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Big Farms Make Big Flu -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딸기21 2020. 7. 18. 14:32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Big Farms Make Big Flu

롭 월러스.

 

 

코로나19를 계기로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세계를 움직인 주요 전염병들’에 초점을 맞춘 역사서들도 있고, 바이러스의 진화를 추적한 생물·의학적인 서적들도 있다. 이 책에서 월러스가 다소 혹평을 하긴 했지만 데이비드 콰멘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처럼 인수공통 전염병에 한정시켜 밀도 있게 바이러스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 책도 있다.


월러스의 이 책은 코로나19 이전에 나온 것이고, 책에 실려 있는 글들 대부분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쓰인 것들이다. 이 책은 많이 나와 있는 전염병 관련 서적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월러스는 미네소타대학 글로벌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는 진화생물학자다. 좌파 성향의 바이러스 학자인 그는 이 책에서 조류독감 등 인플루엔자를 중심으로 바이러스의 진화와 확산을 촉진한 거대 축산업, 나아가 자본주의의 세계경제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옮긴이들이 일하는 경향신문에서는 몇 해 전 멕시코 신종플루의 출발지였던 그란하스 카롤의 농장을 취재한 적 있다. ‘0번 환자’ 에드가 소년은 건강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었지만, 미국 축산업체 스미스필드를 둘러싼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저자가 ‘빅 애그’라 불리는 거대 농축산업, 이른바 애그리비즈니스에 좀 더 비판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글로벌 전염병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이 될 수 있다.


1부는 광둥성 등 중국 남동부에서 ‘유난히’ 바이러스들의 변이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플루의 산업적 배경 등을 살핀다. 그는 밀집 사육되는 가축과 가금류 사이에서 바이러스의 변이가 더 자주 일어나고, 병독성이 더 높아지게 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코로나19의 바이러스를 놓고 WHO가 ‘COVID-19’라는 공식 명칭을 정했지만 월러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명칭에는 비판 받을 소지가 적지 않다. 중국 당국과 거대 축산업의 책임은 물론이고, 바이러스의 기원에 담긴 지역적 특성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중국 바이러스’ ‘우한 폐렴’ 등으로 불리면서 한국에서 반중 정서를 낳았고, 유럽과 미국에선 ‘반 아시아 정서’를 부추겼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이러스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것의 효용과 부작용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딱 잘라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남부의 축산업 발전과 세계 농업생산망으로의 통합을 바이러스의 연쇄 진화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월러스의 시각은 우리에게 ‘전염병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를 제공해준다.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통해 한 지역의 역사와 지리가 겹쳐지는 것이다. 


2부와 3부에는 인플루엔자의 특성과 인체 감염 메커니즘, 바이러스의 진화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들어 있다. 주로 ‘파밍파토젠스’ 등 전문 매체에 월러스가 기고했던 것들을 모아놨다. 한글판에서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임을 감안해 의학·병리학을 깊숙이 파고든 설명들은 일부 생략했다. 하지만 인체헤르페스바이러스나 카포시육종 바이러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등이 서로를 ‘도와가며’ 진화해온 모습 등을 규명해낸 연구 과정은 의학 문외한들이 읽어도 흥미롭다. 


월러스는 책에서 각국의 연구자들의 실명을 거론해가며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4부 ‘학자들의 수다’에서 거론한 주된 대상은 신종플루를 WHO가 팬데믹으로 선언하는 과정에 ‘제약업계의 영향’이 작용하게 만든 인물이다. 월러스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기업과 결탁된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농업과 전염병과 환경 모두에 해를 미치는 자본의 폐해를 짚는다. 한 때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위키리크스의 미 국무부 외교전문들을 분석해 유전자변형(GM) 농업을 각국에 강요하는 미국의 난폭함을 고발한 내용도 눈에 띈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 저자의 관심은 인플루엔자를 넘어 미국의 노예제, 커피 생산방식과 생태계의 자연적인 방제 작용, 아프리카 중부에서 기원한 에볼라 감염증, 난데없이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에서 퍼진 홍역 등으로 넓어진다. ‘커피 필터’에 소개된 개미와 여러 곤충들의 공생관계는 자연과 농업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책의 여러 부분에서 저자가 언급한 보존농업의 경우는 사실 찬사와 혹평이 엇갈린다. 작물들을 섞어 키우고, 흙을 볏짚 따위로 덮어 토양 침식을 막고, 구획을 정해 땅을 쉬게 하고, 유기농으로 환경과 건강을 지키며 생산량도 늘릴 수 있다는 환경·농업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성과를 과장한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러스가 전하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실험들은 눈여겨볼만한 가치가 있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모든 것을 장악한 수직통합형 거대 농식품업체들이 지배하는 시장 틈바구니에서, 농민들의 작은 움직임들과 연대는 무엇보다 생산방식의 다양성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에 온전히 지배되지 않는 그 틈새에서 저자는 지금과는 다른 농업, 혹은 더 나은 농업의 희망을 본다. 아직 그런 작은 변화들은 대세가 아니며 앞으로 거대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의 농업 판도를 바꿀 가능성도 현재로선 적어 보인다. 하지만 ‘대세’가 되지 못하더라도,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나 진리가 아님을 깨우쳐준다. 

 

월러스는 자본주의가 농업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연구까지 결정짓는다고 거듭해 지적한다.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농축산업의 생산과정은 마트에서 부위별로 포장된 닭고기를 사는 우리 소비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기업들의 생산방식이 먹을 것과 농축산업과 자연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틀을 제한해버린다. 월러스가 강조한 대로, 농업의 이런 문제들과 바이러스의 진화는 이어져 있다.


월러스는 이 모든 문제의식을 종합한 ‘원헬스’ 개념을 설파한다. 코로나19로 보건과 방역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원헬스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원헬스는 자연, 동식물과 농업, 인간, 바이러스와 건강, 보건인프라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각국 보건당국과 제약회사들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전염병은 계속 되풀이된다. 월러스의 표현을 빌면 마치 1호 태풍에 이어 2호 태풍, 3호 태풍이 여름마다 찾아오듯 코로나19에 이어 코로나21, 코로나23이 인류를 덮칠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을 넘나드는 질병이 코로나바이러스 수준의 치명성에 그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질병을 넘어서는 시각을 가져야 질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월러스는 2020년 3월 먼슬리리뷰 기고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모든 뉴스들이 빠뜨리고 있는 것은 이 전염병이 퍼지게 만든 구조적인 원인들”이라며 “그것은 바로 글로벌화된 경제에 있다”고 적었다. 20여년 간 세계에서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기간 몇 차례나 발생한 글로벌 전염병들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책에서 누차 지적한 것처럼, 월러스는 야생을 침범하는 공장식 축산업을 통한 바이러스의 종간 이동과 확산에서 코로나19의 원인을 찾는다.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백신과 치료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전염병 대책이 있는지를 묻게 된다. 월러스는 이 책에서 그동안 논의돼온 원헬스의 접근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위험요소를 고려한 ‘구조적 원헬스’ 개념을 제안한다. 그의 말을 빌면 “병원균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는 것은 야생동물을 서식지를 파괴하는 경제적 모델과 관련 있다.” 야생동물의 질병이 사람에게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축산업 모델들과 연관되며 무역 또는 토지 이용변화나 기후변화와도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감염시키지 못했던 종에게로 병원균이 점프를 하거나 내성을 진화시킨 병원균이 출연하는 것은 집중 사육이나 가축 항생제 투여 관행과 연관된다.” 월러스가 주장하는 구조적 원헬스에는 “소유권과 생산, 오래된 역사적 유물, 그리고 건강을 위협하는 지형 변화 뒤에 숨은 문화 인프라 등”이 포함된다.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개념이고, 뜬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바이러스의 변이와 병독성에 대한 꼼꼼한 설명과는 달리, 월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세계 농업생산 체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들은 다소 추상적이다. 위키리크스에 적힌 내용이나 아프리카 등지의 몇몇 사례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디테일을 생략한 ‘총체적 비판’에 가깝다. 이는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 진화의 관계를 1대1로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기술적인 한계, 그리고 저자가 지적한 대로 자본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연구관행의 한계와 이어져 있는 문제일 수 있다. 모든 게 이어져 있다는 생각은 이런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