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해외문화 산책

넷플릭스에 항의한 폴란드, 씁쓸한 뒷맛

딸기21 2019. 11. 20. 06:26

폴란드와 넷플릭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발단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웃의 악마(The Devil Next Door)’라는 다큐멘터리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폴란드의 수용소’로 표시됐다는 것이었다.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 홍보포스터. 넷플릭스

 

한국에선 ‘공포의 이반’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시리즈는 미국 클리블랜드에 살던 한 노인이 1986년 돌연 기소돼 이스라엘 법정에 끌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인 줄만 알았던 노인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대량학살당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나치 부역자였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법정에 나와 ‘수용소의 도살자’였던 노인의 과거 범죄를 증언한다. 엇갈리는 증언, 이리저리 꼬인 기억들, 복잡한 기록들이 교차하면서 70여년전의 진실들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시리즈 속 노인이 일했던 것으로 나오는 트레블링카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북동쪽에 있다. 나치의 여러 수용소들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 학살이 많이 자행돼 ‘절멸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1944년 7월 폐쇄됐다. 당시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처지였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비롯해 나치의 악명 높은 수용소들 상당수는 현재의 폴란드 땅에 있다. 하지만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는 70년도 훌쩍 지난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를 잘 모르고, 넷플릭스 프로그램들을 즐겨 시청하는 유럽 밖의 젊은 시청자들은 유럽 현대사를 더더욱 모른다. 상세한 설명 없이 ‘폴란드의 수용소들’을 화면에 비추면 자칫 나치의 범죄가 폴란드의 짓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고 폴란드는 주장한다. 

오늘날의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베르케나우 나치 강제수용소.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글이 문 위에 쓰여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최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넷플릭스에 이를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지도에 수용소 위치가 ‘폴란드 국경 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독일의 점령을 설명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넷플릭스 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폴란드의) 명예를 지키고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1942년의 유럽 지도까지 첨부했다.
 

폴란드는 스스로를 나치의 피해자라 생각하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는 유럽인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폴란드는 자신들이 가해자로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지난해에는 나치 범죄와 관련해 ‘폴란드 책임’을 주장하는 발언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안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나치 범죄와 유대인 학살 책임으로부터 폴란드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폴란드에서는 소수민족이 인구의 32%를 차지했다. 전쟁 뒤에 이 비율은 3%로 떨어졌고 ‘폴란드 민족’이 압도적인 나라가 됐다. 유대인들은 ‘인종청소’를 당했다. 집시들도 학살되거나 추방됐다. 점령군으로 들어왔던 독일인들은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그곳에 섞여 살았던 독일계까지 패전 뒤에 독일로 쫓겨 났다. 역사학자 마크 마조워가 저서 <암흑의 대륙>에서 지적했듯이, 전쟁을 거치며 극도로 폭력적인 학살과 박해와 강제이주를 통해 민족집단이 단일화됐던 것이다. 

1941년 7월 폴란드 북동부의 예드바브네에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유럽유대인회의(EJC)


지금의 폴란드 영토에서 전쟁 기간 살해된 사람은 총 500만명인데 그 중 200만명이 유대인이었다. 폴란드인들 중 상당수는 나치에 동조해 유대인·집시 등을 제거하는 데에 협력했거나 주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1941년 7월 예드바브네 지역에 살던 폴란드 주민들이 유대인 이웃 300명 이상을 헛간에 집어넣고 산 채로 불태운 사건을 거론했다. ‘예드바브네 포그롬(유대인 학살)’로 불리는 사건이다.  


지난 9월 1일 폴란드 비엘룬에서 열린 2차 대전 발발 80주년 추모행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독일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재차 사과했다. 정작 역사에 덧칠을 하려는 쪽은 폴란드다.

 

방명록 그단스크 역사박물관의 개작된 동영상...폴란드의 과거사 싸움

 

나치 침공이 시작된 그단스크의 베스테르플라테 반도에 있는 2차 대전 추모공원은 몇 해전 시 정부 관할에서 중앙정부 관할로 바뀌고 관장이 바뀌더니 ‘애국주의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물관 입구 벽의 유대인 희생자 사진들은 유대인들을 돕다가 처향당한 폴란드인 가족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난민들 모습을 담으며 인권·평화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한 동영상은 ‘영웅적인 폴란드 군인들’을 담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대체됐다. BBC는 전쟁범죄 책임을 거론하는 것조차 막겠다는 폴란드의 행태야말로 역사를 왜곡하는 ‘세뇌’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