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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아람코 상장' 알린 여성들…'석유 팔아 탈석유' 성공할까

딸기21 2019. 12. 12. 17:15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증권거래소(타다울)의 사라 알수하이미 소장이 11일(현지시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거래가 개시된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리야드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증권거래소에서 사라 알수하이미 거래소장이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상장을 선언했다. ‘왕관의 보석’이라 불려온 아람코의 시장 데뷔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지분 1.5%만 공개했는데도 기업공개(IPO)사상 최대 256억달러를 달성한 아람코의 주가는 11일 타다울(리야드 증시) 개장 직후부터 상한가를 찍었다. 첫날에만 주가가 10% 뛰어올랐고, 기업가치가 1조8800억달러에 이르러 세계 1위로 등극했다.

 

‘여성’ 내세운 아람코의 시장 데뷔

 

아람코가 ‘2조 달러짜리 기업’이 될 것이라고 봤던 사우디 측은 목표치가 눈 앞에 보인다며 환호하는 분위기다. 모하메드 알 자단 경제장관은 11일 아람코 IPO를 경제 붐의 계기로 활용하겠다면서 “이 자산이 우리가 성장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는 아람코 기업공개를 통해 ‘개혁 자본’을 쟁여두려 하고 있다. 아람코 주식을 보유하는 국민주 캠페인까지 벌였고, 인구 3300만명인 사우디에서 500만명이 이 회사의 주식을 샀다. 아람코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에 MBS의 개혁은 힘을 받게 됐다. 그는 “오늘은 사우디에 굉장한 날”이라고 자평했다.

 

이날 아람코 상장 행사는 사우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있음을, 개혁을 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2017년 2월 당시 38세였던 알수하이미가 사우디 사상 첫 여성 증권거래소장이 된 것은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타종식에는 아람코 간부들뿐 아니라 여성 직원이 함께 했고, 거래소에 설치된 아람코 홍보패널에도 여성 기술자의 사진이 걸렸다.

 

아람코의 여성 직원이 11일 리야드 증권거래소에서 상장 기념 타종을 하고 있다.  리야드 AP연합뉴스

 

아람코는 사우디 그 자체라 해도 될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정치적 중요성이 크다. 거래 첫날 아람코 주식 2억9000만달러(약 3500억원)어치가 매매돼, 타다울 전체 거래의 4분의1을 차지했다. 아람코 덕에 리야드 주식시장 주가총액은 순식간에 4.7배 커져 독일 증시까지 제쳤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지만 사우디엔 ‘오직 아람코뿐’임을 보여준다. 이 나라에도 올라얀, 자밀, 알마라이, 모빌리 같은 대기업들이 있지만 대개 건축·부동산 분야에 집중돼 있다. 건축과 부동산은 정부 지출에 의존하고, 정부 지출은 다시 석유에 의존하는 구조가 되풀이된다.

 

석유 판 돈으로 ‘탈석유’ 간다

 

정부 예산의 87%, 국내총생산(GDP)의 42%, 수출로 버는 돈의 90%가 석유에서 나온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아람코다. 사우디는 아람코가 미국 애플보다도 값비싼 회사가 됐다고 좋아하지만 이번 기업공개는 자국 내 거래로 한정했다. 공개한 지분 1.5% 중 0.5%는 개인, 1.0%는 기관투자가들에게 팔았는데 해외 기관투자는 23% 정도에 그쳤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는 아람코 주식을 팔면서 월가를 제껴놨다”고 했다. 결국 주식 판 돈 대부분이 사우디 큰손들과 기관들, 즉 왕족들에게서 나왔다는 뜻이다. 개혁을 한다면서도 MBS는 아람코와 석유산업을 왕실에서 떼어놓기는커녕 최근 석유장관에 자신의 이복형을 앉히며 통제를 강화했다.

 

MBS의 계획은 석유회사 주식을 팔아 탈석유 경제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이웃 걸프국가들인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등이 이미 화석연료 이후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사우디의 움직임은 많이 뒤처져 있다. 하지만 아람코 지분을 일부분이나마 민영화하고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들이 많다. 오일파워를 역이용해, 사우디도 탈석유로 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다는 것이다.

 

아람코는 거래 첫날인 11일에만 주가가 10% 뛰어올라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기업’으로 등극했다. 리야드 로이터연합뉴스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 계획과 정보기술·교육 등 비석유부문 투자 드라이브를 걸면서 ‘MBS식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015년 4.1%에서 2016년 1.7%, 2017년엔 -0.9%로 추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2.2% 성장으로 돌아섰고 올해에는 3.2%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사우디 성장률을 3.5%로 전망한다.

 

노동자 4명 중 3명은 외국인

 

MBS는 아람코 주식을 판 돈으로 야심찬 국가개조·개혁 계획인 ‘비전 2030’에 더욱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유가 급락 뒤 허리띠를 졸라맸던 사우디 등 걸프국가들은 지난해부터 다시 돈을 풀기 시작했고, 올해 사우디의 정부 예산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내년엔 소폭 줄어든 1조200억리얄 규모로 잡았다. 현지언론 아랍뉴스는 “의료·교육·인프라투자 등 공공서비스를 늘리고 민간경제와 비석유부문을 키우는 데에 초점을 맞춘 예산”이라고 했다. 2017년 재정적자가 GDP의 8.3%였고 내년엔 6.4%로 예상되는데, 이 정도면 확대재정을 유지해도 될 것으로 사우디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세계 석유 매장량의 4분의 1이 사우디에 있다지만, 사우디의 유가 결정력은 이미 이라크전 이후 폭등기부터 깨져나갔다. 이번 아람코 IPO에 맞춰 감산으로 유가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셰일 등 비재래식 석유의 비중이 커지고 채굴가격이 낮아지면서 유가는 계속 하락세다. 사우디의 세계 최대 산유국 타이틀도 2014년 미국에 넘겨줬다. 기후위기 대응이 아무리 더딘들 결국 세계는 탈석유로 갈 게 분명하다.

 

살만 사우디 국왕(왼쪽 두번째)이 10일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해 쿠웨이트 지도자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리야드 로이터연합뉴스

 

얼마 되지 않는 비석유부문 경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맡겨두고 있는 처지다. 미국 저널리스트 캐런 엘리엇 하우스 저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디의 어느 공항에서든 수하물 관리자는 방글라데시나 인도, 파키스탄 출신이다. 택시 기사 대부분은 파키스탄 사람이고, 호텔 경비는 십중팔구 예멘 출신이다. 파키스탄 도어맨이 인사하고, 레바논 남자가 접수처 뒤에서 미소를 짓는다. 로비의 웨이터, 호텔 방을 청소해주는 사람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이다”라고 했다.

 

실제 2017년 통계를 보면 노동력 1380만명 중 사우디인은 310만명뿐이며 나머지 1070만명은 외국인이다. 신원보증인(스폰서)이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을 보장해주고 수수료를 떼는 ‘카팔라’ 제도를 통해 서비스업은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에게 대부분 떠넘겼다. 특히 민간부문 종사자 10명 중 9명은 외국인이고, 사우디인들은 왕정의 시혜에 의존하는 구조다.

 

인구 40% 청년층, 개혁 기반이자 불안 요인

 

공식 실업률은 6%이지만 청년실업률은 24%이며 실제론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비석유부문 고용이 석유부문 고용보다 많은 것은 연례 하지(성지순례) 때뿐”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2017년부터 외국인 고용 때 고용주·피고용인 모두에게 세금을 매기는 등 자국민 노동력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으나, 그러려면 교육수준을 높이고 여성들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10일 리야드에서 열린 예산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내년 재정계획을 듣고 있다. 올해 사상 최대 규모 예산을 쓴 사우디 정부는 내년에도 인프라 투자 등에 돈을 풀 계획이다.  리야드 AFP연합뉴스

 

MBS는 여성들도 운전할 수 있게 하는 등 상징적인 자유화 조치들을 병행해왔다. 외부에서 보는 인권 문제와 전근대적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사우디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2015년 MBS의 아버지인 살만 국왕이 즉위한 뒤에 취한 인권 관련 개혁조치가 60여개이며 그 중 22개가 여성인권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사우디는 ‘늙은 왕정’으로 유명했지만 인구 40%가 24세 이하인 젊은 나라이며 이들이 MBS의 지지기반이자 향후 동력이다. 그러나 일자리와 발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왕정이 응답하지 못하면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정치적 개혁과 민주주의를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와 보수적인 종교세력의 목소리가 충돌할 수도 있다. MBS의 개혁이 진행될수록 도시와 지방, 젊은층과 기성세대의 간극은 커질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