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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IS 두목 잡은 군견, 칠레의 시위견…개판인 세상의 개들

딸기21 2019. 11. 27. 16:44

칠레의 검은 개, '엘 네그로'를 합성한 이미지. @Breakaway_chi 트위터

 

지난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에 공을 세운 군견 ‘코넌’을 공개했다. 코넌은 지난달 26일 특수부대 델타포스가 시리아의 알바그다디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 함께 투입됐다. 알바그다디는 군견에 쫓겨 탈출이 어려워지자 자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이 성공한 뒤에 몇 차례나 이 개를 칭찬했고 트위터에도 사진을 올렸다. 이름은 ‘기밀’이라더니, 며칠 안 가 트위터에 이름을 공개하고 “백악관에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백악관 로즈가든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코넌을 선보였다. 기념식을 열고 코넌에게 메달과 명패, 인증서를 줬다. 하지만 코넌이 받은 메달을 코넌은 정작 못 가져간다. 벨지안 말리노이즈 품종인 코넌이 받은 메달은 백악관에 전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 두번째), 부인 멜라니아 여사(오른쪽) 등과 함께 군견 ‘코넌’을 공개하고 있다.  워싱턴 UPI연합뉴스

 

‘깜짝 공개’로 ‘군견 마케팅’을 하려 한 모양이지만, 백악관이 개의 이름과 모습을 공개한 것을 놓고 비판이 일기도 했다. 군견을 운용하는 특수부대의 보안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개들을 보낸 페르시아의 군주들

 

군견의 역사는 오래됐다. 개는 인간과 함께 진화해왔고, 군견 또한 인류 문명 속의 전쟁들과 함께 해왔다.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오늘날의 터키 땅에 있는 에페스(에페수스) 사람들이 마그네시아 사람들과 싸울 때 개를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의 캄뷔세스2세는 이집트인들과 싸운 펠레시움 전투에 개들을 투입했고,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1세는 그리스를 공격하면서 인디안하운드 개들을 데려갔다. 페르시아의 적들도 개들을 투입했다.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 개가 페르시아 군인들에 맞서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원정대는 원주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마스티프 개들을 썼다.

 

현대에 들어와서 개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것은 1차 대전 때다. 보스턴테리어 종인 미국의 군견 스터비는 독일군 스파이를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스터비 하사(Sergeant Stubby)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사실 미국이 적극 참전하지 않은 이 전쟁에서 이 개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를 담은 정확한 문서 기록은 없지만 어쨌든 이 개는 1차 대전 때 미군의 마스코트가 됐다.

 

1차 대전 때 미군의 마스코트로 불렸던 ‘서전트 스터비’.  사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2차 대전 때 소련군도 독일군 전차들에 맞서 폭발물 탐지견들을 투입했으나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3~45년 미 해병대는 일본군으로부터 태평양 섬들을 빼앗기 위해 미국인들에게 기증받은 개들을 풀기도 했다. 1960~70년대 베트남전 기간 동안 미군은 5000마리 정도의 군견을 동원했다. 이 개들을 다루는 군인들만 연인원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메달은 개가 받았는데 왜 사람이 빼앗아가나

 

21세기 들어 대테러전에도 개들이 필요했다.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기 위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 ‘카이로’라는 이름의 군견을 투입했다. 코넌과 같은 벨지안 말리노이즈 종이었다.

 

2011년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우두머리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에 투입됐던 미군 군견 ‘카이로’.  사진 미 육군

 

트럼프 대통령은 코넌이 “너무 총명하고 너무 똑똑하다” “터프한 친구” “최고의 전사”라고 칭찬을 했다. 하지만 개 전문매체 도그타임닷컴 등이 꼽은 미국의 유명 군견들 중 1위는 저먼셰퍼드와 벨지안 말리노이즈의 혼종인 ‘루카’다. 루카는 미 해병대와 함께 6년간 이라크에서 복무하면서 반미 무장조직들의 급조폭발물(IEDs)을 탐지해내는 400건의 임무를 수행했다. 201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가 폭발물을 찾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두번째로 꼽힌 개는 빈라덴 제거에 공을 세운 카이로다. 3위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저먼셰퍼드 ‘니모’. 베트남 공산군의 접근을 알리는 보초견 역할을 했다.

 

베트남전에 투입됐던 미 군견 니모.  사진 미 공군

 

2차 대전 때 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함께 데려간 ‘칩스’는 저먼셰퍼드와 콜리, 허스키의 혼종이다. 조지 패튼 장군이 이끌던 미 육군 서부전선 야전부대인 ‘7군단’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작전을 함께했으며 실버스타 메달도 받았다. 하지만 미군은 뒤에 메달을 반납했다. 칩스는 전쟁의 ‘장비’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메달을 받았지만 미군에게 ‘팽’당한 칩스.  사진 미 육군

 

20세기엔 지뢰 찾고, 21세기엔 IED 찾고

 

군견도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역할이 나뉜다. 미국 군견협회(WDA)에 따르면 군견 중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은 보초견이다. 적군이 다가오는 걸 알리는 일을 한다. 2차 대전에 미군이 동원한 군견 1만425마리 중 9300마리가 보초견이었다고 WDA는 집계했다.

 

순찰견은 저격수들이나 매복 중인 적들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후각·청각적인 능력 못잖게 이 개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를 내지 않고 일하는’ 능력이다. 미군 순찰견들은 1000야드(914m) 밖에 있는 적들도 감지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개들의 충성심을 이용해 연락견으로 쓰기도 한다. 잘 훈련된 개들은 멀리 보내도 주인을 찾아 돌아오기 때문이다. 개가 인지하고 따르는 주인이 두 명일 경우 훌륭한 연락병이 될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전쟁에서 개들이 수행한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지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M-도그’라 불리는 탐지견들이 땅에 묻힌 전선이나 부비트랩, 금속성·비금속성 지뢰를 찾아내는 훈련을 받고 북아프리카 전선에 보내졌다. 2001년 이후 대테러전에서는 무장세력의 공격에 맞선 폭발물탐지견들이 널리 쓰였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저항세력들이 흔히 자동차나 거리 시설물에 설치하거나, 혹은 자폭을 하기 위해 몸에 두르는 ‘폭탄벨트’를 찾아내는 역할을 했다. 사상자 수색견은 전쟁터나 참사 현장에서 혈흔이나 피 냄새를 이용해 사상자를 찾는다.

 

칠레 시위대의 벗으로 유명한 마타파코스.  @Breakaway_chi 트위터

 

거리의 마스코트로 되살아난 칠레의 ‘엘 네그로’

 

트럼프 대통령은 코넌이 “지금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리의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개는 따로 있다. 미국 대통령의 선전에 동원된 코넌이 아니라, 이미 2년전 숨진 칠레의 ‘시위견’ 마타파코스다.

 

칠레에서는 2011년 학생들이 교육재정을 늘리고 민영화한 교육을 다시 공교육으로 바꾸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2013년까지 이어진 장기간의 시위 속에서 칠레중앙대학, 산티아고대학, 시립공과대학 등 학생 시위대가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검은 개 마카파코스가 나타났다. ‘엘 네그로(El Negro·검정)’라는 애칭을 얻은 마카파코스는 반정부 저항의 상징이 됐다. 시위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모습, 무장경찰들을 향해 짖어대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로 퍼졌다. ‘마타파코스를 묘사한 그림과 영상들은 칠레를 넘어 마치 ‘밈’처럼 세계로 확산됐다. 산티아고에는 이 개를 그린 벽화가 등장했다.

 

마타파코스가 요금을 내지 않고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지하철에 붙은 ‘요금 안내기(evade)’ 시위대의 스티커. 트위터

 

근래 산티아고 거리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거센 저항의 물결로 다시 덮였다. 몇 주 째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로 거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최루탄과 화염병 사이에서 시민들은 마타파코스를 다시 불러냈다. 이번 시위를 촉발한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항의한다는 의미에서 시민들은 요금을 내지 않는 ‘회피(evade)’ 운동을 시작했다. 마타파코스가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는 그림을 거리 곳곳에 붙이고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다. 마타파코스의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면서, 저항의 상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2011~2013년 칠레 학생들의 교육개혁 시위에 참가한 마타파코스를 그린 벽화.  @Breakaway_chi 트위터

 

시위견의 원조, 아테네의 루카니코스

 

시위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리스의 루카니코스다. 그리스는 2008년 재정 위기에 부딪쳐 파산할 지경이 됐다. 공공부문에서 직원들을 대량해고하고 복지를 줄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에 맞서, 시민들은 재정확충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루카니코스는 아테네 시민 시위대와 함께 거리를 누비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루카니코스라는 이름은 소시지를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루카니코스 외에 다른 시위견들도 있었다. 카넬로스라고 불리는 개는 아테네국립공과대학 대학생 시위 때 처음 등장했다. 루카니코스와 혼동되기도 했으나 다른 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토도리스도 시위대의 사랑을 받았는데, 카넬로스의 새끼로 추정됐다. ‘루카니코스가 카넬로스의 새끼다’, ‘루카니코스가 사실은 토도리스와 동일한 개다’라는 소문들도 있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처음엔 떠돌이개로 알려졌으나 루카니코스는 주인이 있었고 다만 ‘거리를 돌아다니기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리스의 시위견 루카니코스.  EPA

 

루카니코스를 혼란스럽게 한 사건도 있었다. 2011년 9월, 아테네 도심에서 경찰 노조원들이 파업 시위를 했다. 한때의 ‘적’이었던 경찰들이 거리로 나서자 루카니코스는 그들 편에 서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경찰과 시민의 이분법 대신에, 루카니코스는 “공격 받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라는 분석들도 나왔다. 그토록 사랑받던 개는 2014년 10월 9일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의 또다른 시위견 카넬로스.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