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문제였다.
미국 마이애미비치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바젤 행사가 연일 화제다. 발단은 아트바젤 쇼에 전시된 작품 한 점이었다.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지오 카텔란이 ‘코미디언’이라 이름 붙인 이 작품은 프랑스 수집가가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구입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작품’이 그저 청테이프로 벽에 바나나를 철썩 붙여놓은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게 예술작품이냐’ 하는 심정들로 관람객들이 옆에서 사진을 찍었고, 엄청나게 비싼 바나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지난 7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그걸 떼어서, 청테이프가 바나나에 붙은 채로 껍질을 벗겨 먹어버렸다. 근처에 있던 관람객들은 키득거리며 예술작품이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바나나를 먹은 사람은 ‘조지아 태생으로 뉴욕에서 살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데이비드 다투나였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아트바젤의 레전드가 돼버렸다. 다투나는 자신이 바나나를 떼어내 먹는 모습이 모두 담긴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 영상파일도 널리 공유됐다. 자신의 행동이 이슈가 되자 그는 뒤에 기자회견을 열고 “바나나를 먹은 것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 나도 예술을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작품을 내놨던 화가도, 아트바젤 측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반겼다.
“다투나는 작품을 부순 게 아니다. 바나나의 아이디어가 바로 그거였다.” 아트바젤의 기획자 밸러리 페로틴은 마이애미헤럴드에 이렇게 말했다. 그걸 떼어내 먹는 관객의 행동까지 염두에 둔, 즉 관객참여형 퍼포먼스를 기대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음으로써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 했다. 주최 측은 대체할 바나나들을 미리 준비해뒀고, 실제로 다투나가 먹어치운 지 15분만에 새 바나나가 벽에 붙었다.
CNN에 따르면 다투나는 바나나 먹기 퍼포먼스를 하기 전에, 자신이 현장에서 체포되고 소송이 걸릴 것에 대비하면서 변호사까지 섭외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품 파괴범으로 체포되지는 않았고 소송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작품보다 다투나에게 쏠릴 시선 혹은 ‘스포일링’이 주최측에게도 부담스럽긴 했던 모양이다. 갤러리 직원들이 그를 곧바로 부스에서 내보냈고 전시장에서도 퇴장시켰다.
카텔란은 금으로 된 변기에 ‘미국’이라는 제목을 붙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하겠다”고 한 적 있다. 500만~600만달러 가격으로 추정되는 이 변기는 지난 9월 윈스턴 처칠이 태어난 영국 블렌하임궁 전시돼 있다가 도난을 당해 다시 한번 이슈가 됐다. 지금까지는 이 황금 변기가 그의 대표작이었지만, 다투나 덕에 ‘세계에서 제일 비싼 바나나의 예술가’로 더 큰 명성을 얻게 됐다.
벽에 붙인 바나나 사진을 패러디한 사진과 영상은 소셜미디어에 엄청나게 퍼져나갔고, 광고들까지 등장했다. 버거킹은 원작 바나나 사진과, 이를 그대로 본떠 벽에 테이프로 감자튀김을 붙여 놓은 사진을 나란히 배치한 광고를 선보였다. 바나나에는 ‘12만달러’라 적혔고 감자튀김에는 ‘0.01유로’라는 가격이 적혔다. 광고 포스터에는 “당신이 삼키는 것을 조심하시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프랑스 광고회사 버즈맨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파파이스, 펩시콜라, 카르푸 등도 1억4000만원짜리 바나나를 패러디한 광고들을 재빨리 내보냈다.
미술품을 둘러싼 해프닝은 많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2006년 12살 소년이 추상화가 헬렌 프랑켄탈러의 작품에 씹고 있던 껌을 꺼내붙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작품 가격은 150만달러, 14억원이 훨씬 넘었다. 소년은 정학 처분을 받았고, 작품엔 동전 크기의 껌 뗀 흔적이 남았다.
이 사건은 어린 아이가 벌인 일이었지만 좀더 ‘예술적’ 혹은 ‘악질적’인 행위도 있었다. 캐나다 전위예술가 주발 브라운은 199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알록달록한 캔디와 젤리 따위를 씹고 있다가, 피트 몬드리안의 추상화에 뱉었다.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어서” 기획한 퍼포먼스라고 주장했다.
2015년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의 미술관에서는 아방가르드 미술전에 전시된 사라 골드슈미드와 엘레오노라 치아리의 설치작품 ‘우리 오늘밤 어디 가서 춤출까’를 청소원이 쓰레기인 줄 알고 치워버린 일이 있었다. 정치적 부패와 쾌락주의를 표현한 이 작품은 담배꽁초와 빈 술병, 색종이 조각, 헌옷과 해진 신발 따위로 이뤄져 있었다. 청소원들은 작품을 쓰레기로 생각하고 재료별로 분리수거까지 했다. 다행히 작품은 원래처럼 복원됐다. 2001년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런던 전시회에서도 설치미술 작품을 구성하고 있던 재떨이와 빈 맥주병, 커피컵들을 환경미화원이 청소해버린 적 있다.
복원되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2004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의 청소원이 독일 출신 예술가 구스타프 메츠거의 작품을 치워버렸다. 이 작품은 오해를 받을 만도 했다. 구겨진 종이와 부서진 상자들이 가득 든 비닐백이었기 때문이다. 청소원은 이 작품을 집어다가 분쇄기에 넣어버렸다. 메츠거는 ‘새 비닐봉지’를 다시 가져다놔야 했다.
파괴 행위까지 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도 있다. ‘얼굴 없는 작가’ ‘거리의 미술가’로 유명한 영국의 뱅크시가 지난해 10월 사상 초유의 경매 이벤트를 선보였다. 그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소더비 경매에서 104만2000파운드(약 15억원)에 팔렸는데, 낙찰되자마자 내장된 분쇄기가 작동하면서 그림이 갈갈이 찢겨나간 것이다.
모두 뱅크시가 사전에 기획한 것이었다. 그는 이튿날 인스타그램에 분쇄기 설치 동영상을 올리면서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이기도 하다-피카소”라고 적었다. 경매가 끝난 뒤 소더비 디렉터는 “우리가 뱅크시당했다(We’ve been Banksy-ed)”라고 했고, 모르고 있던 퍼포먼스에 깜짝 놀라는 상황을 가리키는 ‘뱅크시당했다’는 말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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