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스라엘서도 '퀴드 프로 쿠오'...기소된 네타냐후 정치생명 끝나나

딸기21 2019. 11. 22. 20:35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일 예루살렘의 의사당에서 집권 우파연합 의원들 앞에 연설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이튿날 부패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예루살렘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강경 우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70)의 정치생명이 결국 끝날 것인가. 이스라엘 검찰이 21일 네타냐후 총리를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기소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검찰의 칼날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요르단강 서안에 국제법에 위배되는 유대인 거주지인 ‘정착촌’을 짓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량살상하면서도 미국의 비호와 자국 우파들의 지지 속에 장기집권을 해온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역사성 기소된 첫 현직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스라엘판 ‘퀴드 프로 쿠오’

 

하레츠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검찰이 네타냐후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뇌물수수, 사기, 배임의 3가지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통신회사와 뉴스사이트를 운영하는 사업가 샤울 엘로비치를 통신장관으로 임명해주겠다면서 5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받았다. 네타냐후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기사들을 뉴스에 실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군사원조와 정적 수사를 맞바꾸자’는 뜻으로 했다는 ‘퀴드 프로 쿠오(대가성 거래)’ 혐의가 네타냐후 수사에서도 똑같이 불거졌다.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발행인과의 뒷거래를 통해, 경쟁지 발행부수를 줄여주는 대가로 우호적인 기사들이 실리게 하려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아랍국들과 다른 ‘중동의 민주국가’로 자부해온 이스라엘에서 총리가 뇌물을 받고 언론을 매수했던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네타냐후 측 변호인단을 불러 나흘 동안 청문 조사를 한 뒤 기소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비차이 멘델블리트 검찰총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 현직 총리를 사상 최초로 기소하는 결정을 했다면서, 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좌와 우의 정치학은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1일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앞에서 검찰의 기소 결정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예루살렘 EPA연합뉴스

 

그동안 부패 혐의들이 드러나 비판이 일 때마다 ‘정치공세’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해온 네타냐후는 검찰이 기소를 발표한 뒤에도 성명을 내고 “쿠데타 시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타냐후의 성명이 나온 직후에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중도정당 카홀라반(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는 “사법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검찰은 전문성과 청렴함, 충성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반격했다.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앞에서는 검찰의 기소를 지지하며 네타냐후의 부패를 규탄하는 시위와, 네타냐후를 지지하면서 검찰에 항의하는 집회가 나란히 열렸다.

 

길어지는 ‘무정부 정국’…다음 총리는 ‘안갯속’

 

기소됐다고 해서 곧바로 총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올들어 이미 4월과 9월 두 차례 총선을 치르고도 매번 연정을 구성할 정당들을 규합하는 데에 실패했다. 정부를 구성하려면 의원 120명 중 과반인 61명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스라엘 의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러 정당들이 의석을 나눠가졌고, 정당들이 합종연횡해 연정을 구성해왔다. 9월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끌어온 집권 리쿠드당은 3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샤스, 토라유대주의연합, 하바이트 하예후디(유대인의 집) 등 시온주의와 유대교 우익 정당들을 규합했으나 이들이 차지한 의석은 55석뿐이다.

 

과반 의석 못 얻은 네타냐후…‘승자 없는’ 이스라엘 총선

 

하지만 야권 지도자인 청백당의 간츠도 연정을 구성하는 데에 실패했다. 야당 의원이 총 65명인데 소속 정당은 좌파 민주동맹, 중도좌파 노동당, 아랍계 정당연합인 ‘공동명단’, 중도우파 텔렘, 극우파 이스라엘베이테누까지 다양하다. 청백당이 33석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정당들은 의석 1~14석의 군소정당들이며 ‘반 리쿠드’라는 것 외에 공통기반은 없다. 간츠가 설득해 손잡는 데 성공한 정당들의 의원 총 수는 54명인데 캐스팅보트를 쥔 의원 8명의 이스라엘베이테누가 합류를 거부하고 있다. 간츠는 연정구성에 실패했음을 20일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에게 통보했고, 대통령은 정부 구성 권한을 다시 의회에 넘겼다.

 

마지막 이합집산에서조차 연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3번째로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할 판이다. 군 출신으로 정치경력이 거의 없는 간츠가 차기 총리가 될 수 있을지, 총리가 된다면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 지 점치기조차 힘든 형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지자들이 21일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앞에 모여, 네타냐후를 부패 혐의로 기소한 검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예루살렘 EPA연합뉴스

 

간츠가 실패했기 때문에 네타냐후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미 두 차례 정당들을 규합하는 데에 실패한 데다 검찰에 기소되기까지 했기 때문에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은 낮다. 전직 장성인 민주연맹의 야이르 골란 의원은 크네셋(의회)의 법률자문위원과 멘델블리트 검찰총장을 불러 ‘범죄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연정 구성권을 갖는 의회 다수파의 지도자(총리 후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고 하레츠는 전했다. 리쿠드당 내에서도 범죄 혐의를 받는 네타냐후를 차기 총리후보로 계속 내세울 수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이 기소를 발표하기 앞서 이날 리쿠드당의 기드온 사르 의원은 당 대표 경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대 위기 맞은 BB

 

BB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 네타냐후는 1996~99년 한 차례 총리를 지냈고 2009년에 재집권해 지금까지 총리 자리를 지켜왔다. 정치인으로서 갖고 있는 타이틀이 적지 않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초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1996년 46세)’ ‘최장수 총리’이기도 했다. 여기에 ‘처음으로 기소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까지 붙었다.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지만 예루살렘과 미국에서 자랐다. 이후의 인생에서도 그의 기반은 양국에 걸쳐져 있었다. 고교 졸업 직후인 1967년 이스라엘로 돌아와 입대했고 그 해 벌어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 참전했다. 특수부대를 이끌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공격한 인페르노 작전(1968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의 항공기 납치에 맞선 이소토페 작전(1972년) 같은 임무들을 수행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때에는 특수부대를 이끌고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습격했다. 제대한 뒤에는 다시 미국으로 가 매서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공부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했다. 1978년 돌아와서는 특수부대 지휘관으로 1976년 우간다 ‘엔테베 작전’ 때 숨진 형 요나탄의 이름을 딴 테러연구소를 세웠다.

 

이스라엘 야권 지도자인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가 20일 텔아비브에서 연설하고 있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간츠는 네타냐후 총리가 기소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으나, 여러 정당들을 규합해 연정을 구성하는 데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텔아비브 신화연합뉴스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 시절 유엔에 파견돼 일하다가, 1988년이다. 의원이 됐다. 1993년 리쿠드당 대표를 맡았고 3년 뒤 총선에서 이겨 총리가 됐다. 하지만 다시 3년 만에 총선에서 패하고 정계를 떠났다. 보수 강경파 아리엘 샤론 총리 시절인 2002년 외교장관으로 되돌아왔으나 가자지구 정착촌들을 철수시킨다는 샤론의 방침에 반발하며 1년 만에 사임했다. 병으로 쓰러진 샤론을 대신해 2005년 당권을 거머쥐었고, 2009년 총리가 됐다.

 

경제개혁을 주도하면서 대외적으론 팔레스타인을 강력 압박했다. 2014년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해 1만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종용하고 이란과는 화해정책을 추진했던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와는 번번이 갈등을 빚었다.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유대민족주의를 강화하고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을 병합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군과 의회와 정부와 민간을 오가며 늘 변신에 성공했던 네타냐후의 발목을 잡은 것은 중동 분쟁이 아니라 장기집권 욕심이 빚어낸 부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