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무료 서비스, 기금 조성…중국 기업들의 '코로나 생존법

딸기21 2020. 2. 14. 13:47

중국 장시성 난창의 난창대학병원에서 지난 6일 한 의사가 휴대전화로 간호사와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국 전역 대도시의 병원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난창 신화연합뉴스

 

세계 4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중국의 샤오미. ‘코로나19’라는 예상 밖의 암초를 만나, 내수 시장이 얼어붙을 판이다. 그래서 은행에 50억 위안(약 8500억원)의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와 체온계를 비롯한 의료장비들을 생산하는 데에 쓰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음식배달앱 회사 메이퇀뎬핑은 지난해 6월 홍콩증시에 상장한 후 시가총액이 4900억 홍콩달러, 약 74조원을 기록해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이은 중국 3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회사도 코로나19 때문에 은행에 40억위안 대출 신청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우한 의료진들과 감염자들에게 무료로 식료품을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인터넷 보안업체 치후360도 10억위안 대출을 바라면서 은행에 “의료 관련 물품 구입과 바이러스 추적 앱을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내밀었다.

 

“치료 도울테니 대출 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얼굴인식 기술 스타트업인 메그비는 홍콩에서 기업공개를 추진하려다 연기한 상태다. 미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의 위구르족 강제수용소 인권 침해에 이 회사 장비가 들어가 있다며 블랙리스트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도 은행에서 1억위안을 빌릴 참이다. 코로나19 퇴치를 돕기 위해, 다중들 속에서 발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이달 초에 발표한 바 있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13일 ‘한 마음으로 굳은 확신을 갖고, 과학적인 예방·통제로 전염병과 싸워 이기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베이징 EPA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중국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은행은 지난 2일 시중 은행들에 대출 자금 3000억위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패스트트랙 형식으로 코로나19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의 대출승인 기간을 대폭 줄이고, 금리도 낮춰줄 계획이다. 여기에 유명 기업들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기업들은 확인을 거부하고 있지만 로이터통신이 최근 은행 2곳 관계자들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두 은행에 300여개 기업들이 574억위안(약 9조72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신청했고, 이미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기업 목록과 액수도 작성해놨다고 했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은 5000만위안을 신청했다. 구급차 생산업체, 청과물시장 운영사 등도 돈을 빌리려 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냥 빌릴 수는 없으니, 기업들이 전염병 대응에 앞장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다양한 계획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줄줄이 “전염병 기금 마련”

 

급성장한 테크기업들의 능력을 전염병 통제에 활용하기 위해 중국 정부도 나서고 있다. 지난 8일 출시된 모바일앱 ‘밀접접촉감지기’는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와 국무원 판공청, 정부부처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위건위와 교통부, 교통 관련 국영기업들의 데이터를 받아 앱 사용자들이 코로나19 환자와 접촉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국영기업 중국전자과기집단공사(CETC)뿐 아니라 통신장비회사 화웨이, 샤오미, 전자제품회사 비보와 오포 같은 테크기업들도 참여했다.

 

13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방역요원들이 행인들의 체온을 검사하고 있다.  광저우 EPA연합뉴스

 

알리바바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당국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연구용 프로그램을 내주기로 했고, 의료장비 구입을 돕겠다며 10억 위안 규모의 기금을 만들었다. 텐센트는 3억위안의 전염병 예방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두도 3억위안 규모의 신약 연구개발기금을 만든다고 했다. 샤오미와 치후360도 우한에 마스크와 진단키트들을 보냈고 디디추싱은 우한 지역 의료진에게 무료 택시서비스를 지원해주고 있다. 레노보는 우한 지역에 의료장비를 기부했다. 사이버보안업체 치안신도 질병예방통제센터(CCDC)에 무료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후베이성 우한에 당국이 열흘만에 완공한 훠셴산 병원은 테크기업들의 ‘선의’를 보여주는 시험장이기도 했다.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화웨이 등 통신회사들은 이 병원에 5G 통신설비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앞다퉈 나섰다.

 

중국 디지털화 ‘시험대’

 

중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테크기업들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을 판이다. 알리바바와 바이두, 메이퇀뎬핑과 샤오미, 바이트댄스 등은 이달 초 일주일 가까이 직원들 상당수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인터넷업체 3분의1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는 기사도 있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재택근무 실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재택근무가 일상화돼 있지 않은 중국에서, 테크회사들의 서비스가 느려지거나 부실해졌다는 불만들이 쏟아져나왔다.

 

지난 3일 통신 장애에 대해 사과하고 서비스 재개통을 알리는 알리바바 업무용 통신프로그램 ‘딩토크(딩딩)’의 웨이보 안내문.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2020년에 우리집 인터넷은 왜 이렇게 느리냐”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사용자들은 원격근무(#WorkingRemotely)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턱없이 느려진 인터넷 속도를 지적했다. 알리바바의 업무용 통신서비스인 딩토크(딩딩)는 지난 3일 잠시 서버가 다운됐고, 텐센트의 위챗워크와 화웨이의 위링크 같은 비슷한 업무용 툴들도 장애를 빚었다. 중국 디지털화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발빠르게 적응해가려는 회사들도 있었다. 바이트댄스는 화상회의 기능 등이 포함된 ‘페이슈’라는 원격근무용 무료 통신서비스를 개통했고, 직원들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일일 건강보고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여론의 고삐를 죄고 있는데, 여기에도 협력해야 한다. 위챗은 ‘전염병에 관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계정은 영구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한 기업들이 늘자, 바이트댄스는 화상회의 기능 등이 포함된 ‘페이슈’라는 원격근무용 무료 통신서비스를 내놨다.  바이트댄스 위챗

 

‘중국의 속도가 느려졌다’

 

애플이나 삼성, 테슬라 같은 기업들의 중국 생산시설들이 가동을 멈추면서 글로벌 공급체인이 끊기고 있다는 지적은 많이 나왔다. 가전제품을 주로 만드는 오포, 컴퓨터 제조사 레노보,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의 타격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시장분석가 니콜 펑은 며칠 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특히 레노보는 후베이성에 공장을 많이 두고 있다”며 “그러나 레노보뿐 아니라 주로 광둥성에 생산기지를 둔 화웨이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도 생산시설 100% 가동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하이, 선전, 쑤저우, 난징 등지의 공장들은 일제히 생산라인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방역조치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직원들 발열체크, 손씻기, 의심환자 격리 같은 절차들로 인해 전체적인 공정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당국이 연장했던 춘제(설) 연휴는 10일 끝났지만 대규모 공장들은 먼저 현지 보건위생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가동할 수 있다. 홍콩과 마주 보는 선전은 지난 9일 안전지침을 발표했으며 지방 관리들이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폭스콘 관계자 등과 만나 위생 수칙을 협의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흑사병 시대의 유럽처럼, 바이러스가 중국 경제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