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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도쿄증시 거래중단과 증시시스템의 취약성

딸기21 2020. 10. 1. 19:24

1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주가정보가 뜨지 않은 채 빈 칸만 표시돼 있다. 시스템 이상으로 이날 도쿄증시는 하루 종일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스템 장애로 온종일 모든 주식 종목의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쿄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거래소그룹(JPX)은 시스템 장애 때문에 이날 하루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거래소 측은 이날 오전 증시 개장 전부터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오전 9시 거래 개시 시점부터 모든 종목의 거래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고야증권거래소와 후쿠오카증권거래소, 삿포로증권거래소에서도 거래가 정지됐다. 같은 JPX 산하이지만 선물 거래 중심인 오사카거래소는 도쿄와 다른 시스템을 쓰고 있어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도쿄 상품거래소에서도 원유 선물거래 등이 평소처럼 이뤄졌다.

 

약 3700개 종목이 상장된 도쿄증시는 거래 규모로 보면 미국 뉴욕증시와 나스닥에 이어 세계 3위다. 전 거래일인 9월 30일 거래된 액수만 2조9000억엔, 약 32조원에 이른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시장의 중요한 인프라인 거래소에서 거래가 불가능해져 투자자들의 거래 기회가 제한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금융청은 도쿄증시 시스템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고 있다. 미야하라 고이치로(宮原幸一郞) 도쿄증권거래소 사장은 투자자들에게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2005년 11월에도 매매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3시간 동안 거래가 정지됐다. 2006년에도 거래량이 갑자기 늘면서 오후 모든 거래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2018년 10월에는 증권회사로부터 주문을 받는 시스템 중 하나가 고장나 일부 주식 거래가 중단됐다. 그보다 훨씬 전인 1988년에는 시장에 버블이 너무 심해서 거품 붕괴 우려가 커지자 거래소 측이 거래시간을 단축시켰다. 하지만 종일 모든 거래가 멈춰선 것은 처음이다.

 

미야하라 고이치로 도쿄증권거래소 사장이 1일 증시 거래 중단에 대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도쿄증시는 2006년 1월에 한나절 거래가 중단됐을 때에도 세계 시장에 충격을 줬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던 일본에서 증시의 시스템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는 사정이 좀 달랐다. 라이브도어라는 벤처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터지면서 도쿄증시에 매도 주문이 몰렸고, 전산망이 과부하를 받게 된 것이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래소 측은 전 종목 매매를 정지시키는 긴급조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 거래 중단은 그런 돌발 요인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2006년의 경우 시스템 과부하가 예견됐는데도 거래소 측이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일본 정부가 거래소에 시스템 증강을 지시했다. NHK 방송에 따르면 도쿄증권은 2010년 1월에 ‘애로우헤드’라는 기간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작년 11월에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미야하라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시장 정보전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만 설명했다. 그래서 닛케이평균주가는 물론이고 개별 종목 주가를 비롯한 정보들을 표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가 진행돼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일 도쿄증시에서는 히로긴홀딩스 등 3개사의 신규 상장이 예정돼 있었지만 거래 중단으로 미뤄졌다. 투자분석가들은 “평소처럼 거래가 됐다면 주가가 많이 오를 수 있는 날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날 뉴욕증시 다우존스 지수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 거래의 70%를 해외투자가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투자자들의 단기 손실이 적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출범한 새 정부가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이날 거래소 사고에 따른 영향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NHK 등은 전망했다.

 

일본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가부토초에 있는 도쿄증권거래소.  도쿄 AFP연합뉴스

 

증시의 컴퓨터시스템 장애는 드문 일은 아니다. 2015년 7월에 뉴욕증권거래소 컴퓨터시스템이 마비됐다. 시스템 이상 때문에 뉴욕증시 거래가 4시간 동안 중단됐고, 이 시간에 발생한 거래주문이 무효가 되면서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에 유나이티드항공 시스템에서도 이상이 발견돼 세계로 이어지는 항공편 4900편의 운항이 지연됐으며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의 홈페이지도 다운됐다. 사이버테러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단순한 사고로 판명났다. 그럼에도 당시의 동시다발 시스템 마비에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고도로 컴퓨터화된 비즈니스가 작은 사고에도 매우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클릭 한번에 수천억원이 오가는 금융시장의 취약성이나 불안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나왔다. 뉴욕증시에서는 2012년 11월 US스틸 등 216개 기업의 거래가 중단된 적 있다. 2014년에는 뉴욕증시에서 IEG라는 한 회사의 옵션거래에서 컴퓨터 오작동이 일어나 2만건의 거래가 줄줄이 취소됐다. 세계최대 선물시장인 시카고상업거래소는 2014년 8월 소프트웨어 이상으로 4시간 동안 멈춰섰다. 2012년 5월 페이스북이 기업공개(IPO)를 할 때 투자자들의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당일 기술적인 실수로 거래가 20분 지연됐고 나스닥은 1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2013년에도 나스닥이 3시간 넘게 마비됐다.

 

실수로 매입·매도 주문을 잘못 내는 ‘팻 핑거 사고(Fat-finger error)’도 드물지 않다. 2006년 일본 미즈노증권은 클릭 실수로 400억엔을 날렸다. 2012년 8월 미국 투자회사 나이트캐피탈은 매입주문을 잘못 넣어 4억6100만달러를 잃었고, 그 여파로 위기를 맞아 라이벌 회사에 인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