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방위 `이란 때리기'에 나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이란 핵을 둘러싼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미국은 "이란의 핵 보유는 용납할 수 없다"며 군사공격까지 시사하는 발언들을 내놨다. 미국이 이같은 태도를 고집하면서, 이란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러시아와 미국 간에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방위 `이란 때리기'
`부적절한 사냥'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숨죽이고 있던 딕 체니 미 부통령이 포문을 열었다. 체니 부통령은 7일 유대계 로비단체인 AIPAC에서 연설하면서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옵션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용납 못 한다"고 재차 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란과 북한을 `여성 인권탄압국'으로 꼽으며 비난했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란군이 이라크 내에 침투하고 있다"면서 이라크의 혼란을 이란 탓으로 몰아붙였다. 전날 니컬러스 번스 국무차관은 TV방송에 출연해 "국제사회가 이란 경제제재를 가하기 위해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IAEA는 지난달 4일 긴급이사회에서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보내기로 결정했으나, 이번 정례이사회가 끝날 때까지는 제재 문제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기로 상임이사국들 간 합의가 이뤄졌었다.
핵협상 어떻게 되나
IAEA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본부에서 이틀째 정례이사회를 열고 이란 핵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IAEA는 7일 이사회에서 모하마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제출한 보고서를 최종 심의한 뒤, 완성된 보고서를 유엔 안보리로 넘기게 된다.
러시아는 ▲이란에 연구 목적의 소규모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주되 ▲전면적 농축은 중단케 하고 ▲러-이란 합작 에너지기업을 세워 핵 발전에 필요한 농축과정을 러시아 쪽으로 이전한다는 안을 내놓고 이란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앞서 엘바라데이 총장은 정례이사회 개막 전 이란이 러시아 제안을 받아들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주일 내에 이란 핵문제가 협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러나 그 직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엘바라데이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은 러시아측 제안에 반대하며 어떤 형태로도 이란의 핵활동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미·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7일 워싱턴을 방문해 부시대통령,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회담을 가졌지만 이란 핵문제 등 여러 이슈를 놓고 이견을 좁히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공개적으로 노출하기만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란을 압박해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며 미국측에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 경제제재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그런 제재안이 나온 걸 본 일이 있느냐"며 일축했다.
라이스 장관은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아직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반면,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이 유독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막고 있다"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초청, 미국과 이스라엘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염병할 놈들...
오는 20일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개시한 지 만 3년이 된다. 이라크는 내전 위기에 처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고 `대테러전쟁'은 늪으로 빠져든 지 오래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이라크전의 논리적 기반이 됐던 `방어적 선제공격 독트린'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이란을 `최대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제2의 이라크전'으로 이란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 공격할 거냐" 백악관 vs 기자들 설전
이날 백악관에서는 스콧 맥클랠런 대변인과 기자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맥클랠런 대변인이 이란 위협을 재차 강조하자 기자들은 "이라크로부터 배운 것이 뭐가 있느냐", "이라크를 공격한 뒤에 미국의 거리가 안전해졌느냐"며 `이라크의 교훈'을 중시해야 한다고 추궁했다. 매클랠런 대변인은 "선제 공격은 미국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이란을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했다. 기자들은 "선제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부시 대통령이 제대로 알고서 말하는 것이냐"며 거세게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도 `방어적 선제공격' 개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란 공격설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공화당 정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공개적으로 이란 핵시설 공격을 주장해왔다. 부시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군사행동 가능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부시대통령이 국면전환용으로 이란을 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격 시나리오
공격 수순은 이라크전쟁 이전 상황을 바탕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재를 거론해 이란의 반발을 유도, 핵 사찰 과정을 무력화시킨 뒤 미군 전투기가 이란 핵 시설로 추정되는 곳을 폭격하는 것이다. 혹은 수차례 이란 폭격을 주장해온 이스라엘이 먼저 공습을 가하거나 미·이스라엘 합동 공격을 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의 우익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군이 이란을 공습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단독 공습을 하려면 이라크 영공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미군이 미주리주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동원됐던 B2 스텔스 전투기를 출격시킬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슈피겔은 미국이 이란 공격을 염두에 두고 F15, F16 전투기 출격 거리 내에 위치한 터키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쟁은 무리' 회의론도
구체적인 공격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지만,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쿠웨이트 전쟁 등을 먼저 일으킨 전례가 있으며 장기집권을 하면서 쿠르드족과 시아파 무슬림 등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한 독재자였다. 반면 이란은 보통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선거로 집권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라크가 쿠르드와 시아파·수니파로 갈라져 있던 것과 달리 이란은 국민 대다수가 시아파 이란족이어서 종파·종족간 분열이 거의 없다.
이란 지도부는 전통적으로 알카에다 같은 수니파 극단주의에 적대적이었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기는 하나 미국이 주장하는 `테러국가'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고 `독재정부' 비난도 먹히지 않는다. 국토는 이라크의 4배(164만㎢)나 되는 대국인데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또 부시대통령은 집권기간 이미 2차례 전쟁을 치렀다. 막대한 군비 부담에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키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란 공격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16일 "이라크 정국 안정 문제에 관해서만은 이란과 대화하겠다"고 밝혀 유화제스처를 취했다. 이 대화가 이뤄진다면, 미국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래 처음으로 이란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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