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엘모소테, 학살의 가려진 기억

딸기21 2016. 10. 19. 14:01

중미의 엘살바도르에서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정부군과 좌익 무장단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Frente Farabundo Martí para la Liberación Nacional (FMLN)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오스카르 로메로 Óscar Arnulfo Romero y Galdámez(1917-1980) 대주교의 죽음으로 유명해진 이 내전으로 7만5000명 이상이 숨졌다.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채 ‘실종’으로 남아 있는 사람도 8000명에 이른다.

당시 정부군은 반군을 소탕한다며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했다. 그런 학살 중의 하나가 엘모소테 El Mozote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엘모소테는 온두라스와의 국경에 인접한 엘살바도르 북부의 작은 마을이다

Memorial of massacre site at El Mozote, Morazan, El Salvador. _ 위키피디아

내전 초기인 1981년 12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학살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부군의 공격에 밀린 반군이 이 지역까지 쫓겨 온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내전의 어느 편에도 가담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 데로도 이주하지 않았다. 마을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들은 처참한 학살의 희생양이 됐다.

학살 전날인 10일 ‘아틀락틀 Atlactl 대대’라는 이름의 부대가 마을을 에워쌌다. 이들의 임무는 ‘마을의 게릴라들을 절멸하는 것’이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모두 마을 중앙 광장에 몰아넣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주민들은 모두 집에서 나와 광장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Ruins of a building in El Mozote, Morazan, El Salvador. | 위키피디아


그 다음엔 아이들 차례였다. 빈 집에 아이들을 몰아넣더니 사방에서 총을 쏴 살해했다. 군인들은 아예 마을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모조리 없애기로 작정한 듯이 가축들까지 한데 몰아 죽이고 불태웠다. 아틀락틀 부대는 자신들을 ‘지옥의 천사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망자 수는 900~12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Mural en el Jardín de los niños inocentes del Mozote. | panoramio.com



이 처참한 학살은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20년도 더 지난 2002년 살아남은 주민들은 집단매장지에 묻힌 희생자들의 유해 230구 가량을 복구했다. 숨져간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처음으로 열렸다. 학살을 부인하던 정부가 마침내 가려진 진실을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2012년에 이르러서였다. 마우리시오 푸네스 Carlos Mauricio Funes Cartagena 대통령이 그 해 1월 엘모소테를 찾아가 희생자 추모식에서 정부군의 만행을 인정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The new, rebuilt church in El Mozote, Morazan, El Salvador. | 위키피디아


그러나 진상을 밝히기까지는 앞으로도 기나긴 과정이 남아 있다. 2016년 7월 대법원은 내전 기간의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사면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0월에는 인권단체들이 낸 엘모소테 학살 소송을 받아들이고 검찰에 수사를 재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