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생리대의 역사

딸기21 2016. 6. 3. 00:22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로 알려진 미국의 사우스볼 패드 광고. _ www.mum.org



여성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생리를 했다. 아마도 현대식 일회용 생리대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여성들이 그 뒤처리를 놓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미 고대부터 ‘생리대’라는 것을 언급한 문헌이 있었다고 한다.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여성 철학자 겸 수학자인 히파티아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남성을 쫓아버리기 위해 사용한 생리대를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있다. 전통적인 생리대는 쓸모 없어진 낡은 천을 잘라 접어서 쓰는 것이었다. 요즘도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약품을 꺼리는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접어쓰는 면생리대와 같은 방식이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에는 넝마나 버리는 천(rag)을 주로 썼기 때문에 지금도 여기에서 유래한 표현이 남아 있다. 영어에서 ‘on the rag’라는 말은 ‘생리 중’이라는 뜻이다.

쓰고 버리는 생리대를 고안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에게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피뢰침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출혈을 막기 위해 일회용 패드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상업화돼 1888년 영국에서 ‘사우스올 패드(Southall’s pad)’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출시됐다. 미국에서는 ‘리스터 타월(Lister’s Towels)’이라는 게 나왔는데, 제조사는 유명한 존슨&존슨이다. 사우스올 패드와 같은 해에 시판됐다. 코텍스도 같은 해에 펄프로 만든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이런 제품들은 값이 비쌌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여성들도 상점에서 생리대를 살 때 ‘터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생리는 감추고 가려야 할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 탓이었다. 그래서 상점에서 상자 안에 조용히 돈을 올려놓으면, 점원들은 ‘생리대를 주세요’라는 뜻으로 알고 상품을 건네주곤 했다. 이런 묘안을 내놓은 사람은 독일 태생의 미국 기업가로서 ‘광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버트 라스커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의 생리대는 면같은 천연섬유를 사각형으로 잘라 만든 것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이 쓰던 속옷인 가터벨트에 고정시켜야 했다. 몹시 불편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다가 생리대 뒤편에 접착물을 붙여 속옷에 고정시키게 만드는 혁신이 이뤄졌고, 악명 높던 ‘가터벨트용 생리대’는 사라졌다.

인도의 사회적 기업가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이 만든 저가 생리대 생산기계. |BBC 웹사이트 캡처

1980년대에는 생리대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 전의 생리대들은 두께가 2cm에 이르거나 흡수력이 떨어졌다. 생리혈이 새어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여성들이라면 다 아는, 생리대의 ‘날개’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직사각형 생리대의 양옆에 날개를 붙여 속옷을 감싸게 한 것이다. 석유에서 추출한 폴리아크릴 젤로 만든 흡수제를 넣어, 흡수기능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덕택에 두께는 얇아졌고, 여성들의 활동은 훨씬 편해졌다. 겉면 재질도 역시 석유화합물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흡수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폴리에틸렌 필름을 입혀 생리혈이 새어나오지 않게 했다.

그후 세계 대부분 지역에 이런 생리대가 퍼졌다. 하지만 저개발국의 빈곤층에게는 여전히 생리대는 ‘매달 쓰기에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다. 국제 구호기구 월드비전은 지난해부터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름으로 저개발지역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위생용품이 없어 학교에 결석해야 하는 여학생이 세계에 6억 명에 이른다.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생리대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다.

인도 타밀나두 주의 사회적기업가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54)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판 중인 생리대의 3분의 1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저가 생리대 생산기계를 만들어 인도 곳곳에 보급한 사람이다. 영국 BBC방송은 ‘인도의 생리대 혁명’이라 불렀고, 2014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무루가난탐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명단에 올렸다.

역설적이지만 일회용 생리대 보급에 앞장 선 미국과 유럽에서는 환경을 파괴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재사용 가능한 면 생리대로 돌아가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구호기구 그라운드업은 생리대가 없어 양말을 대용품으로 쓰거나, 아예 학교에 결석해야 하는 여학생들의 실태를 전했다. 아프리카에 새마을운동을 보급하겠다며 대통령이 외교 순방을 하는 나라에, 생리대가 없어 신발 깔창을 쓰고 학교 수업을 빼먹는 여학생들이 있다는 것 또한 역설적이다. 
여학생들의 아픈 사정이 계기가 돼서 ‘부끄러운 일’,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로만 여겨지던 생리 문제와 ‘생리대’라는 말이 뉴스의 중심이 되고 공론화됐다는 점, 그것도 2016년의 대한민국 현실이 만들어낸 역설이다.