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화춘잉도 "숨을 쉴 수 없다"…미국 '위선' 비꼬는 인권탄압국들

딸기21 2020. 6. 1. 16:34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루트문트 팀의 아슈라프 하키미 선수가 31일(현지시간) 파더보른의 벤텔러 경기장에서 열린 SC파더보른과의 시합에서 골을 넣은 뒤 셔츠를 들어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이라 쓰인 문구를 보여주고 있다.  파더보른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세계로 번졌다. 미국의 민낯을 드러낸 플로이드 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국가기구의 폭력에 맞선 연대의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 틈을 타, 시민들을 탄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려온 정권들까지 일제히 미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의 인권지킴이를 자처하면서 이중잣대를 들이대온 미국의 행태가 연출한 블랙코미디다.

 

주말인 31일(현지시간) 유럽 곳곳에서 미국의 인종차별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라고 외쳤고 미국 대사관 앞까지 행진이 이어졌다. 영국 내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맨체스터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열렸다.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과 미 대사관 앞에서도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도르트문트 축구팀 선수들은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이라는 문구를 보여주는 골 세리머니를 했다. 코로나19 봉쇄가 오랫동안 이어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플로이드가 마지막 남긴 말인 “숨을 쉴 수 없다”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주민들이 30일 경찰에 의해 숨진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애도하고 있다. 트위터

 

이란에서 핍박받는 미국의 흑인들에게 연대를 표하며 플로이드를 애도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독립 미디어포털 ‘이란프로젝트’에 따르면 북동부 마슈하드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며 플로이드의 사진 앞에 꽃과 촛불을 놓고 애도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군에 사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애도하는 150여명의 시위대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흑인들과의 연대를 외쳤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최근 29세 흑인 여성이 경찰을 피하려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한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과 미국 플로이드 사건에 함께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미국에서 온 소식을 충격과 공포 속에 지켜봤다”며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에도 인종주의, 안티블랙(반흑인) 인종주의는 실재한다.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아프리카연합은 “미국서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살해를 강력 비난한다”며 “미국 당국은 인종이나 민족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완전히 없애려 노력하라”는 성명을 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미국 흑인사망 항의시위를 다룬 러시아 RT방송 뉴스 화면을 트위터에 올리며 ‘폭력배&영웅의 위선’이라 적었다. 화춘잉 트위터

 

미국을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온 중국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트위터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물어보고 싶다: 미국이 홍콩 폭도들을 미화한 것처럼 베이징도 미국 시위대를 지지해야 할까?”라는 글을 올렸다. 홍콩 시위대를 편들며 중국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한 미국을 비꼰 것이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나서서 트위터에 “숨을 쉴 수 없다”라고 적었다.

 

화 대변인은 또 미국의 시위를 다룬 러시아 RT방송 화면을 캡처해 올리며 ‘폭력배&영웅의 위선’이라 적었다. 폭력배(thug)라는 표현은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위대를 지칭하며 썼던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력배들”을 비난하면서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해 거센 비판을 불렀다.

 

하지만 RT를 인용해 화 대변인이 강대국의 ‘위선’을 거론한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RT는 과거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노보스티가 운영하던 TV채널이다. 2013년 리아노보스티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에 장악된 뒤로는 정부 선전방송으로 전락, 러시아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하는 미디어가 됐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30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가 이란을 비판하며 내놓은 보도자료를 수정, 일종의 패러디로 미국을 비꼬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트위터

 

이란에서 지난해 10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당국이 유혈진압,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권에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국영방송들은 주말 내내 “경찰이 시민을 공격하고 있다”며 진압 장면들을 내보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은 ‘이란의 인권침해’를 비판한 미국 국무부 보도자료를 편집한 글을 트위터에 게시했다. 그동안 미국의 인권 압박에 시달렸던 인권 탄압 국가들이 미국의 이중잣대를 지적하며 일제히 손가락질하는 양상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동성애자와 여성, 유대인들을 탄압한다는 글로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 역시 주지사 시절 증오발언과 차별을 ‘종교적 권리’로 인정한 법을 만들어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을 적극 조장한 인물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동성애자와 여성과 유대인을 핍박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에 반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트위터

 

심지어 언론인들을 구금하고 쿠르드족을 탄압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나섰다. “인종, 피부색, 종교, 언어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미국 경찰의 불법적 폭력”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미국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미국 경찰은 그런 범죄를 너무 자주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1일 abc방송에 출연해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찰관은 조사받고 기소되고 재판을 받을 것”이라면서 그것이 미국을 비난하는 나라들과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시위 와중에도)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렸다”면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