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7일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는 7월 이후 감염자 증가추이가 누그러졌지만 특히 유럽은 심각하다고 했다. 11월 둘째 주에 보고된 세계 신규 감염자 330만명 중 210만명이 유럽에서 발생했다.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된 이래 한 주 간 확진자 숫자로는 가장 많다.
러시아, 독일, 영국 모두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노르웨이, 슬로바키아는 사망자 숫자가 크게 늘었다. WHO에 따르면 유럽의 코로나19 사망자는 한 주 동안 5% 증가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COVID-19 사망자가 늘어난 지역이다.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2월까지 유럽에서 50만명이 숨질 수 있다는 것이 WHO의 경고다.
유럽 상황이 심각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전체 집계를 보면 영국은 누적확진자 970만명에 하루 몇 만 명씩 확진자가 늘고 있다. 누적 사망자는 14만명이 넘는다. 러시아는 누적확진자 920만명에 사망자는 26만명에 이른다. 두 나라가 세계에서 4, 5번째로 감염자가 많다. 프랑스는 누적확진자 730만명에 사망자 12만명, 독일과 스페인도 누적확진자가 500만명이 넘고 사망자가 각기 10만명, 9만명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가 확산된 나라였지만 강도 높은 통제를 한 까닭에 누적확진자는 500만명에 못 미친다. 다만 사망자는 13만명이 넘으니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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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감염자가 최근 크게 늘어난 데에는 계절적인 요인도 물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도 문제다. 뉴욕타임스의 백신트래커를 보면 현재 세계 인구 가운데 최소한 한번이라도 접종받은 사람은 53.7%에 불과하다. 저개발국에서는 아무래도 접종률이 떨어진다. 그런데 유럽 역시 백신 접종을 일찍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완전히 접종한 사람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접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다. 99%가 한 차례 이상 접종을 받았다. 뒤이어 브루네이, 쿠바, 싱가포르, 칠레 순이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이 88%로 가장 높고 네덜란드와 스페인 등이 80%대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많이 뒤쳐져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은 완전 접종률이 70%도 안 된다(한국은 한번이라도 접종한 사람이 81%, 두 번 다 맞은 사람은 78%로 집계돼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지난 9월 "완전 접종률이 65%가 안 되는 나라들은 방역통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환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이미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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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유럽에는 백신을 거부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국가가 방역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안티백서(Anti-vaxxer)' 말이다. 일례로 스위스는 완전 접종률이 65%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로뉴스에 따르면 안티백서들의 시위가 하도 많아서 대도시인 취리히 등에서는 경찰이 접종시설을 보호해야 할 정도다. 오스트리아에서는 9월 지방의회 선거에서 백신 거부를 부추긴 우익들이 의석을 차지했고 독일에서는 극우파 독일대안당(AfD) 지도자들이 나서서 백신과 방역조치에 대한 거부를 선동하고 있다.
동유럽은 접종률이 특히 낮다. ECDC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안에서는 전체 성인의 76%, 전체 인구의 65%가 백신 접종을 마쳤다. 하지만 동쪽으로 갈수록 접종률은 떨어진다. 폴란드는 50%가 좀 넘고,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등은 40%대다. 러시아는 35% 수준이며 불가리아 보스니아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은 20% 조금 웃도는 형편이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률을 보면 동유럽이 아주 높다. 1위는 남미의 페루이지만 2위부터는 불가리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헝가리, 체코 순서다. 루마니아는 중환자가 급증하는데 대응할 여력이 없어서 이탈리아 독일 등 주변국들로 환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접종률만으로는 유럽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다. 접종도 중요하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 그 못잖게 중요하다.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는 탓도 있지만,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세계 전체에서 백신이 모자라기 때문에 WHO는 잘 사는 나라들이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것을 멈춰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개도국, 빈국들에 돌아가는 백신이 줄어들 테니까. 유럽은 그 와중에 제일 먼저 백신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세계 전체의 백신 총량 가운데 많은 양이 유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스크 안 쓰고 멋대로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으면 백신도 역부족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유럽은 바이러스와 백신의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테스트 케이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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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통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는 15일부터 전국적으로 열흘 간의 록다운에 돌입했다. 12살 이상인데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학교 수업과 직장 근무, 생필품 구입 등 필수적인 목적이 아니면 돌아다니지 못한다. 위반시 벌금도 높였다. 오스트리아 인구 900만명 중에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이 200만명에 이르니, 인구 4분의1이 열흘 간 놀러 못 나가고 식당도 못 가는 것이다.
독일도 미접종자의 발을 묶고 있다. 베를린 시는 15일부터 접종자 혹은 감염됐다가 회복된 사람만 식당이나 술집에 갈 수 있도록 했다. 뮌헨 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전통시장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해마다 300만명을 끌어모았던 시장이 또 취소됐으니 지역 경제에는 타격이 크겠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차 파도를 맞고 있다”면서 전면적인 코로나 대응을 강조하고 나선 형편이다.
러시아도 이번주부터 부분 록다운에 들어갔다. 백신접종 QR코드 인증을 도입해서 미접종자는 철도나 항공 이용을 제한하고, 식당이나 공공장소 출입도 막는다. 벨기에는 10살 이상부터 집밖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다시 의무화했다. 그뿐 아니라 12월 중순까지 기업들의 주 4일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발트해 연안의 라트비아는 이달 들어서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외국인들은 입국하지 못하게 했다. 야간 통행금지령도 내렸고, 미접종자들은 외출을 제한하고 있다. 심지어 라트비아 의회는 기업이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의원들 중에 미접종자가 있다면? 그런 의원은 세비를 주지 않고, 법안 표결도 못 하게 했다. 의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접종을 받는 사람한테 돈을 주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16일 발표한 조치다. 백신을 두 차례 다 맞은 사람은 1000흐리우냐, 약 4만5000원을 받게 된다. 얼마 안 되는 돈 같지만 이 나라 월평균 임금이 1만3000흐리우냐, 60만원이 채 안 된다. 영국은 40세 이상 모든 사람에게 접종을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패스’를 도입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스웨덴은 9월 말까지만 해도 상황이 괜찮고 접종률도 높은 편이라 제한조치들을 거의 다 풀었다. 그랬다가 유럽의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백신접종이나 음성판정 증명, 혹은 감염됐다 회복된 뒤 6개월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코로나통행권(COVID pass)을 강화했다. 지금까지는 여행할 때에만 적용됐는데 12월 1일부터는 100인 이상 모이는 행사에 참석할 때에도 코로나패스를 보여줘야 한다. 덴마크도 코로나패스를 다음달부터 의무화한다. 식당이나 카페,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려면 접종이나 음성 인증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아일랜드는 식당, 카페에만 적용하던 것을 극장 등으로 확대했다.
이탈리아에는 녹색인증(certificazione verde, 그린패스)이 있는데 연말을 앞두고 역시 규정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승객 중 한 명이 코로나 증세를 보이면 기차를 멈출 수 있다. 택시 운전사들뿐 아니라 앞으로는 뒷자리 승객들도 그린패스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는 10월 말에 외국인 입국제한 규정을 고쳐서 5단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중간등급이지만 12월 15일부터는 제한대상 등급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린패스나 방역수칙에도 반대한다. 네덜란드는 식당과 상점들이 오후 8시에 영업을 마치도록 하는 부분 록다운에 들어갔다. 그러자 북부 한 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불꽃을 터뜨리고 불을 지르며 항의 시위를 해서 폭동진압경찰이 출동했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에서도 그린패스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크로아티아의 일부 극우 시위대는 나치의 유대인 핍박을 암시하는 표식을 달고 나와서 백신 반대, 방역수칙 반대를 외쳤다.
반대로 헝가리에서는 정부가 문제다. 극우파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 정부는 방역대응에 미온적이어서 의사단체가 총리에게 식당과 극장 등의 백신 미접종자 출입을 제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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