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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미 국무장관 6명째 상대하는 러시아 외교장관

딸기21 2020. 1. 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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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리비아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베를린 EPA연합뉴스

 

러시아가 개각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무기한 집권’ 초석을 놓기 위한 개헌을 추진하면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물러나고 새 내각을 구성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갑자기 내각 총사퇴를 발표할 때만 해도 러시아 정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나 싶었지만 21일 공개된 새 내각을 보면 기존 ‘푸틴 체제’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연방국세청장이던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새로 임명됐고 푸틴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일해온 안드레이 벨로우소프가 제1부총리를 맡은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유임됐다. 현지언론 RT는 “각료 12명이 유임되고 9명이 바뀐 이번 개각으로 내각 평균연령은 50세 이하로 낮아졌다”면서 “그러나 외교·국방정책 기조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에도 자리를 지킨 라브로프 장관이다. 16년째 외교장관을 맡고 있는 그는 3월이면 70세가 된다. 현행법상 러시아 각료는 70세에는 퇴임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유임된 것은 계속 서방의 상대역을 맡기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뜻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4번째 임기가 끝난다.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개헌 등을 추진하려면 안팎의 불안정 요인을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라브로프 장관이 재신임을 받은 것에 대해 “러시아의 근육질 외교정책을 대표하는 얼굴이 유지됐다”고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콜린 파월부터 마이크 폼페이오까지 미국 국무장관을 6명째 상대하고 있는 ‘러시아의 얼굴’이다. 1972년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MGIMO)를 졸업하고 외교부에 들어간 뒤 스리랑카의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1976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유엔 등 국제기구 관련 업무를 했고, 1981년 뉴욕의 유엔 주재 소련대표부로 파견됐다. 1988년 귀국한 라브로프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로 이행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국제기구와 서방을 상대했다. 1991년 4월 외교부 차관이 됐으며 신생 발트 국가들과 독립국가연합(CIS) 등 옛소련에서 독립해나간 나라들과의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을 맡아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15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판하고, 아시아·태평양 역내 협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델리 AP연합뉴스

 

1994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유엔 주재 대사로 10년을 일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을 맡았는데, 특히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시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국면에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서방을 상대하는 데에는 이골이 난 인물인 셈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스리랑카 싱할리어, 몰디브의 디베히어까지 구사한다. “대학 졸업 뒤 아랍어를 배우려 했는데 스리랑카로 가는 바람에 싱할리를 배웠다”고 말한 적 있다.

 

푸틴 정부의 외교수장이 된 것은 2004년 3월이었다. 2008년 메드베데프로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2012년 푸틴 대통령이 다시 크렘린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른바 ‘크렘린 이너서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수하는 비결은 ‘영민한 관료이지만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줄곧 반대해 ‘미스터 니예트(미스터 노·No)’라 불린다. 그러나 외교의 기조를 정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며 라브로프 장관은 그 실행에 집중할 뿐이다. AFP통신은 “모스크바의 적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때론 불가해한 크렘린 외교정책의 실행자”라고 평했다.

 

독설과 회유 사이를 오가는 언변과 협상력은 라브로프 장관의 최대 강점이다. 2017년 렉스 틸러슨 당시 미 국무장관은 “라브로프와 탱고를 출 수는 없다. 그가 춤 추는 걸 허락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크렘린 뜻만 따른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석유회사 출신 미국 국무장관 입에서 나온 이런 평가는 라브로프 장관의 노련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가장 효율적으로 시행하는 인물이라는 평이 더 많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14일 스리랑카 콜롬보를 방문해 디네슈 구나와르데나 외교장관과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1970년대에 콜롬보의 소련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싱할리어도 구사하는 등 스리랑카와 인연이 깊다.  콜롬보 타스연합뉴스

 

2012년 시리아를 방문했을 때 라브로프 장관은 친정부 군중들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뒤 주요 8개국(G8)에서 러시아가 배제되자 “G8은 원래 비공식기구”라며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2015년 이란 핵협상을 할 때에는 미국과 이란 외교수장들 사이를 오가며 조율을 도왔고, 2016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을 때에는 “나토 회원국을 침략하는 일은 없다”며 서방을 달랬다. 이듬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로켓맨’ ‘늙다리’라면서 설전을 벌이자 “중국과 협력해 합리적 접근을 추구하겠다”며 점잖게 훈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트럼프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려 있을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했고, 라브로프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쏟아진 트럼프 탄핵에 대한 질문들을 능숙하게 피해나갔다. 영국 BBC의 표현을 빌면 “거칠 땐 거칠지만 믿을만하고 능숙한 협상가”이고, 트럼프 정부의 경험 없는 국무장관들이 상대하기엔 벅찬 인물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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