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
미칼 헴. 박병화 옮김. 에쎄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고 재치있지도 않았다. 신랄하게 비꼬아서 쓰려고 한 모양이지만, 독재국가에서 일어난 학살과 인권침해는 그렇게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내전을 생각하면 그곳 군벌들의 잔혹함과 그곳 사람들의 비극을 유머로 넘길 수가 없다.
두번째, 제3세계 정치구조를 딱 2mm 분량으로 얄팍하게 다루면서 독재자들의 작태를 우스개로 삼는 것이, 제3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줄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런 종류의 글이 '아프리카 후진국들 꼬라지가 그렇지'라는 느낌만 굳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째, 르완다의 폴 콰가메나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는 '아프리카의 무식한 독재자들'로 쉽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40여년 장기집권을 한 리비아의 카다피는 결국 총에 맞아 죽었지만, 초창기 그의 혁명과 그린북이 왜 제3세계에서 잠시나마 각광받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만델라 할아버지가 빌 클린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다피를 만나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미국과 유럽이 우리(ANC)를 박대할 때 우리를 도와준 친구는 카다피였다"고. 제3세계 혁명운동을 싸잡아 깎아내리는 것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굳이 평가하자면 이 책은 '독재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풍자를 통해 민주주의가 위협받기 쉬운 조건들을 점검해보고,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을 소개해준다. 서방의 위선도 아예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재자들의 '흔한 웃긴 행태들'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남북관계의 복잡성이 '김정일 기쁨조'에 다 가려지는 느낌이랄까.
사이사이 접어놓은 페이지도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세계 최대의 교회가 로마에 있지 않고 코트디부아르의 야무수크로에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 교회는 신도들을 위해 실내온도조절 기능을 하는 통풍 시스템까지 갖췄지만 정작 대부분의 공간은 텅 비어 있다. (23쪽)
유난히 매혹적인 독재자의 건축물은 야무수크로에 있는 '평화의 성모 바실리카'다. 1985년에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은 기괴한 교회 건축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1989년에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교회라는 영예를 안았다. 베드로 대성당을 본뜬 것은 분명하지만 바실리카는 주로 시멘트로 지어졌다. 높이가 158미터에 면적인 3만 제곱미터로 1만8000명을 수용한다. 7000제곱미터에 이르는 다채로운 유리는 모자이크 창문 장식을 위해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그중 하나는 우푸에-부아니를 동방박사 중 한 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197쪽)
왜 이 구절이 눈길을 끌었느냐면, 거기 가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예 사람이 없지는 않았고, '버려졌다'는 느낌보다는 독재정권의 기념비적 건축물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촌스러움이 더 강력했다.
코모로 이야기는 잘 모르던 것이라 기록해둠.
2차 세계대전 이후 활약한 용병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보브 드나르라는 프랑스인이 있다. 드나르는 프랑스의 이름으로 콩고와 예멘, 이란, 앙골라, 나이지리아에서 싸우면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하지만 드나르가 자주 군대를 투입한 지역은 그가 네 차례나 정변에 가담한 코모로였다.
1975년에 코모로가 독립한 직후 드나르는 소규모 용병대를 이끌고 대통령 아흐메드 압달라를 축출한 다음 그 자리에 친프랑스파 알리 소일리를 앉혔다. 그리고 1978년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소일리가 정치적으로 좌경화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가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원을 받고 정변을 시도했다. 그는 불과 43명의 용병만으로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하고 압달라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도왔다. 그 직후 소일리는 피살됐는데 압달라 부하들의 소행으로 보였다.
드나르는 코모로에 정착하고 10년 동안 대통령 경호대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이 섬나라를 지배했다. 하지만 1989년이 되자 프랑스뿐 아니라 남아공까지 이 용병 정권에 흥미를 잃었다. 압달라는 암살됐고 이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드나르는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에 드나르는 다시 돌아왔다. 9월 27일 조디악 고무보트를 이용해 용병과 함께 상륙한 그는 대통령인 모하메드 도하르를 몰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조국이 가만있지 않았다. 10월 3일 프랑스 군대가 상륙해 드나르를 체포하고 프랑스로 송환했다. 드나르는 '범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4년 형을 언도받았지만 2007년 사망할 때까지 실제로 복역하지는 않았다.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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