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글래스고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11월 1일 개막된다. 이 회의를 앞두고 영국 BBC가 유엔 문서들을 입수, 몇몇 나라 정부들이 유엔의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기 위해 로비를 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6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세계는 산업화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 지구의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BBC가 입수한 문서들은 각국 정부와 기업들, 혹은 과학자 단체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유엔에 제출한 문서 3만2000건이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6~7년에 한번씩 평가보고서를 내놓는다. 기후변화의 추이를 예측하고 세계의 대응 틀을 만드는 기초 자료다.
[BBC] COP26: Document leak reveals nations lobbying to change key climate report
하지만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같은 나라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유엔의 조치들에 발목을 잡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구를 고쳐달라, 빼달라, 속도를 늦춰달라 요청한 각국의 문서들과 IPCC 보고서 초안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영국지부의 탐사보도팀이 입수해 BBC에 전달했다고 BBC 측은 밝혔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사우디 석유부는 “모든 규모에서 (기후위기의 영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시급히 행동할 필요성”이라는 문구를 IPCC 보고서에서 없애기 위해 애쓴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디 측은 유엔 과학자들에게 "에너지 시스템 분야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으로 빨리 이동하고 화석연료를 적극적으로 폐기하는 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COP26의 중요한 안건 중의 하나는 앞으로 석탄 사용을 끝내기 위한 방안과 일정을 논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 정부 관료는 석탄발전소 폐쇄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사우디, 중국, 호주, 일본, 노르웨이 등은 화석연료를 어떻게 줄일지보다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부각시키려 애썼다. 석탄발전소 등 탄소배출이 집중되는 시설에 이산화탄소 포집장치를 설치해 대기 중으로 나가지 않게 막자는 것이지만, 이 기술은 이른 시일 안에 현실화되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탄소를 포집하기도 힘들거니와 안정적인 저장 방법도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돈도 많이 들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이런 해결책을 중심에 놓자는 것은, 결국 화석연료 감축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IPCC] Sixth Assessment Report
화석연료와 관련된 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IPCC 과학자들은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다. (심지어 IPCC 과학자들을 겨냥한 위협과 협박도 벌어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혹을 팝니다>라는 책에 잘 설명돼 있다.) 이것이 또다른 로비를 낳기도 했다. 호주는 화석연료 산업부문의 로비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서 참고자료에서 지워달라고 IPCC에 로비했다. OPEC 역시 ‘로비 액티비즘’이라는 용어를 보고서에서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OPEC은 BBC에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에는 IPCC가 규정한 것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IPCC 측은 이런 로비들 때문에 보고서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석유 종주국'이고, 호주는 주요 석탄 수출국이다. 하지만 일본이 기후대응에서 유독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 자원 수출국도 아니고, 에너지 체제를 전환할 기술력과 자금을 모두 갖고 있는 나라인데 말이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에너지업계의 목소리가 강하다고 봐야할 것 같다. 2011년 3.11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서 그 피해를 일본뿐 아니라 주변국들까지 입고 있는데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에너지 구조를 개편하려던 민주당 정권은 곧바로 쫓겨났다. 정치권이 업계 로비에 휘둘리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조 바이든 정부가 그린뉴딜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전까지 미국도 기후위기 대응의 발목을 잡는 일만 했으며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들어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00년대에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사실 우리도 남의말 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처지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이 호주,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몇몇 산업국가들을 모아 교토의정서 체제와 따로 가는, 즉 국제사회의 기후대응을 피해가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도 거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총회에서 적극적으로 기후대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오바마 정부는 이어 파리협약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뒤이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탈퇴하는 소동을 빚었고 바이든 정부 출범 뒤 재가입했다.
일본은 이런 미국의 흐름을 그대로 따랐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매우 미미했다.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 줄인다는 것이었다. 목표치도 낮지만, 기준년도 자체를 2013년 즉 매우 최근으로 잡았다. 그러다가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기후대응 압박이 커지자 지난 4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화상 기후정상회의를 몇 시간 앞두고 감축 목표를 26%에서 46%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좀 더 공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일본과 도찐개찐...도 아니고 좀 못 미친다 ㅠㅠ 일본이 경제규모와 배출량에 비해 목표치가 낮다고 한다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경제산업성 웹사이트] Japan’s Roadmap to “Beyond-Zero” Carbon
미국의 방향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대세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내뿜는 만큼의 탄소량을 상쇄하는 걸 탄소중립이라고 부른다. 스가 당시 총리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EU)은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 바이든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한국도 지난해에 같은 목표를 발표했다. 중국마저 작년 유엔총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상 처음으로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니까 이제 일본도 비껴갈 수가 없게 된 거다. 하지만 일본의 대응과 앞으로의 계획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많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미·중 기후 대응 이끄는 존 케리와 셰전화
BBC 보도를 보면, 인도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에 반대했다. 세계 석탄 소비량 가운데 중국이 50.5%를 차지한다. 절반 넘게 중국이 쓰는 거다. 2위가 인도(11.3%)이고 3위가 미국(8.5%), 4위가 독일(3.0%)이다. 이어 러시아(2.7%) 일본(2.5%) 남아프리카공화국(2.4%), 한국(1.8%), 폴란드(1.7%) 호주(1.5%) 순이다. 이 가운데 특히 인도는 에너지 수급구조를 바꾸기 위한 여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BBC에 따르면 인도 중앙광업연료연구소 고위 과학자는 석탄 사용을 급격히 줄이는 것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에 심각한 도전이 될 거라며 앞으로 수십년 동안 석탄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대응이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 있다고 반발해왔다. 그래서 부국들, 개발된 나라들이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경제로 이동해갈 수 있도록 저개발국들에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을 보니, 빈국 지원 줄이자는 내용도 있었다.
스위스는 금융대국이다. 빈국의 독재자들이 빼돌린 자산을 숨겨준 것으로 악명 높았고, 2015년에는 조세회피처를 폭로하는 문서들을 통해 지구적인 규모의 탈세가 부각되면서 ‘검은 돈의 도피처 1위’인 스위스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그런 스위스가, '개도국들의 탄소배출 감축을 도우려면 부국들이 재정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보고서 문구를 수정하려고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호주도 한몫을 거들었다. 2009년 코펜하겐 회의에서 부국들은 2020년까지 개도국에 연간 1000억달러씩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호주는 개도국들의 기후대응이 외부의 재정지원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부국들이 재정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보고서 초안의 언급에 대해 "주관적인 논평"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기후대응에서 핵발전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려고 로비한 나라들도 있었다. 핵발전소의 탄소배출량이 화석연료 발전소에 비해 훨씬 적다지만 우라늄 채굴과 이동 과정에서 다량의 탄소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핵발전은 안전 문제, 폐기물 문제가 있어서 환경영향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그런데 인도는 핵발전은 ‘확립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은 유엔의 2015~2030년 어젠다를 집대성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거론하면서 지속가능한 개발 차원에서 핵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의 트림에서 메탄가스가 많이 나오고, 사료용 작물을 재배하느라고 숲을 베어내서 기후변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COP26 보고서 초안에는 “식물 위주의 식단을 따르면 탄소배출량이 많은 일반적인 서구식 식단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보고서에서 이 구절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육식을 줄이기 위한 ‘고기 없는 월요일(Meatless Monday)’이라는 글로벌 캠페인이 있는데, 아르헨티나는 이런 움직임이 보고서에 언급되는 것도 막으려고 했다. 또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는 아마존 개발을 마구잡이로 허가해줘서 삼림파괴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데, 아마존 파괴를 보고서에서 언급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는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됐다. 세계 곳곳에서 올라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IPCC 소속 과학자들이 검증해 작성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197개 협약 당사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틀을 논의하는 자리다. 원래 이번 회의는 작년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다.
2015년 회의 때 각국은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를 설정하고 추진하기로 했다. 이듬해 파리에서 열린 COP21에서 교토의정서 이후의 기후대응체제인 파리협약 체제가 출범했다. 이 협약에 따라 각국은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5년마다 평가를 받게 된다. 올해가 5년이 되는 해이고, 첫 평가가 이뤄지는 해다. 올해 회의에서 각국은 이전의 약속을 더 진전시킨 방안들을 내놔야 한다. 유엔은 아직 탄소중립 일정을 내놓지 않은 나라들을 향해서도 이번 세기 중반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COP26에 참석하지 않는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1월 이후 외국 방문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푸틴 대통령은 6월에 유럽 순방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적 있다). 10월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 동맹 진영과 중-러 진영 사이의 갈등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 탄소배출량 1위는 중국이고 2위는 미국, 3위는 인도, 4위는 러시아, 5위는 일본이다. 기후대응에는 이 나라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과 존 케리 기후특사, 지나 매카시 환경관리청(EPA) 청장, 그밖에 각료급 인사 10명이 글래스고로 총출동한다고 한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참석하기로 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는 고민 중이라는데 화상회의 형식으로 참석할 수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이번 회의를 주최하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기후대응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방향을 바꿨고 이번에 적극 나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를 앞두고 영국의 코로나19 상황이 부각되고 있다. 7월에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하면서 환자가 급증, 누적 감염자가 860만명에 이른다. 이러다 다시 하루 신규확진자가 10만명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최근 영국 보건장관이 경고하기도 했다. 존슨 정부는 브렉시트 뒤로 빛이 바랜 영국의 위상을 높여보려 하지만 중-러 정상을 비롯해 브라질, 멕시코 등의 정상들이 줄줄이 불참한다 해서 곤혹스런 표정이다. 세계의 입장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이 나섬으로써 이제야 드라이브가 걸릴 수 있게 된 기후대응의 힘이 빠지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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