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에릭 리우, '시민권력'

딸기21 2018. 7. 2. 15:34

잘 익은 붉은 색 토마토를 하나 떠올려보자. 그 토마토는 6억달러에 달하는 토마토 사업의 중심지 플로리다에서 수확한 것일 가능성이 꽤 높다. 만약 그렇다면 그 토마토는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노예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땄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플로리다의 이모칼리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가보지 못한 곳이다. 토마토를 따는 일은 기계화할 수 없는 것이어서 수확은 언제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불행히도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받고, 막대한 빚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또 따가운 햇살 아래 이뤄지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수확한 토마토의 양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그렇게 어렵사리 번 돈을 수시로 감독관들에게 빼앗긴다. 조금이라도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권총 개머리판으로 얻어맞고 자물쇠 달린 컨테이너에 갇히기 일쑤인 그들은 멕시코나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고 의지할 곳이 없었으며 옹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자신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1993년, 그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몇몇이 지역 교회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파업을 벌였고 그 다음으로 단식투쟁, 그러고 나서는 수백 킬로미터씩 단체 행진에 나섰다. 그들은 이모칼리 노동자연합을 이뤘다. 언론에서 이를 알아챘다. 5년 뒤 마침내 농장주들에게서 급여 인상안 합의를 얻어냈다. 그늘진 휴식공간같은 정말 작고 사소한 것들을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입에 풀칠할 정도를 면하자 사람이라면 본디 갈망하는 것들을 얻어내기 위해 싸웠다. 바로 존중과 인정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투명인간 처지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비자발적인 강제노역이라는 체제 자체를 없애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검찰과 손을 잡고 인신매매에 맞섰다. 수사와 기소를 반복해 1200명이 넘는 농장 노동자들을 감금과 강제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역시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착취가 가격인하 압력을 행사하는 대형 수퍼마켓과 패스트푸드 체인들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2001년 최초로 타코벨에 맞서는 농장노동자 보이콧운동을 조직했다. 4년 뒤 타코벨의 모회사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공급망을 개선하는 데 동의했다.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맥도날드와 버거킹에 압력을 가해 타코벨과 같은 조건에 합의하도록 했다. 또한 페어푸드 프로그램이라는 운동을 조직해 식당과 소매체인점들로 하여금 공정한 임금을 제공하고 연방법보다도 훨씬 엄격한 행동규범을 준수하는 농장의 농산물만 공급받도록 했다. 월마트도 2014년에 합류했다. (8~10쪽)


<시민권력 You‘re more powerful than you think>(에릭 리우. 구세희 옮김. 저스트북스)이라는 책을 읽었다. 미국의 시민운동가가 쓴 얇은 책이다. ‘시민’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책들을 근래 몇 권 읽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예전같으면 관심을 끌지 않을 책을 집어 읽었고,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조직하고 나서서 성공한 일들과 실패한 일들을 소개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한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물론 정당정치의 협소한 틀에서 벗어난 개념이다. 아니, ‘거의 모든 것으로 확장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권력이란 우리가 입에 담기 불편해하고,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기 꺼리는 대상이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단어 자체는 불이나 물리학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스스로 이용하려 노력하느냐다. 

권력은 강제성을 갖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설득이나 전파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민’이라는 표현은 통용되는 신분증이나 서류를 갖춘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시민 생활에서 권력은 폭력과 물리적인 힘, 부, 국가 행위, 발상, 사회규범, 수치 등 여러 가지 형태를 띤다. 그리고 제도, 조직, 네트워크, 법과 원칙, 담론, 이념같은 다양한 도관을 통해 흐른다. 이런 형태와 도관을 지도처럼 그려보면 우리가 소위 ‘권력구조’라고 부르는 것이 만들어진다. 오늘날의 문제는 그런 지도를 그리기는커녕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25~26쪽)



책의 원제가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우리, 시민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다만 그 힘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시민의 힘은 좀 더 갖는다 해서 누군가가 잃어야 하는 제로섬이 아니라 무한히 커져나갈 수 있는 것이며, 그 힘을 가지고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점잖은 척 피하거나 남에게(기득권층에게)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은 시민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넘겨준 채로 잊고 있다고. 시민들이 ‘권력맹’에서 벗어나 움직일 때, 단 몇 명이라도 움직일 때 세상은 바뀐다고. 


난 권력이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힘이 강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권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둘째, 권력은 재능이라는 면에서 선물과 같고, 우리에게는 그 재능을 전파하고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양도불가능한 권리뿐 아니라 양도불가능한 의무도 함께 받은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자 그대로 권력은 선물처럼 우리가 남에게 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은 모두 우리가 그것을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그 사람이나 기관에 권력을 넘겨준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43~45쪽)


내가 권력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직화를 통해 거의 마법과 같이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직화가 곧 마법이다.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것에서 아무것도 빼지 않고, '외견상' 거의 무(無)처럼 보이는 것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면에서 마법과 같다. 어떤 운동을 조직할 때 권력이 무의 상태에서 창조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잠들어 있던 권력이 다시 깨어나 활성화되는 것에 불과하다.

권력이란 우리가 허용하는 대로 움직인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나 힘, 도덕성에 의해 위협받거나 얼어붙지 않는다면, 우리 각각이 그리고 우리가 함께일 때 갖고 있는 무한한 힘의 원천을 명심한다면, 힘의 역학을 바꿀 수 있다. (72쪽)


저자는 그렇게 조직화를 통해 갇혀 있던 힘을 꺼내들어 변화를 이룬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 중 헤어브레이더(머리 땋는 미용사)의 싸움은 재미있는 사례였다. 주로 이민자들 혹은 유색인종들이 이 일을 하는데, 대단히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도 아닌 것을 굳이 법률로 만들어 의무적으로 미용과정을 돈 들여 이수해야만 자격증을 준단다. 공익법률회사가 이런 법률은 지나치다며 '브레이딩 운동'을 벌였고,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이 사건이 관심을 끄는 것은 시민권력 차원과는 좀 다른 맥락에서,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전문가주의'가 지나치게 팽창된 하나의 예인 것같아서다. 


저자는 "시민권력은 계획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며 '권력의 순환과 시민권력의 3대 핵심법칙'을 제시한다. 첫째 권력은 집중된다. 권력은 집중된다. 권력은 독점과 승자독식의 정치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게임을 바꿔야 한다." 둘째 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권력은 그것이 왜 정당한지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바꿔야 한다." 세째 권력은 무한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 그것이 유한하고 제로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등식을 바꿔야 한다." (120~121쪽)


게임을 바꾸려면 권력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특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어떤 게임 규칙이 조작됐는지 알아야 한다. 이야기를 바꾸는 방법은 사회적 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안을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등식을 바꾸는 방법은 권력을 포지티브섬 방식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태도와 행동이라는 전염병을 퍼뜨림으로써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고유의 권력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경솔하게 내줘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줄 상호부조와 호혜의 경험을 설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력자처럼 행동한다. 권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무대의 권력을 이용해 권력의 무대를 바꾸는 것이다. (122쪽)


바니 프랭크는 커밍아웃한 최초의 하원의원으로서 시민권의 개척자다. 그런데도 그는 종종 운동가들을 공개적으로 경멸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무엇과 비교해서?"다. 발의된 법안이나 불만족스러운 타협안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그렇게 되묻곤 했다. 이런 태도는 정치란 실행가능한 여러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권력을 행사할 줄 아는 시민이 할 일은 바로 여러 개의 실행가능한 대안들을 선택지로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샌더스 진영에서 보기에 도드-프랭크 재무개혁 법안은 월스트리트 금융가에 무모하게 도박을 하고 책임을 전가할 자유를 허락하는 취약한 법이었다. 그러나 프랭크가 보기에 그러한 시각의 가장 주된 문제점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비교해서요?"라는 질문에 적합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프랭크의 현실주의는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얕은 변화와 깊은 변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에는 반드시 변증법이 끼어든다. 이상주의자가 없으면 현실주의자는 언제나 진보를 하향식으로 규정할 것이다. 반대로 현실주의자가 없으면 이상주의자는 언제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프랭크도 말했듯 "점진주의는 투쟁성의 적이 아니다. 투쟁성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경우도 많다." 이를 역으로 말해도 맞다. 투쟁성은 점진적인 진보의 적이 아니다.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경우도 많다. (142~144쪽)


무엇과 비교해서? 인상깊게 읽은 구절이다. 동시에, 실행가능성에 파묻히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저자의 통찰력도.


그 다음 옮겨놓는 것은 은퇴를 앞둔(^^) 내 입장에서 눈길이 갔던 것.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은퇴후 여가와 여행, 풍족한 소비의 시간으로 이상적인 '황금의 시기'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마크 프리드먼은 이러한 비전은 주로 기업에 이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꾸며진 것이며, 시민에 의해 재창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수명이 길어졌을 뿐 아니라 예전보다 더 오랜 기간 일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남은 반생을 '앙코르 커리어'라 명명하면서 일생 동안 쌓아온 경험을 가지고 선(善)을 위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앙코르닷오알지의 창립자인 그는 이러한 비전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먼저 앙코르커리어를 통해 훌륭한 친사회적 활동을 펼치는 60세 이상의 미국인에게 최대 1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퍼포스 프라이즈를 마련했다. 앙코르 커리어로 이행하는 은퇴자들을 각 지역별 비영리단체의 민간부문 노동자로 배치하는 앙코르 펠로십도 만들었다. (194~195쪽)


민주당원이자 법무장관 출신인 제이 닉슨 주지사는 관선변호인이 가뜩이나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지원금을 또 한 번 삭감했다. 미주리의 선임 관선변호인 마이클 배럿은 상징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는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던 주 헌법의 비상지휘권을 찾아냈다. 주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위급한 시기에 관선변호인으로 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법안에 의거해 주지사에게 폭력사건 피고의 변호를 맡겼다. 주지사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 문제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다룰 수도 있는 유일무이한 위치에 있는 단 한 명의 변호인부터 선발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배럿의 행동은 국가적인 뉴스가 되었고 주지사는 미주리의 사법체제가 겪는 모든 문제점의 상징이 되었다. 상징적인 싸움은 그 결과물과는 별개로 여러 이유에서 중요하다. (225~226쪽)


통쾌한 사례다. 


재미삼아 서한 원문 찾아봄.출처는 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


이렇게 시민이 찾아내고 '되돌려주는' 권력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통제, 조직, 강요가 아니라 출처가 공개된 초대를 통해 옆으로 퍼진다. 제레미 하이만스와 헨리 팀스는 이것을 '새로운 권력'이라 부른다. 현대식 사회적 기술을 이용해 분산된 군중의 권력을 참여적으로 '업로딩'하는 것이다." (236쪽)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대'라는 개념이 재미있다. 며칠 전 후배와 산책을 하면서 강남역 사건과 '포스트잇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참여를 이끌어내는, 옆으로 퍼지는 힘. '댓글' 자체가 이미 쌍방향, 피드백을 담고 있다. 자발적인 '말하기'도 담겨 있다(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저자가 뒷부분에서 강조한 것은 신뢰와 경험이다. 신뢰하면 신뢰가 생기고, 경험하면서 배운다고. 시민의 힘을 깨닫고 퍼뜨리는 것도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즐거움과 위력을 알 수 없다고. 믿을 수 있어야 믿는 게 아니라 믿다 보면 믿음이 커지고 일이 된다고.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몇 명의 참여'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조직화의 마법, 이야기를 바꾸는 전술로 나아간다면. 


앨라배마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생각해보자. 보이콧 참가자들이 다수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시민권 운동에서 시민 대다수가 그들의 전술을 마음에 들어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소수의 참여만 있으면 된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언제나 몇 명만 있으면 된다.

이것은 우리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강한 핵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권력을 연기하는 전략이 곧 수적으로 부릴한 사람들의 더 큰 권력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한 이유다. (278~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