는 이 사건의 주모자로 꼽혔으며 러시아 내에서 말 안 듣는 경제계 인사들을 살해하거나 반푸틴 인사들을 숙청하는 작업, 크렘린을 위한 돈세탁 등에 개입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르트니코프는 이미 진작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는데 바이든 정부는 국영 VTB은행 부행장인 그의 아들 데니스도 이번에 제재 대상에 넣었다. 

 

[가디언] Putin’s security men: the elite group who ‘fuel his anxieties’

 

세르게이 키리옌코는 대통령 비서실 제1부비서실장으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조언자이자 푸틴 체제를 떠받치는 테크노크라트로 꼽힌다. 1998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 밑에서 잠시 러시아 총리를 지낸 그는 푸틴의 크렘린에 입성하기 전 국영 원자력회사 로사톰의 이사로 일했다. 

 


그의 아들 블라디미르 키리옌코는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브콘탁테의 경영자다. 러시아 최대 디지털서비스회사 로스텔레콤의 부사장을 지내고 브콘탁테를 맡았다. 금융회사 가스프롬방크와 보험회사 소가스가 브콘탁테 지분을 인수하더니 지난해 말 이 회사를 대통령 측근의 아들인 그에게 맡긴 것이다. 가스프롬방크와 소가스는 모두 가스프롬의 자회사다. 크렘린 권력과 가스프롬, 금융회사와 소셜미디어 기업이 어떻게 겹겹이 물리고 물리며 푸틴을 떠받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키리옌코는 지난해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 아들 블라디미르도 제재 리스트에 올라갔다. 

 

[모스크바타임스] Russia’s VK Appoints Son of Kremlin Insider as New CEO


미하일 프라드코프는 푸틴 집권 1기 때 총리를 지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경제관료로 일하다가 푸틴 시절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고, 푸틴은 그에게 대외정보국(SVR) 수장을 맡기며 신뢰를 표시했다. 이미 4년 전부터 미국 제재를 받아왔는데, 이번에 맏아들 페트르도 동반제재를 받게 됐다. 페트르는 프롬스비야스방크 은행의 경영자다. 이 은행은 민간기업이었는데 2017년 부실경영으로 위기를 맞은 뒤 국영화됐고, 러시아군에 자금을 대주는 방위산업 전문 금융기관으로 바뀌었다. 푸틴은 직접 페트르와 회의를 하면서 방위산업 강화를 의논할 정도로 부자 모두와 긴밀한 관계라고 한다.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L) gestures as Presidential Admimistration Chief of Staff Sergey Kiriyenko (R) looks on during the Presidential Council on Culture at the Grand Kremlin Palace, on December,21, 2017 in Moscow, Russia. ((Photo by Mikhail Svetlov/Getty Images)


영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여행과 경제활동 제재를 결정한 러시아인들은 이미 서방 세계에선 유명한 사람들이다. 겐나디 팀첸코는 권력을 등에 업고 부를 축적한 과두재벌 올리가르흐의 대명사다. 소련 시절 석유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활용, 석유수입회사 군보르를 세워 재산을 불렸다. 2007년부터는 볼가그룹이라는 투자펀드를 만들어 에너지, 운송, 금융 등 다방면에 투자해왔다. 오래 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2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여전히 갖고 있다. 


영국 제재대상 중 아르카디 로첸베르크와 보리스 로첸베르크 형제는 푸틴의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꼽힌다. 푸틴이 어릴 적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도를 함께 하며 친분을 쌓은 이들을 가리키는 ‘유도크라시’라는 용어가 있는데, 로첸베르크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형제는 송유관과 발전설비를 짓는 건설회사 SGM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을 세우고 경영하면서 푸틴과의 ‘우정’에 기대 재산을 축적했다.

 

[구정은의 세계] 러시아, 보드카, 푸틴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제재 명단에는 러시아 의원 300여명과 함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안톤 바이노 대통령 비서실장이 올라와 있다. 대외적으로 크렘린의 입 역할을 해온 마리아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 TV네트워크 RT의 경영자인 마르가리타 시모냔, 뉴스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등은 러시아의 선전선동을 주도해온 인물로 제재 대상이 됐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식당과 카지노 등을 운영하면서 크렘린 만찬에 음식을 대 ‘푸틴의 셰프’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람이다.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러시아 정부 기관들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인권변호사이자 반체제 활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크렘린과 결탁한 콩코드의 부패 때문에 모스크바 학교 급식의 질이 나빠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리고진은 헬기장이 있는 값비싼 별장과 요트들을 가지고 호화 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서방에 미운 털이 박힌 것은 요식업 때문이 아니다. 그는 시리아 내전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에 개입한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과 관련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선거 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인터넷 ‘댓글알바 사업단’을 운영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프리고진 역시 유럽연합 제재 리스트에 들어갔다.

 

[BBC] Powerful 'Putin's chef' Prigozhin cooks up murky deals

 


미국과 유럽국들은 푸틴 측근들과 그 가족들을 포위해 크렘린의 돈줄을 죄겠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이전부터 제재를 받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와 별개로, 서방이 겨냥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엮여 있으며 푸틴이 어떻게 그런 그물망을 위에서 권력을 유지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의 ‘도둑정치’에 관여해온 권력층과 그 가족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들은 부패의 이익을 공유해왔으니 (제재의) 고통도 공유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부패한 권력층과 러시아 대중들의 삶의 괴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면 그들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효과는 작지 않을 듯하다.

 

[딸기가 보는 세상] 국정원 뺨치는 크렘린 ‘댓글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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