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한 나라는 120개국이 넘었고, 감염자는 12만명을 웃돈다. 이탈리아는 누적감염자가 1만2000명이고 이란도 1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은 가까스로 진정세에 들어섰다가 서울에서 집단감염이 다시 불거졌다. 유럽은 확산세가 무섭다.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은 2000명 안팎이며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도 나날이 감염자가 늘어난다. 남극을 빼고 세계 모든 대륙에 환자가 나왔다.
걷잡을 수 없이 감염증이 퍼지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결국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앞으로 며칠에서 몇 주 사이에 감염자와 사망자, 피해국가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단순한 공중보건 위기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위기”라고 했다.
신종플루 이어 두번째 ‘팬데믹’
WHO는 감염증의 위험 수준과 확산 정도를 6단계로 평가한다. 1~3단계는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돼 국지적 감염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나면 4단계로 대응이 격상되고 5~6단계는 사람 사이 감염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을 뜻한다. 지구적인 유행병이 돼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면 ‘팬데믹’을 선언하고 각국에 강력한 대응을 요청할 수 있다.
1968년 홍콩독감 때 WHO가 팬데믹이라 표현하긴 했으나 지금 같은 평가단계를 만든 것은 사스 이후인 2005년이다. 그후 공식 선언을 한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때가 유일하다. 그러나 지금도 어떤 질병에 얼마나 많이 걸려야 선언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WHO에서 보건긴급사태를 담당하는 마이클 라이언 국장은 팬데믹 선언에 “수학 공식이나 알고리즘은 없다”고 했다. 다만 그 용어를 선택했을 때의 심각성을 알기 때문에 안팎의 전문가들과 깊이 논의했다고만 설명했다.
100여개국으로 번지도록 팬데믹 선언을 미루자 ‘WHO가 중국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컸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결정이 늦어졌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신종플루 때에는 WHO 사무총장이 중국의 마거릿 찬이었는데, 팬데믹을 선언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과잉대응으로 제약업계의 공포마케팅에 편승했다는 비난 속에 진상조사위까지 꾸려야 했다. WHO가 이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데에는 그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이탈리아 등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팬데믹 선언이 비난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사후에 드러난 치명률이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는 반대일 수 있다. 치명률은 전체 감염자 중 사망자 비율을 가리킨다. ‘감염자’는 단순 확진자가 아니라 치료가 끝났거나 사망해 ‘종료된(closed case)’ 경우에 한한다. 이 때문에 현 단계에서 코로나19의 치명률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WHO와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2% 선보다 상당히 높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1일까지 1만2000여명이 확진을 받았고 800명 이상이 숨졌다. 이란, 스페인, 프랑스의 사망자도 계속 늘고 있다.
경로 추적에서 ‘피해 줄이기’로
팬데믹 선언은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는 걸 억제하는(containment) 단계를 지나 피해를 줄이고 완화시키는(mitigation) 단계로 옮겨가라는 신호다. 감염경로를 쫓아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으니, 사회 전체가 감염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팬데믹이라는 말 자체가 ‘모든(pan) 사람들(demos)’이라는 그리스어 어원에서 나왔다. 누구든 걸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학교나 시설의 문을 닫고, 군중이 모이지 못하게 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이미 한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억제 조치와 완화 단계의 조치들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조치의 내용과 강도는 각기 다르다. 한국은 기업들 재택근무를 늘리고 학교 개학을 미뤘지만 정부 차원에서 집회·행사금지령을 내리거나 특정 지역을 봉쇄하지는 않았다. 반면 이탈리아는 발병지역을 통제하고 전국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대규모 행사만 금지시켰다.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각국에서 이동을 통제하고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중단시키는 조치들이 늘어날 수 있다. 그중 특정 국가·지역 방문자 입국금지 같은 조치들은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돼왔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한국 등을 거론하며 코로나19는 ‘통제가능한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WHO가 할 일, 정부가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소극적인 대응을 우려한다”고 했다. 여전히 바이러스 검사와 검역을 회피하는 나라들이나 방역 자원이 모자라는 나라들에 주의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독감처럼’ 번질 수도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퍼질지는 알 수 없으나 독감처럼 광범위하게 번지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앞서 영국 정부 보건책임자 크리스 위티는 5일 의회에 나와 “인구의 80%가 감염되고 15~20%는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인구의 70%가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8370만 독일인 가운데 5800만명이 감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인들 입국을 막겠다고 했고 국내에서도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이 나오지만, 전 세계에 감염이 번진 팬데믹 단계에서 이런 조치는 효과가 적다. 지역사회로 퍼진 뒤에 ‘완화’하는 수단은 자발적 검역, 다중이 모이지 않기, 확진자가 나온 시설의 봉쇄와 검역, 마을·도시 수준의 격리 등이다. 영국 전염병학자 로이 앤더슨 등은 9일 의학전문지 랜싯 기고에서 인구의 60%가 감염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감염자 1명이 평균 2.5명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라면 ‘사회적 거리두기’만으로도 확산을 최대 60%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중국에서 초기에 발병지역(우한)을 봉쇄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감염자 집단을 통제한 것은 효과가 있었다”면서, 이미 지역사회 확산이 일어났는데 누가 감염됐는지 알기 힘든 상태에서 무증상 전파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 데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자가격리 상태에서 식구들에게 옮긴 사례들이 적지 않고 고령자 치명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보건당국이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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