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가 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자민당 신임 총재가 15일 간사장 등 주요 당직자 인선을 발표했다. 파벌 안배에 초점을 맞춘 인사였다. 16일 출범할 ‘스가 내각’ 역시 변화보다는 안정과 ‘연속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스가 총재는 이날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81)을 연임시키고 총재 선거 ‘라이벌’이었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의 자리에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선거대책위원장(66)을 앉히는 것을 비롯한 자민당 인사를 발표했다. 총무회장엔 사토 쓰토무(佐藤勉) 전 총무상(68), 선대위원장에는 야마구치 다이메이(山口泰明) 조직운동본부장(71)을 기용했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국회대책위원장(75)은 유임됐다.
보수 계열의 여러 정당을 오가다가 자민당 정착에 정착한 니카이 간사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부터 당의 중책과 각료를 맡으며 당내 세력을 키웠다. 회원 47명의 3대 파벌인 니카이파를 이끌고 있으며, 이번 총재선거에서 스가 후보를 가장 먼저 지지했다. 시모무라 정조회장은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사토 총무회장은 아소파, 야마구치 선대위원장은 다케시타파, 모리야마 국회대책위원장은 이시하라파다. ‘당 4역’에 국회대책위원장을 더한 ‘당 5역’을 5개 파벌에 고르게 나눠준 것이다. ‘개혁’이나 ‘변화’보다는 스가 총재를 지지한 파벌 배려에 치중한 것이다.
새 내각도 결국 파벌 안배와 연속성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몫인 아카바네 가즈요시(赤羽一嘉) 국토교통상(62)은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스가 총재가 니카이 간사장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79)을 정권 운용에서 “매우 중요한 두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아소 부총리도 유임 가능성이 높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64),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상(55)도 연임이 예상된다.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 관방 부장관(79)도 재선임될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이날 오전 스가 총재는 총리관저에서 관방장관으로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2차 내각의 마지막 정례 각료회의의 사회를 봤다. 20분 간의 회의 뒤 아소 부총리는 연임설에 대해 “지금은 평시가 아닌 비상 상태”라며 “맡으라고 하면 이런 상황에 대응할 각오는 돼 있다”고 말했다. 전날 스가 총재는 조기총선에 대해 “코로나19 대응이 최우선”이라며 말을 아꼈으나, 아소 부총리는 “내년에 올림픽이 있다는 걸 전제로 생각하면 (중의원) 조기 해산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염병과 올림픽이 다시 자민당의 짐이 되기 전에 선거를 치르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역시 연임이 점쳐지는 모테기 외무상은 “새 내각은 코로나19 대응과 경기회복, 나아가 적극적인 외교 등 아베 정권에서 해온 다양한 대처를 앞으로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도 “아베 정권 때 외교에서도 일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서 이런 노선이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주 아베 총리가 내놓은 미사일 저지 관련 담화를 거론하며 “우리나라를 어떻게 지킬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논의해야 하고, 아베 총리의 마음이 새 총리에게도 계승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노 방위상은 당초 총재선거에 출마하려다가 파벌 수장인 아소 부총리의 설득에 단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임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책을 계속 맡을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보고 있다. 외교·국방 분야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두 장관이 예고한 셈이다.
주요 각료들이 거의 바뀌지 않는다고 보면, 각료 인선의 핵심은 새 총리의 후임인 관방장관 밖에 없다. 내각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이 될 관방장관으로 현재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57),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64),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64) 등이다. 하기우다는 호소다파, 가토는 다케시타파, 가지야마는 무파벌이다.
가지야마는 스가 총재가 ‘정치적 스승’이라 부르는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스가 총재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도 가지야마 세이로쿠의 말을 인용했다. 가지야마를 관방장관에 내세우면 ‘탈 파벌’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스가 총재 밑에서 관방부장관으로 일했던 가토 후생노동상 쪽으로 거의 굳어졌다고 자민당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가토 후생노동상은 기자회견에서 관방장관 기용설에 대해 “스가 총재와 인사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면서 “어쨌든 신임총재를 선출했으니 확실히 지지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아베 총리 사임 발표 뒤 자민당 내각지지율이 치솟았지만, 스가 정부가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가 총재는 당선 뒤 개혁을 언급했지만 ‘규제개혁’을 강조했을 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행정 디지털화, 코로나19 대책 강화, 중소기업·지방은행 재편, 휴대전화 요금인하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의 정치적 방향성보다 행정적인 측면에 치중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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