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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오바마의 ‘러시아 제재’ 따라 하는 트럼프의 ‘중국 제재’

딸기21 2020. 5. 27. 14:47

27일 홍콩 입법원(의회) 앞에서 무장경찰들이 경비를 하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홍콩보안법을 추진하는 중국에 대해 “강력한 대응방안을 이번주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홍콩 자치를 침해했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을 제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무역전쟁을 넘어 중국와의 정치적 갈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홍콩정책·민주주의법을 수정, 홍콩의 자치가 보장되고 있는지 매년 심사하기로 했다. 홍콩에 관세 혜택 등을 주는 특별무역지위를 인정해주는 것도 이 심사 결과에 따라 매년 재검토한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올해 심사결과를 지난달 발표하려다가,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끝난 뒤에 공개하겠다며 미뤘다. 28일 전인대가 끝나면 이번 주 안에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제재 방법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강력 대응’의 방식으로 미국 언론들은 중국 관리들과 기관에 대한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거론하고 있다. 관건은 누구를 제재할 것인가다. 현재로선 중국의 최고위 관리들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앞서 미 상원 민주당의 크리스 밴홀런, 공화당의 팻 투미의원이 내놓은 제재법안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을 실행에 옮기는 기관과 관리가 제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밴홀런 의원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불법적으로 탄압한 중국 관리들”에게 벌칙을 줘야 한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누구를 어떻게 제재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미 정부 여러 기관들이 논의중”이라고 국무부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이번에 내세운 명분은 중국의 홍콩 탄압이지만, 중국 관리들에 대한 제재는 다방면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미 지난달 하원 민주·공화 양당 일부 의원들은 중국이 감염증 위험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신장의 위구르족 무슬림 3만명을 노동수용소에 집어넣어 위험에 빠뜨렸다며 ‘미국이 제재해야 할 10명의 중국인’을 명시했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지구의 노동수용소에서 일하는 위구르족 노동자들.  CCTV 화면캡처·위구르타임스

 

코로나19 진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의 부시장 천융신, 우한시 공중보건국장 리일룽과 전 부국장 샤젠중, 국무원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의 마샤오웨이 주임과 왕허셩 부주임, 자오리장 외교부 대변인, 코로나19를 ‘우한바이러스’라 부른 트럼프 대통령을 트위터에서 비난한 전 남아공주재 중국대사 린쑹톈이 명단에 들었다. 신장위구르 호탄지구 공업정보국 장웨이 부국장, 신장위구르 공산당 간부 천취앤궈와 위구르인 노동력을 동원한 기업 하이크비전의 천중녠 회장도 포함됐다.

 

대부분 우한과 신장위구르 관리들이고, 중앙정부 인사들은 위건위 주임·부주임과 외교부 대변인 정도다. 하원의원들은 이렇게 코로나19와 위구르 탄압을 연결지으며 ‘글로벌 마그니츠키법’을 중국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그니츠키법은 2009년 러시아에서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라는 변호사가 경찰의 부패를 고발했다가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숨진 사건에서 비롯됐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2012년 말 ‘러시아인권법’을 제정하면서 러시아 내부의 인권문제는 미-러 갈등으로 비화했다.

 

‘마그니츠키법’이라 불린 이 법에 따라 미 재무부는 2013년 4월 러시아 인사 18명을 경제제재 대상에 올리고 미국 입국도 금지시켰다. 주로 마그니츠키가 비리를 폭로했던 세무관리들, 수감 당시 학대와 고문 책임 있는 내무부 관리들, 재판 맡았던 판사 등등 ‘실무자급’ 인사들이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인권을 침해한 미국인 18명’의 명단을 발표하며 맞받았다. 갈등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돈줄’로 알려진 기업인들로 제재 대상을 확대했고 양국 관계는 대립 일변도로 치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노인들의 당뇨병 치료제 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 UPI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인권침해와 부패를 막는다며 2017년 12월 외국 관리들과 자산을 광범위하게 제재할 수 있는 행정명령, 이른바 ‘글로벌 마그니츠키 제재법’에 서명했다. 니카라과, 미얀마, 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남수단, 이라크 관리들이 줄줄이 제재 대상이 됐다.

 

지구 상 어디에서 벌어진 일이든,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를 막는다는 의미에서 이런 조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12월 외교장관회의에서 ‘유럽판 마그니츠키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도 없이 재무부 결정만으로 경제제재 대상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도 적지 않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되면 G2의 갈등은 더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하원의 움직임에 발맞춰 미 상원은 지난 14일 위구르인권정책법을 통과시켰다. 공화당 대선주자로 나섰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민주당의 외교전문가인 밥 메넨데즈 하원의원 등 상·하원의 양당 의원들이 폭넓게 코로나19와 위구르와 홍콩을 엮는 제재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주들의 움직임도 있다. 미주리주와 미시시피주는 이달 중순 “중국이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방해했다”며 중국 정부를 제소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최소 6건이라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환구시보는 미국의 공격에 맞서, 중국 관리들이 미국 하원의원 4명과 기관 2곳을 보복 제재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