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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 ‘친구’와 통화 뒤 쿠르드를 버렸다...트럼프 결정에 인종학살 우려

딸기21 2019. 10. 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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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접경한 터키 산리우르파 주의 국경마을 아차칼레에 8일 오후(현지시간) 터키군 탱크가 주둔해 있다.  아차칼레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통화로 탄핵조사까지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전화 통화로 더욱 궁지에 몰렸다. 터키 대통령과 통화한 뒤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도록 허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쿠르드 토사구팽’은 트럼프의 정치적 곤경만이 아니라 중동 정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인도적 참사까지 불러올 수 있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쿠르드에 손짓하는 독재정권

 

터키군은 9일 “시리아 국경을 넘어갈 준비가 돼 있다”며 ‘매우 이른 시일 내’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쿠르드민병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리아민주군(SDF)은 8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터키군이 국경 마을 라스알아인 부근에 포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쿠르드족 주민들이 탈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는 터키가 곧 공격을 개시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 지역에 머물던 미군을 빼냈다. 미국 묵인 하에 벌어진 터키 군의 공격으로 인도적 위기가 발생하거나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 트럼프가 비난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뒤인 2012년부터 북동부에서 사실상 자치를 해온 쿠르드족은 터키에 위협 때문에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과도 손을 잡게 생겼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시리아 정부나 러시아와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등에 칼을 꽂았’으니 생존을 위해 아사드와 손잡는 것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쿠르드가 자치를 넘어 독립을 바라보려면 아사드 정권과 싸워야 하는데, 미국이 판을 어그러뜨린 꼴이 돼버렸다.

 

아사드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 쿠르드에게 손짓하기 시작했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파이살 메크다드 외교차관은 친정부 매체 알와탄에 “조국은 모든 아들들을 환영하며 다마스쿠스(시리아 정부)는 시리아의 모든 문제를 폭력 없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 잃은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면서 “시리아의 모든 영토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시리아 쿠르드민병대(YPG)와 여성민병대(YPJ) 전투원과 상이군인들이 8일 북부 도시 카미슐리에 있는 유엔 사무소 앞에서 터키의 공격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카미슐리 AFP연합뉴스

 

쿠르드족이 미국에 등을 돌리고, 이슬람국가(IS) 잔당들이 되살아나고, 아사드 정권의 승리가 굳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터키가 SDF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사이, 시리아 북부 라카에서는 9일 SDF를 노린 IS 잔당들의 자폭테러가 일어났다. 라카는 IS의 근거지였는데 2년 전 쿠르드족이 탈환했다.

 

에르도안에 휘둘린 트럼프

 

미국에선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정치인들도 “쿠르드족을 이렇게 저버린다면 앞으로 누가 미국 편에 서겠느냐”며 트럼프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와 에르도안의 통화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가 ‘능구렁이’ 에르도안에게 넘어간 듯한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를 보면 에르도안은 ‘쿠르드’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채 시리아 북부를 공격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트럼프의 답변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에르도안의 주장에 밀려 제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사고나 인도적 고려 없이, 자신과 스타일이 맞는 사람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되풀이됐다고도 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에르도안은 1년 새 3번 대화를 했는데, 에르도안은 그때마다 원하는 답변을 얻어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3일 트럼프가 에르도안과 대화한 뒤 백악관 안보팀은 갑자기 “시리아의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터키-시리아 국경지대, 즉 쿠르드족 병력이 있는 곳에 ‘안전지대’를 만들자는 터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쿠르드를 침공할 길을 이 때 이미 열어준 것이었다.

 

섣부른 결정에 분노한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사임을 하고, 미국의 IS 격퇴전 특사도 사퇴해버렸다. 미국과 터키는 올 1월 안전지대 구상에 합의했으나, 터키는 안전지대(32km)가 너무 작다면서 쿠르드를 공격하려 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8일 세르비아를 방문, 베오그라드 서쪽 스렘슈카라차에서 터키가 투자한 고속도로 기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터키 대통령실, AP연합뉴스

 

터키가 러시아 미사일시스템을 사들여 미국과 갈등을 빚었던 올 6월, 트럼프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에르도안과 양자회담을 했다. 그 뒤에 트럼프는 에르도안을 편들면서 전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탓을 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터키에 패트리어트 시스템을 파는 계약이 무산됐으니, 에르도안이 러시아 무기를 산 것은 ‘오바마 탓’이라는 논리였다. 에르도안의 주장을 트럼프가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지난 6일 에르도안과 통화한 뒤에는 쿠르드 지역 미군을 빼내는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트럼프는 8일 트위터에 터키 측에 ‘강력 경고’하는 글을 올렸고 터키는 반발했다. 그러나 다음달 13일로 예정된 에르도안의 백악관 방문이 끝나면 결국 트럼프는 다시 에르도안 쪽으로 경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보스니아식 ‘인종청소’ 우려

 

트럼프는 2017년 9월 뉴욕에서 에르도안과 만난 뒤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 ‘친구’ 때문에 내린 이번 결정은 중동을 다시 뒤흔들고 미국에도, 터키에도 이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가 반미로 돌아서고 극단주의에 맞선 전선이 흐트러져 IS 잔당들이 되살아나면 미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터키의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생겨도 국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다. 독재정권이 강화되는 것은 그 자체로 시리아인들의 비극이다.

 

미군이 빠짐으로써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벨트’를 견제하기 힘들어지는 것도, 미국에는 부정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중동에서 러시아의 입김은 더 커질 것이고, 미국은 우군을 찾기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

 

8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부근 라파예트 광장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항의하고 쿠르드족 보호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미군 철수와 터키군의 공격 계획이 알려진 7일, 유엔은 쿠르드족 민간인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터키와 미국이 합의한 안전지대 구상은 다국적 군사개입을 막아놓은 채 민간인들을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 북부에서는 70만명의 주민들이 집을 떠나 유엔 식량원조로 연명하고 있다. 파노스 뭄치스 유엔 시리아 인도주의업무조정관은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군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인종청소 범죄를 저지른 ‘스레브레니차 학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피란민들이 더 생겨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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