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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내 몸에 쓰는 물건, ‘알 권리’를 보장하라

딸기21 2017. 8. 29. 11:27

‘릴리안 생리대 파동’ 전에도 여성들 사이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는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학물질이 걱정되는 소비자들은 ‘순면 커버’ ‘오가닉 코튼’을 내세운 비싼 상품을 찾거나 면생리대를 쓰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안은 관련 정보도 적고 공론화되지도 못했던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생리대처럼 일상적으로 쓰이고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품조차도 안전 관리가 충격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 속의 화학물질은 외국에서도 논란거리였다. 미국에선 성분 정보를 공개하자는 여성단체들의 ‘생리대 알 권리 운동’이 벌어졌고, 관련 법안까지 제출됐다.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는 아직 생리대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몇몇 북유럽 국가들은 친환경 인증제도를 만들어 생리대는 물론이고 기저귀, 수유패드, 면봉까지 관리한다.


핀란드 헬싱키의 한 판매점에 진열돼 있는 생리대. 북유럽 5개국이 협력해 만든 ‘노르딕 에코라벨’ 인증마크가 찍혀 있다. 한국 교민 제공


“내 몸에 쓰는 물건, 내가 알아야”

 

한국에선 생리대를 ‘의약외품’으로 규정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질검사를 한다. 하지만 일부 팬티라이너는 관리절차 없이 생산·판매된다. 일본에서도 관리방식은 비슷하다. 생리대는 ‘의약부외품’으로 분류돼 있으며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품질과 유효성 및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품질검사를 하고 유해성분을 규제한다. 일본위생재료산업연합회 등 업종단체는 이와 별도로 ‘자주 기준’이라는 자율규제안을 만들어놓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계속 안전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에선 체내에 삽입하는 생리대 ‘탐폰’의 유해성 논란이 반복돼왔다. 생리대에 발암물질을 비롯한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소비자들의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탐폰을 쓰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독성쇼크증후군(TSS)이 많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었다. ‘생리주기 평등(Period Equity)’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줄곧 정부에 생리대 유해성 조사를 요구해왔다. 이는 생리용품의 위생 문제를 넘어 ‘건강의 성평등’을 향한 요구로 이어진다. 2014년 생활용품회사 P&G 생리대의 유독성분을 공개한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같은 단체들은 생리대에 쓰이는 유전자변형(GM) 목화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5월 미 하원에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생리용품 알 권리 법안(Menstrual Products Right to Know Act)’이 발의됐다. 생리대, 생리컵 등의 포장재에 성분을 모두 적게 하라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법안을 발의한 그레이스 멩 의원은 “탐폰, 생리대, 생리컵 등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성분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 안심시키는 북유럽의 ‘백조 마크’

 

릴리안 파동 전까지 한국 소비자들 역시 생리대의 성분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피해자들의 부작용 호소가 빗발치자 생산업체인 깨끗한나라 측은 전성분을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하지만 회사 측이 공개한 ‘스틸렌부타디엔공중합체’, ‘폴리아크릴산나트룸가교체’가 어떤 물질이며 무엇에 쓰이는지 일반 소비자들이 곧바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북유럽에서 통용되는 친환경인증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5개 국가와 그린란드 등 자치지역들로 이뤄진 북유럽각료회의는 1989년 ‘노르딕 에코라벨’이라는 인증제도를 만들었다. 환경과 건강에 위해가 되지 않는 제품임을 관리기구로부터 인증받으면 시판되는 제품에 ‘노르딕스완’이라 불리는 백조 모양의 인증마크가 붙는다. 


 

현재 63개 기업·그룹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인증 대상품목은 생리대와 기저귀 등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는 위생용품들을 포괄한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은 각기 품질관리기구나 재단을 두고 인증 심사를 한다. 덴마크에서는 덴마크표준재단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에코라벨링재단이, 핀란드에서는 환경청이 맡고 있다. 유럽연합(EU)에도 유럽위원회 산하의 ‘EU 에코라벨’을 비롯해 비슷한 인증제도들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 생산·유통·폐기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리대에서 면봉까지 ‘환경기준’ 관리

 

지난해 발표된 노르딕에코라벨 측의 자료를 보면 생리대와 유아용 기저귀의 경우 흡수량이나 무게같은 기본적인 품질은 물론이고 실리콘, 접착제, 방향제와 피부보호용 로션 제재, 항박테리아·살균성분, 염색약과 프린팅용 잉크, 펄프 소재 등 제품에 쓰이는 물질들마다 엄밀한 기준들이 있다. 소비자가 따로 전성분을 확인하고 화학물질을 ‘공부’하지 않아도, 인증마크가 있는지 살펴 보면 되는 것이다. 산모들이 많이 쓰는 수유용 패드, 노인용 기저귀, 침구류, 심지어 면봉까지 규정이 만들어져 있다. 

 

에코라벨의 주된 목적은 ‘환경 영향’을 줄이는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나 기저귀를 쓰는 것 자체가 환경에 큰 부담이 되며, 거기 들어 있는 화학약품들이 환경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성물질이 포함되지 않게 하고, 소재별로 재생가능성이나 환경친화적으로 생산됐는지 등을 평가하게 했다.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①]생리대 유해물질, 주원인도 모르면서...식약처 "VOC만 전수조사" 눈가리기

 

핀란드에서 널리 팔리는 한 생리대 브랜드 제품의 겉면에는 상품 이름말고도 핀란드 알러지천식협회 보증 마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재료 승인 표시, 100% 생분해되는 제지 인증같은 여러 마크가 찍혀 있다. 심지어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이용해 만들어진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생리대 하나를 가지고도 건강과 환경에 소비자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며 인증시스템이 얼마나 밀도 있게 운영되는지를 볼 수 있다. 


치약에서 의류까지, 독성에 에워싸인 사회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휴대폰 케이스…. 생활 속에서 흔히 먹거나 쓰는 것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이어져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을 두렵게 만드는 생활 속 독성물질은 품목을 가리지도 않는다. 깨끗한나라에서 만드는 릴리안 생리대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생리주기 변화를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부작용 제보만 3000건이 넘었다. 생리대뿐이 아니다. 같은 날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는 시중에 판매 중인 휴대폰 케이스 30개 중 6개 제품에서 납과 카드뮴 등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살충제 계란’ 파동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피프로닐을 비롯한 살충제 성분들이 검출된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이라도 인체에는 영향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식약처 발표가 성급했으며 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독성물질 중에 지금껏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피해자들을 만나 정부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으나 피해자 판정과 보상 등 여러 절차가 남아 있다. 

 

지난 2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인 P&G의 기저귀 일부 품목이 독성물질 검출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에는 ‘치약 파동’도 있었다. 폐섬유화 등을 유발하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에 쓰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이기도 한 CMIT·MIT는 구강세정제와 면도크림, 일부 화장품과 물티슈 제품에도 사용됐다. 콘택트렌즈 다목적 용액에 포함돼 있는 살균제가 각막세포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미용·청결 제품은 물론 세정제·코팅제·광택제·접착제까지, 폭넓게 쓰이는 스프레이 제품들도 안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다수의 공기청정기, 에어컨 필터에는 옥틸이소티아졸린(OIT) 등 독성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초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국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의류·신발 등 제품에서 독성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C)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해 파장을 낳았다. 

 

일상 전체가 화학물질에 에워싸여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피해가는 것이 시민 개개인의 몫으로 던져져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