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마다가스카르와 갈라파고스 사이

딸기21 2021. 11. 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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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CEF/ Southern Madagascar is experiencing its worst drought in four decades.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대륙 동해안에서 400km 떨어져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고,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동식물이 포함된 독특한 생태계를 갖고 있다. 보통 5~10월 건기와 11월에 시작되는 우기의 두 계절로 나뉜다.

 

하지만 이 섬나라는 최근 몇년 동안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어떤 곳들은 몇 년씩 비가 오지 않았다. 마을마다 들판이 말라붙고 물이 모자라 작물을 키울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나 채소는 물론이고 가축들 사료로 주기 위해 키우던 선인장 잎까지 말라붙었다. 로이터통신의 지난달 보도를 보면 남부 Grand Sud 지역의 어느 마을에서는 보이는 것이 누런 흙과 선인장 뿐이라고 한다. 먹을 것조차 없어진 농민들은 소를 내다 팔고, 농지며 집까지 팔고 있다.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도 늘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내주는 식량을 지원받아 연명하는 사람들이 70만명에 이른다. 


[UN News] Madagascar: Severe drought could spur world’s first climate change famine

세계 여러 지역들의 식량위기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통합 식량안보 단계분류(IPC)' 프로그램은 식량위기를 다섯 단계를 구분한다. 1단계 정상(Minimal), 2단계 경고(Stressed), 3단계 위기(Crisis), 4단계 비상(Emergency), 5단계 기근(Famine). 3단계 ‘위기’ 이상인 지역을 살펴 보면 아시아에서는 아프간과 예멘 일부가 해당된다. 이유는 뻔하다. 내전 탓이다. 그 외에는 전부 아프리카 국가들인데 역시 대개는 소말리아, 남수단 등 분쟁이나 정정불안이 이어져온 지역이다.

 

http://www.ipcinfo.org/

 

그런데 이미 몇 달 전부터 마다가스카르에서 식량 위기를 맞닥뜨린 사람이 130만명에 이른다. 5세 이하 아이들 가운데 영양실조를 겪는 아이가 약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유니세프는 예상한다. 남부 몇몇 곳은 5단계, 즉 ‘기근’으로 치닫고 있다. 3만 명이 굶어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WFP는 판단하고 있다.  

분쟁도 없는 곳에 어떻게 기근이 닥친 것일까. 기후변화로 비가 적게 오고 강우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지 WFP 책임자는 “기후변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유엔은 “극심한 가뭄이 마다가스카르를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기근’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산타바버라) 과학자들 연구로 봐도 마다가스카르의 강우 패턴은 점점 더 불규칙해지고 있고, 6년 연속으로 평균 이하 강우량을 보였다. 곡식이 자랄만큼 충분히 비가 온 것이 8년 전, 10년 전인 마을도 있다고 한다. 

[UN News] In Madagascar, pockets of famine as risks grow for children, warns WFP

© WFP/ Children under five are among the most affected by malnutrition in southern Madagascar.

 

해마다 심해지는 가뭄에, 토양이 침식돼 모래폭풍이 분다. 20~30년 동안 계속 벌채를 하면서 황폐해진 탓도 있다. 먹을 것이 모자라고 일자리도 없어지자 ‘다할로(dahalo)’라 불리는 산적들이 판을을 친다. 기후변화가 세계의 저개발지역, 특히 열대 빈국들에 더 큰 피해를 줄 거라고는 얘기는 너무 많이 나왔다. 그 실제 상황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후위기, 해수면 상승, 그로 인한 기후 난민, 식량부족과 기근, 공동체 파괴, 분쟁 증가…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이터] Madagascar prays for rain as U.N. warns of 'climate change famine'

마다가스카르는 아름다운 생태계와 신기한 동물들의 나라로 유명하다. 면적 60만km², 인도아대륙에서 8800만 년 전 떨어져나온 것으로 지질학자들은 추정한다. 고립된 섬 특유의 생태계가 발달해 있는, 종 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원주민들은 인도네시아 쪽에서 온 오스트로네시안계이고 9세기부터 동아프리카인들도 이주해왔다. 주민이 늘어나면 환경파괴와 생태계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주변 모리셔스 섬에서 도도새가 사라진 것처럼, 특히 오랫동안 고립돼온 섬 생태계는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Malagasy children eat a meal at the Avotse feeding program that benefits malnourished children with hot meals in Maropia Nord village in the region of Anosy, southern Madagascar September 30, 2021. REUTERS


'말라가시'라고도 불렸던 이 섬은 1897년 프랑스 식민지가 됐고 1960년 독립했다. 2009년에 정치적 위기가 있었다.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당시 대통령이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유혈 진압을 했지만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 혼란은 한국과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관련이 있었다. 당시 한국 기업이 마다가스카르 농지의 거의 절반을 헐값에 장기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에 대한 반발이 격렬한 시위를 부른 측면이 있었고, 한국 같이 잘 사는 나라들의 빈국 ‘땅뺏기’가 이슈가 됐다.

 

2014년부터 정치적인 혼란은 가라앉았지만 경제 사정은 좋지 않다. 주된 산업은 농업과 생태관광 정도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500달러에 불과하다. 인구 2700만명 가운데 70%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http://www.globalcarbonatlas.org/en/CO2-emissions


그런 나라가 부국들이 주로 일으킨 기후변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세계탄소프로젝트(The Global Carbon Project)에 따르면 이 나라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0.01%도 안 되는 양을 내놓는 나라인데 피해는 이렇게 크게 입고 있다.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지난달 가뭄 피해지역을 방문했을 때 "기후 변화는 마다가스카르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기근을 더욱 악화시킨다"면서 "마다가스카르는 기후변화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영국 글래스고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회의를 앞두고 마다가스카르의 가뭄이 심해진 것을 언급하면서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내놓는 이들 때문에 일어난 실패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집단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했다.

[국제앰네스티] Madagascar: Global leaders must act urgently to save lives and protect rights threatened by climate crisis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최근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한 뒤 AP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몇년 안에 닥쳐올 일들을 보여주는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의 상황은 너무 절망적이고 가슴아프다”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의 시작일뿐”이라고 했다.

 

Malagasy climate refugees are seen in the camp located in Ambovombe, capital of Androy region in southern Madagascar September 29, 2021. REUTERS


WFP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3800만명이 기후변화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2050년까지 그렇게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2억1600만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비즐리 사무총장은 말한다. 유럽연합과 한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들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때에는 이미 지구상에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마저도 중국은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COP26에서 발표할 모양인데 중국처럼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으로 2017년부터 WFP 수장을 맡고 있다. "지금 숱한 사람들이 기아 위기를 맞은 것은 인간이 만든 분쟁과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 탓"이라고 그는 말한다. “마다가스카르 사태는 외따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세계는 어떤 일이 닥칠지 알기 위해서라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봐야 한다.”
 
[AP] 'Heartbreaking' Madagascar is wake-up call to climate crisis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주로 부자들인데 그 피해를 많이 받는 것은 세계의 가난한 이들이다. 부자 나라들이 지원을 하지 않으면 빈국들은 피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무가 많고 종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들은 대개 열대의 저개발국들이다. 그래서 생태계를 지키고 탄소배출을 덜한 나라들에게, 부자 나라들이 시혜가 아닌 배상 차원에서 돈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자 나라들에 빚진 채무국이 아니라 그들이 입힌 피해에 대한 보상과 환경보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채권국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SIMON J PIERCE/GALAPAGOS CONSERVATION TRUST


마다가스카르에서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로 가보자. 에콰도르는 환경보전과 생태관광에 미래를 건 나라다. 이 나라가 그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에콰도르는 COP26에서 갈라파고스 해양보호구역을 늘리는 제안을 했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동부 해안에서 1000km 떨어진 태평양의 군도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한 곳으로 유명하고, 종 다양성의 보고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에콰도르는 이미 1959년에 갈라파고스 군도 일대를 자연공원으로 지정했다. 1998년에는 13만km²에 이르는 해역을 해양보호구역(Galápagos Marine Reserve)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은 지난 2일 갈라파고스 보호구역을 6만km²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Ministerio del Ambiente, Agua y Transición Ecológica – Ecuador

 

보호구역을 늘리면 어업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 손실이 크다. 그러니 국제사회가 그만큼 보전해달라면서 라소 대통령은 “채무-보전 스와프(debt-for-conservation swap)”를 요구했다. 에콰도르는 환경보전 프로그램에 투자를 할테니 국가부채 일부를 채권국들이 탕감하라는 것이다. 


에콰도르의 대외 부채는 GDP의 45%인 460억달러 정도다. 그 중 16% 정도가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외국 정부에 진 빚이다. 지금 이 나라는 경제 침체에 코로나19 타격까지 받아서 형편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나라에 부채를 감축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정부가 서민들의 연료비 지원을 끊는 바람에 근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라소 대통령의 제안에는 물론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에콰도르가 이전 정부들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이기도 하다. 지구를 망친 부자 나라들이 개도국들에게 진 환경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A turtle swims next to a tourist in San Cristobal Island at Galapagos Marine Reserve, Ecuador. Reuters


에콰도르가 넓히겠다고 하는 보호구역에는 주변국가의 해역도 포함된다. 코스타리카 영해 바다밑에 로스코코스(Los Cocos)라고 불리는 해저산맥이 있고 솟아오른 봉우리들 중 일부가 물 위로 돌출해 생겨난 섬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다. 그 중 코코스 섬(Cocos Island)은 종 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유명한데, 에콰도르의 계획대로라면 거기까지 보호구역이 이어진다.

 

[WION] Four Latin American nations join hands to create large marine reserve

그래서 에콰도르뿐 아니라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파나마와 함께 네 나라가 공동 해양보호구역을 운영할 계획이다. 네 나라는 열대 태평양 동부 해양회랑(Eastern Tropical Pacific Marine Corridor) 이니셔티브 창설을 선언했다. 어업을 하지 않는 구역을 늘리고 합쳐서 통합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당사국들은 물론이고 외국 어선들이 풍부한 해양생물자원을 채취해왔는데 앞으로는 금지된다.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은 갈라파고스 보호구역을 비롯해 자국 영해 안의 해양보호구역을 4만km²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네 나라의 조치가 실현되면 고래,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의 중요한 이동경로 가운데 50만km²를 커버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국제사회가 열대 국가들의 요구에 얼마나 응해줄 지가 관건이다. '스왑'이 이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