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뒤 석달도 안 돼 여러 나라 정상들과 만나고, 통화를 했다. 그 때마다 트럼프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에게는 전화로 “당신과의 통화가 최악”이라며 쏘아붙여 외교 논란까지 됐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는 손잡고 사진을 찍으라는 기자들의 제안을 모른척해 구설에 올랐다. 반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는 19초 동안이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당초 트럼프와 가장 궁합이 잘 맞을 것으로 예상됐던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꼬일대로 꼬이면서, 이제는 연내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유독 애정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다. 생각도 스타일도 제각각이지만 권위주의 성향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국민투표로 개헌안이 통과된 것을 환영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_Getty Images
지난 16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에르도안에 권력을 몰아주는 이른바 ‘술탄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대통령에게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주는 개헌안이 통과되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국무부도 우려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굳이 에르도안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CNN방송은 18일 웹 기사에서 “트럼프가 에르도안에게 구애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에르도안의 개헌을 칭찬한 이들의 목록은 매우 짧은데 트럼프가 거기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에르도안에 친근감을 보였고, 이것이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 일가가 터키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서 한달만에 쫓겨난 트럼프 측근 마이클 플린이 트럼프 집안의 터키 사업을 도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트럼프 측은 시리아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터키가 핵심적인 파트너라며 에르도안과의 우호관계를 옹호하고 있다. 트럼프의 축하전화에 대해 비판이 일자 백악관 관리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에 대한 우려를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리는 “한편으론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중요한 동맹국이고, 대통령은 대테러전에서 우리에게 터키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에르도안에게 축하전화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얘기해준 백악관 참모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문제라고 CNN은 지적했다. 더군다나 유럽과 터키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에르도안을 대놓고 편든 모양이 돼버린 것은 미국과 유럽의 틈을 더 벌릴 것이 분명하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왼쪽)이 지난 3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_Getty Images
트럼프가 몹시 반기는 또 다른 지도자인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엘시시는 지난 3일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났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아랍의 봄’ 이후 첫 민선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몰아내고 엘시시가 정권을 잡자 그와 만나길 거부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그는 회담 전 기자들 앞에서 엘시시를 칭찬하며 “우리는 이집트와 이집트 국민 편”이라고 했다. 엘시시를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격상시킨 것이다. 엘시시도 트럼프에게 “독특한 성격을 존경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 대선후보일 때에도 뉴욕에서 엘시시를 만났다. 당시 트럼프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에 온 엘시시를 “끝내주는 친구”라고 했다. 트럼프가 취임 뒤 처음 통화한 외국 정상도 엘시시였다. 뉴욕타임스는 “둘 다 과장된 주장과 음모론, 단순한 화법을 즐기고 자의식이 강하며 비판에 매우 민감하다”고 평했다.
근래 트럼프와 급격히 친해진 예상 밖의 인물은 시진핑이다. 트럼프는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협력하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해야 하느냐”며 중국을 “대단히 존중”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6~7일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 회담 때 시진핑으로부터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10분간 설명을 듣고 북핵 문제가 매우 어려운 이슈임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 7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산책을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_Getty Images
트럼프는 시진핑을 만나고 나흘 뒤에 다시 북한 문제로 통화를 했다. 만남과 통화를 거치며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진짜로 감화를 받은 모양이다. 비즈니스맨 출신 트럼프와 정통 공산당 정치인 시진핑은 살아온 길과 생각이 다르다. 막말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와 정제된 화법의 시진핑은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트럼프는 시진핑을 만난 뒤 여러 차례 두 사람 간의 ‘케미’를 강조했다. 폭스 인터뷰에서 거는 “봐라, 중국 주석이 미국에 왔지 않느냐. 진짜로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대단한(terrific)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상회담 이틀 동안에 시진핑을 매우 잘 알게 됐다면서 “15분 동안 만나려다가 결국 3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그 이튿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케미스트리는 좋다”고 했다. “시 주석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에게 간절히 구애하는 정상도 있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다. 오바마를 향해 욕설을 퍼부어 물의를 빚었던 두테르테는 지난해 12월 당선자 신분의 트럼프와 통화하면서는 7분간 ‘매우 우호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두테르테가 트럼프와 전화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두 정상이 서로를 초청했다”고 했다. 아직 두테르테의 방미 계획은 알려진 바 없다.
두테르테는 지난 17일에도 “트럼프가 멍청했다면 억만장자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트럼프는 실용주의자이자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며, 진짜 리얼리스트”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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